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 양조위의 얼굴에 반한 건 언제였을까. <중경삼림>에서 제복 차림으로 패스트푸드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 천천히 다가오며 모자를 벗어 그윽한 눈빛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춘광사설>에서 떠났다가 다시 찾아오곤 하는 애인 보영을 챙겨주며 상대를 향한 애증을 말없이 굳은 얼굴로, 다정한 혹은 난폭한 몸짓으로 드러내는 모습이었을까. 그가 마지막에 잠시 출연한, 그 시절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렸던 <아비정전>은 어디서 보았는지, 비디오로 보았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화양연화>를 본 종로의 어느 극장은 벌써 사라지고 없고, 영화를 본 뒤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카페 또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도시의 풍경이 변하고 또 영화를 보는 방법 또한 완전히 바뀐 지금, 양조위를 말하는 책이 <춘광사설> 촬영 당시 찍은 미공개컷 표지와 함께 도착했다. 하얀 거품을 뿜어내는 이구아수폭포를 배경으로 얼굴을 살짝 찌푸린 젊은 모습이 새삼 낯설다.
양조위는 1962년생이니 그가 스크린에서 활약한 시기 동안 극장을 다닌 사람이라면 양조위를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곧 추억을 더듬는 일이 된다. 책은 힘든 유년 시절을 거쳐 TVB 방송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영화계로 데뷔한 양조위의 자취를 훑어나가며,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함께 다룬다. 양조위가 닮고 싶었던, ‘홍콩 비디오 전성시대’를 연 선배 주윤발이 영웅과 의리의 대표자가 된 덕분에 관금붕 감독의 영화 같은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도 함께 슬쩍 수입된 시절이었다. 홍콩 누아르의 원형이자 ‘죽음’으로 완성되는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라이벌 유덕화와 달리 양조위는 그 어디에도 쉽게 포섭되지 않는 배우로, 상대적으로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시대에 휩쓸린 평범한 청춘을 담고자 한 오우삼 감독의 <첩혈가두>의 경우 국내에서 댕강 잘려 극장에 개봉되는 서글픈 사건을 겪었지만, 양조위는 이 영화에서 기존의 홍콩적 영웅이 아닌 ‘탈영웅’을 연기하며 차세대 배우로 자리 잡았다. 이후 <중경삼림>과 <화양연화>로 이어지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홍콩의 도심 공간들을 배경으로 홍콩을 떠나고 싶은 욕망과 그럼에도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자연스럽고 세심한 연기로 선보였다. 양조위의 자취를 따라가며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장국영의 아름다운 얼굴과 연기를 추억하는 것 또한 기쁜 일이고, 양조위가 지금도 여전히 배우로 활동하며 종종 한국을 찾는다는 점 또한 기쁜 일이다.
그날 이후 <중경삼림>의 양조위는 실연의 고통으로 야위어가는 비누와, 울음을 멈추지 못해 축축한 수건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20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