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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저항하고, 비판하며 예술을 만들어가기 - <아시아의 장치들> 참여 작가 7팀의 코멘터리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를 찾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시아 각지에서 자기만의 투쟁을 이끌어온 이들의 비디오아트를 보다 보면 시간의 물줄기를 거슬러 이들이 출발한 예술적 발상지가 궁금해진다. 31팀의 참여 작가 중 한옥희, 김동령X박경태, 아다치 마사오, 장민승, 차학경, 정재훈, 타이키 삭피싯 등 총7팀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경청했다. 직접 질문을 건넬 수 없었던 한옥희, 아다치 마사오, 차학경 작가는 김지하 학예연구관의 말을 빌려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의 전경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 이들의 비디오아트를 포스터로 재해석한<시네마토그래피로서의 포스터> 코멘터리 세편도 함께 담았다. 계속해 돌고 도는 영상이 평면 이미지로 탄생하기까지 세 디자이너가 거쳐온 시간은 우리의 시야 또한 넓힐 것이다.

01. 한옥희

사진 씨네21 최성열

한옥희 감독이 ‘카이두 클럽’이라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실험영화 그룹을 결성했다는 사실은 현재 여성들까지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김지하 학예연구관은 한옥희 감독이 그 자체로 역사적 사건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여성, 실험, 영화, 집단이라는, 당시 위험하고 소외되기 쉬운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활동을 시도했다는 점은 혁명과 같았다. 더 이상 실험영화와 여성영화가 낯선 범주가 아닌 지금, 오늘날의 흐름이 어떤 과정 속에 가능해졌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토대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한옥희 감독과 작품을 다시 호출했다.” 관객석이 마련된 여타의 방과 달리 한옥희 감독 섹션에는 다방을 연상시키는 테이블과 좌석이 놓여 있다. “아카이브 섹션에 놓은 테이블과 좌석은 ‘맹꽁이 서당’의<변 천사 별곡>이라는 설치작품의 일부를 활용한 것이다. 1970년대 당시 다방 등에서 실험영화 연구모임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시 자료들과 영상들이 더욱 생생하게 보여지는 연출 효과를 얻었다.”

포스터로 재탄생한 한옥희 감독의 <세 개의 거울> - 신선아 디자이너

“<세 개의 거울>을 보고 한동안은 이 작품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한 해석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영화를 너무 고정된 시선으로 보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옥희 감독이 여성을 하나의 완결된 자아로 고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영화를 단일한 의미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했다.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50년 전 여성주의 영화 운동이 지금 나의 시선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을 느낄 때였다. 한옥희 감독의 태도를 2026년을 살아가는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잇고 싶었다. 구겨지지 않은 호일에 손을 비추면 거울처럼 나를 반사할 것 같지만 미세한 빛과 주름조차 매번 다르게 일그러진다. 이 성질은 영화 속 거울의 은유와 맞닿아 있다. 거울은 나를 정확히 재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과 규범이 개입된 왜곡된 이미지를 돌려주는 틈이다. 그래서 호일에 비친 손의 굴절 이미지를 다시 변형하고 조립해 글자 형태를 만들었다.”

02. 김동령×박경태

김동령, 박경태(왼쪽부터). 사진 씨네21 백종헌

역사에서 지워지고 외면받은 기지촌과 그곳에 담긴 여성들의 이야기를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탐색해온 김동령, 박경태 감독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은 무려 세편에 이른다. 공간을 블랙박스로 설정하고 어떤 순서로 들어와 어떤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설계했다. 그 결과 채널 비디오, 아카이브 사진과 에세이,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세 가지 형식의 관람 방식을 만들었다. “모든 전열이 끝나고 감탄했다. 영화제에서 개별적이고 닫힌 상영 경험이 아니라, 열려 있는 거대한 몽타주 속에 서로 다른 멋진 아시아 작가들이 배치되는 기분이 남달랐다.”(김동령)

이인삼각처럼 함께 작업하는 두 감독 듀오는 어떻게 발맞춰왔을까. “그런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대체로 분업이 잘돼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연구조사, 연출, 촬영, 편집 등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우리는 서로 유기적이다. 변증법적 관계라고 할까? 이번에는 박경태 감독에게 특별히 미안하고 감사하다. 박경태 감독이 가산을 탕진하며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것을 계속 구박해왔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엄청난 배움과 상상력을 얻었다.” 전시장에 걸린 영화들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까. 오랫동안 재현과 소생의 예술을 해온 이들이 답한다. “이미 영화는 모든 종류의 이미지, 소리, 출판, 기억, 역사, 통치 시스템과 얽혀 있다. 냉정히 말해 우리는 산업의 유통방식 안에서 예술이라 불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이 그 물적 토대에 계속 말하고, 저항하고, 비판해야 한다. 과거의 실천하고 저항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 후대에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한다.”(김동령)

03. 아다치 마사오

사진제공 우즈마사

사회적 변혁의 도구로서 영화를 강조한 아다치 마사오 감독. 김지하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에서 영화를 하나의 표현 매체로 한정하지 않고 실천의 형식으로 확장했던 아다치 마사오의 태도를 조명하고자 했다. “섹션을 ‘아카이브’와 ‘스크리닝’, 두개로 구성한 이유도 많은 정보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다치 감독의 작업이 지닌 복수의 층위, 즉 영화제작과 영화이론, 그리고 실천 과정을 관객들이 동시에 혹은 나눠서 경험해보기를 제안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영상 외에도 세간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이 전시돼 있는데, 아다치 마사오의 ‘풍경론’을 세밀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카이브 섹션은 일본 연구자이자 큐레이터인 히라사와 고와 함께 진행했다. 풍경론은 현실을 묘사가 아닌 현실을 구성하는 조건과 환경으로 들여다보는 개념으로, 풍경론을 착안한 이론가 마쓰다 마사오부터 사진가 나카히라 다쿠마 등으로 확장된 주요 자료를 담았다.”

04. 장민승

사진제공 장민승

장민승 감독과 광주의 인연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민주화운동이40주년을 맞이한 2020년, 모든 게 셧다운된 상황이지만 슬픔 어린 역사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당시 행사측은 오디오 비주얼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구광주국군병원과 구광주교도소가 모두 폐쇄돼 있었는데 사진과 사운드 등 다양한 형태로 이 공간을 상세히 기록한 마지막 영상이 되었다. 그때의 기록들이 <둥글고 둥글게>라는 작품으로 이어지고 광주민주화운동40주년 행사에 전파를 탔다.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블랙박스인 예술극장에서 하나의 설치미술로 선보였다. 빛과 소리, 영상만으로. 이 전시의 공동주관이 ACC여서 그 기점으로 함께 인연이 닿았다.”

그렇다면 영화감독이자 아키비스트 사이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까. 장민승 감독은 여전히 우리에게 연대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짚어냈다. “혼밥과 혼영, 1인의 시대를 살지만 여전히 함께 사는 삶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혼란의 시대를 극복해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공통의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이 모이는 것, 그게 연대다. 똑같은 돈을 주고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한 뒤에 같은 영화를 보는 풍경도 일종의 연대의 행위와 비슷하다. 돈 주고 거래할 수 없는 비물질적 속성을 바탕으로 영화 안에 담긴 기억을 끄집어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이 매체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의 장치들>을 통해 선보인 <둥글고 둥글게 확장판>은 지금까지의 여정을 집대성해주는 순간이었다.”

포스터로 재탄생한 장민승 감독의 <둥글고 둥글게> - 김동신 디자이너

포스터로 재탄생한 장민승 감독의 <둥글고 둥글게>/ 김동신 디자이너 “장민승 감독의 <둥글고 둥글게>를 보면서 세련되고 정교하게 조직된 미장센이 눈에 들어왔다. <둥글고 둥글게>의 영상 시학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여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에 대해 내가 가진 디자인 기술과 언어로 되돌려주고 싶은 무언가가 생길 때까지 작품을 반복해 보았다. 사이언, 마젠타, 옐로의 순서로 배열해500.97km²의 면적을 가진 지름25.255787747088km의 원을 그리도록856,545회 반복 배치한다. 500.97km²는 광주광역시의 면적이고, 856,545는 1980년 당시 광주 인구수다.”

05. 차학경

차학경 작가는 본래 영화 분야보다 비교문학에서 먼저 주요하게 다뤄져왔고, 현재 미술계에서도 대표적인 이주 예술가로 자리하고 있다. 김지하 학예연구관은 그 안에 영화적 사고가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학경 작가가 편집한 <APPARATUS>는 그의 작업에 영향을 준 여러 영화이론가의 텍스트와 본인의 이미지 텍스트를 몽타주처럼 결합했다. 차학경이 지닌 영화적 사유는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 차학경 작가의 영상은 미완 상태의 파편으로 남은 조각 영상이다. 그렇기에 그 여백을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는 1979년에 촬영했다. 1980년 전후의 한국은5·18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매우 격동의 시기였고 차학경 역시 사회적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업 전반이 역사와 기억임을 고려하면 당시 한국 사회, 특히 광주가 지닌 불안과 긴장, 그리고 소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파편들을 스토리보드와 비교하며 이미지와 구상 사이의 간극을 따라가봐도 좋을 것이다. 본전시의 기획 협력을 함께한 김신재 큐레이터의 스토리보드 제안으로 전시의 결을 더 풍성히 할 수 있었다.”

06. 정재훈

사진 씨네21 최성열

다른 감독들의 전시장이 개별적인 ‘방’ 형태를 띤다면 정재훈 감독의 전시장은 ‘복도’ 형태에 가깝다. 이 독특한 공간 구성을 토대로 정재훈 감독은 세개의 스크린을 동시에 상영했다. “세개의 스크린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한번에 보여주길 바랐다. 각각의 화면이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가장 바깥부터 A, B, C라고 치면 관객은 A를 보기도 C를 보기도 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이미지가 겹치면서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몽타주가 만들어지길 바랐다. 영화는 관객이 전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극장이라는 환경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영화를 활용한 전시에는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흥미로웠다. 이 안에서 관람객도 일종의 플레이어가 된다.”

정재훈 감독이 펼친 세편의 작품은 무관해 보이지만 은근히 겹쳐 있는 개인 로그들이다. “개인 로그가 중첩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지점을 이전부터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경험해봐서 재미있었다. A, B, C 스크린에 점층적으로 다가서다 최종의 마지막 화면을 바라볼 때 관객에게 어떤 이미지가 남게 될지 그게 가장 궁금하다. 그냥 추출만 했으면 스틸 이미지에 불과했을 거다. 그런데 거리에 따라, 시야에 따라 모든 것이 뒤섞이면서 자기만의 새로운 이미지, 몽타주가 만들어진다. 제일 안쪽에 놓인 C 스크린에서 정서적인 형태가 가장 강렬하다.”

07. 타이키 삭피싯

사진제공 타이키 삭피싯

태국 방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태국 사회의 갈등과 균열을 탐구하는 타이키 삭피싯 감독은 <우려장치>를 제작하며 영화를 정치적 장치이자 공포와 통제, 상상력의 원동력으로 참구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1990년 베네딕트 앤더슨의 선구적인 에세이 <현대 태국의 살인과 진보>에서 영감을 얻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1958년 사릿 타나라트의 쿠데타 이후 폭력이 제도화되고 엘리트간에 경쟁이 확산되면서 태국에서 정치적 살인이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추적한다. 이는 끔찍한 일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적 이상이 지식인과 학생을 넘어 더 넓은 계층에 스며들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나는 <우려장치>를 단순한 재현물이 아닌, 현대 생활 표면 아래에 스며든 기억과 트라우마, 정치적 분위기를 담는 매개로 접근하고 싶었다.” 그에게 전시로서의 영상은 건축적 경험과 유사하다. “일종의 무언의 대화다. 영상 예술은 기억, 역사, 정치적 의식과 더 깊이 소통한다. 그 말없는 소통 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영상 능력이다. 영상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점유하고 성찰의 환경을 조성할 때 비로소 관객이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ACC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상 작품이 소리, 사물, 아카이브, 설치 구조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존재한다.”

포스터로 재탄생한 타이키 삭피싯 감독의 <우려장치> - 노성일(소장각) 디자이너

“<우려장치>는 극영화처럼 뚜렷한 서사가 드러나지 않는 영화다. 그렇기에 내 나름의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운드가 큰 도움이 됐다. 영화 제목 <우려장치>를 검색하면 공포영화에서 들리는 기괴한 소리를 만드는 장치가 등장한다. 이 장치의 사운드와 영화의 사운드, 분절된 화면구성이 마치 조각난 기억을 되짚는 것 같았다. 이번 포스터는 상업영화 포스터처럼 작업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꿈꾸듯 모호하고 추상적인 장면을 종이 한장, 멈춘 시간 안에 담아내고 싶었다. 선명히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희미하게 옅어지는 그런 꿈같은 이미지로.”

<아시아의 장치들>을 재해석한 <시네마토그래피로서의 포스터>란?

<아시아의 장치들>에서 상영되는 영화 대부분은 포스터가 없다. 여느 영화가 누리는 것을 갖지 못한 작품들을 위하여 ‘사월의눈’ 전가경 대표는 아시아 실험영화를 재해석해 포스터로 만들고자 했다. “다만 화이트 큐브 안에 들어가 있는 방식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포스터를 보여주기 위해 제각기 규격도 형태도 다른 포스터를 하나의 거리처럼 내걸었다.” 아시아 각지의 저항 역사를 기반한 전시를 이어가고자 전가경 대표는 대구, 전주, 제주, 서울 등 디자이너들의 활동 지역에도 다양성을 더했다. 작품별 디자이너도 직접 매칭했다. “태국의 타이키 삭피싯 감독이 출판 작업을 많이 해서 평소 독립출판에 활발한 노성일 디자이너를 연결하고, 여성주의 영화 운동을 펼쳐온 한옥희 감독의 작품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인 신선아 디자이너에게 의뢰했다. 작품별 특성을 디자이너들의 장기와 정체성에 연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