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이후로 법학자 칼 슈미트의 이름을 접하면 자동으로 내란이 떠오르기 쉬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칼 슈미트를 언급한 적도 있고, 무엇보다도 “주권자란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국가가 혼란 상태에 빠져 있고 본인이 그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고 믿는 독재자에게 매혹적인 문장이지 않은가. 그런데 칼 슈미트는 12·3 내란도 그렇고 과거 유신헌법에 영향을 준 우파 사상가이면서도, 정치와 국가의 속성에 대한 예리한 분석 덕분에 사상의 결을 달리하는 베냐민이나 아감벤 같은 이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인 것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그의 주장은, 사실 국가 단위의 거대 전쟁만이 아니라 보다 미시적인 관계에서도 내 편 네 편 나누기로 관찰할 수 있다. 1950년대 저술 <대화극>은 권력은 무엇이고 또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변증법적 대화로 논의를 이어나가는 흥미로운 희곡 두편으로, 나치의 패망과 그로 인한 수감 생활을 겪은 칼 슈미트 후기 사상을 보여주는 텍스트다.
첫 번째 희곡 <권력과 권력자에 이르는 통로에 대하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현실 앞에 권력자는 아랫사람에게 기대게 되고 그러다 보니 권력자에게 다다르기 위한 통로를 장악한 존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통로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권력 투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는 과거 탄핵당한 대통령들도 그렇고 현실의 권력자들을 말할 때 ‘문고리’ 혹은 ‘비선’이 누구인지 공들여 분석한다. 드러나지 않은 권력이 진짜 권력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처럼. 또 슈미트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간 절멸의 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해버렸다고, 이 압도적인 기술 앞에서 그저 발전을 찬양해서는 안되고 기술을 쓰는 권력의 속성과 그 선악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지는 <새로운 공간에 대하여>는 과학기술 전체의 폭발적 발달을 다룬다. 슈미트의 또 다른 저서 <땅과 바다>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세계사를 땅과 바다 혹은 육지와 대양의 끊임없는 대립 과정으로 본다. 그런데 이제 인류사가 우주의 부름을 받아 지구 밖으로 향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자 세명이 기술이 어디로 향할지 논의하는 가운데, 우리에겐 ‘넘치도록 충분한 추진력’이 있다며 달로, 화성으로 떠나겠다는 어느 대화자의 주장은 70년이 지난 지금 기술의 진보를 긍정하며 달과 화성으로 향하는 사업가들의 주장과 공명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저는 ‘내가 가지면 권력은 선한 것이고, 내 적이 가지면 권력은 악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49쪽
핵폭탄의 위협이나 그에 버금가는 어떤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아오면, 잠에서 깬 인간은 여전히 굳건한 대지를 바라보며 대지의 아들로 태어난 사실에 새삼 고마움을 느낄 거라고 말입니다. 11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