문학 계간지 <창작과비평>이 창간 60주년을 맞이했다. 1966년 1월 창간했다고 하니, 2026년 봄에 출간한 211호는 언제나와 같이 봄을 맞이해 나온 새해의 첫 잡지임과 동시에 60주년 기념호다. 하나의 잡지가 60년을 사라지지 않고 글을 엮어 인쇄매체로 명맥을 이어왔다는 생각을 하면, 문득 아득해진다. 그것은 독자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 이전에 문학을 하는 이들이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지켜온 강력한 약속 혹은 의지의 발현처럼 느껴진다. 지난해 기준 성인 중 60%가 1년에 책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나라에서 두꺼운 문예지가 독자의 지지와 함께 한국 사회의 다양한 시선은 물론이고 신진과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고루 실으며 사랑받아왔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문예지라고 하면 난해하고 고루할 거라는 편견과 달리 <창작과비평>은 시대의 최전선에 서서 다른 매체들이 쉽게 대주제로 삼지 않는 문학, 사회, 정치적인 이슈에 있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이번호에도 여러 첨예한 주제들이 눈에 띄지만 그중 성현아 문학평론가의 ‘진정성이라는 대리 물성과 정체성의 딜레마’를 특히 주의 깊게 읽길 바란다. 박준 시인의 산문 <무지무지, 무지>는 여러 번 재독을 권한다. 이런 따스하고도 따가운 글을 쓰는 작가의 눈이 부러워서,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작은 불빛이 되어주는 ‘선생님’의 존재가 뭉클해서 끝을 찍었다가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이번호에는 특별히 독자의 목소리가 실려 있는데, <창작과비평>을 아끼는 독자들의 글이 무엇보다 이 잡지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명확한 목소리라 소개한다. ‘소설을 읽으며 부드러운 문장으로 현실을 살짝 비껴가는 방식을 배우고, 그러나 그 비껴감이 허무나 도피가 아닌 다른 진실로의 연결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중략) 시대와 사회에 대한 굵직한 논의들도 좋지만, 이처럼 말해지지 않은 상상이나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의 영역까지 문학의 장으로 건져올려지는 순간에 <창작과비평>에 더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다.’(9쪽) 논평을 비롯해 신예 시인들의 시, 박준의 산문, 그리고 김애란·전춘화·정지아·전성태의 중편소설과 소설가 정이현의 인터뷰가 한권에 조화롭게 담겨 있다. 기념호라고 해서 힘을 잔뜩 주기보다는 <창작과비평>이 걸어온 길을 통권 211호에서도 묵묵히 이어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잡지이다.
한 시간 남짓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일순간 무섭게 화를 내셨습니다.
“너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 네가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싫은 생각과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뭐고 네가 얻을 것은 뭐야.”<무지무지, 무지>, 33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