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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년의 궤적을 거쳐 -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

<아시아의 장치들>은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학예연구관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5년 개관 당시 ACC의 핵심 업무는 필름앤비디오 아카이빙 프로젝트였다. 어떤 분야의 필름과 비디오를 다룰 거냐 했을 때, 그의 방향성은 실험영화로 기울었다. “애초부터 영화나 미술 어느 한쪽의 제도에 속하지 않았던 비제도적 장르이기에, 국립기관에서라도 그 기록을 남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아시아 실험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거나 그 의미가 중요한 이들에게 먼저 접촉했고, 두개의 축이 한옥희아다치 마사오 감독이었다. 나아가 아시아 영상 작가 80여명의 작품 800편 이상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하지만 아카이브를 공개하거나 전시하는 작업은 여러 사정으로 순탄치 못했고, 늘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개관 10주년 전시가 적절한 자리였다. “지금껏 축적된 ACC의 활동을 보여줘야 하는 기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아시아의 장치들>로 완성됐다.

사진제공 김지하

전시에 ‘장치’(Apparatus) 개념을 끌어온 개인적 배경은 차학경 작가였다. “무척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차학경의 저술이 (Apparatus: Cinematographic Apparatus: Selected Writings, 1980)다. 본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참고했던 장 루이 보드리, 자크 라캉 등 다양한 철학자와 영화학자의 이론을 편역한 결과다. 더하여 중간중간에 자신의 작업을 이미지로 포개놓은 선집 차원의 책”이다.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뿐 아니라 ACC의 아카이브 체계 전반을 관객과 접하게 만들고, 과거를 현재에 잇는다는 의미가 중요한 프로젝트다. 예술의 ‘매개’적 기능이 강조됐던 차학경의 장치 개념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유”다. <아시아의 장치들>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만나는 작품 역시 차학경의 <입에서 입으로>다.

전시의 근간이 잡혔으니 그다음 문제는 공간 활용이었다. 전시장은 기본적으로 원형 구조물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 모양을 파놉티콘(감시탑)처럼 생각해왔던 그는, 여성 실험영화 감독들이 겪었던 사회적 시선의 억압을 시각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원 주변은 장치라는 주제에 적합하면서도, “일종의 영화 마을을 조성할 수 있는 성격의 작품들”로 선정했다. 구조물 외곽은 평소에 전시 공간으로 잘 쓰이지 않았지만 영화관·편의점·기숙사 등 다양한 공간의 태를 가미한다면 전시의 설득력을 키울 수 있겠단 생각이었다. 이처럼 1층이 “부여된 역사에 관한 대안적 성과들”이라면 2층은 “지금 아시아 각국에서 각자의 역사를 수집·보존하는 현재적 성격의 작업들”로 배치했다.

김지하 학예연구관이 생각하는 ‘현재적 실험영화’와 그 가치는 무엇일까. “실험영화가 유미주의적으로만 만들어지고 소비된다는 오해가 최근 들어 더 커진 것 같다. 그런 측면도 가치가 있겠지만, 태생적으로 실험영화는 제도 안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외치지 못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장치’다. 창작자의 자율성이 적극적으로 용인되고, 매체나 장르의 제약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풀이될 수 있다. 이 탓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역사를 지녀왔으니, 그런 틈새를 최대한 더 조명하고 싶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시아의 장치들>은 중간에 잠시 숨을 돌리는 구간이며 “그동안 미비하거나 중단됐던 실험영화 아카이빙에 더 몰두할 것”이란 계획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