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 왜 갈림길을 선택했을까? - 피치 공주와 로젤리나 VS 쿠파와 쿠파 주니어를 평행선에 둔 <슈퍼 마리오 갤럭시>

“배관공 얘기해줘요! 그 형제에 꽂혔어요!” “동키콩부터 읽어줘요!” 잠들기 전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성화인 치코들(별)은 한창 히어로로 떠오르는 마리오 형제에 환호한다. 버섯 왕국의 수호자로 알려진 피치 공주의 일대기를 들려주려던 로젤리나는 이제 그만 책을 덮고 치코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 순간 서재 앞에 나타난 로봇 하나, 메가레그다. 무턱대고 별똥별 천문대를 침략한 이는 결국 피치 공주와 치코 한 마리를 납치한다. 평화를 깨트린 자의 정체는 바로 쿠파 주니어. <슈퍼 마리오> 세계관의 대표 빌런 쿠파의 아들이다. 그렇다면 진짜 쿠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땅콩버섯을 먹고 주먹만 해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결말을 그대로 이어간 그는 여전히 피치 캐슬에 감금당한 채 살아간다. 때때로 마리오가 심기를 건드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악플 같은 말이 튀어나오고 말지만 쿠파는 나름대로 갱생을 꿈꾼다. 이젤에 그림도 그리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수련 가까운 삶을 산다. 더 나은 나, 반성한 나, 전과 다른 나.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한편 생일을 맞이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피치 공주는 화려한 파티 분위기와 달리 불편한 마음을 숨기기가 쉽지 않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안에 해결되지 않는 물음표를 끌어안아왔다. “나는 생일이 싫어. 오늘은 내 진짜 생일이 아니라 키노피오들이 나를 발견한 날이야. 난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겠어. 내가 어디서 왔는지, 가족들이 누군지도 몰라.” 버섯 왕국의 수호자이자 통치자로 완전히 안착한 피치 공주는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1985년 출시 이후 41년의 긴 시간을 이어온 <슈퍼 마리오> 게임 시리즈가 2020년대에 영화화를 앞두었을 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과제는 현대 가치관에 맞게 스토리 곳곳을 보수 및 개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처음 공개됐을 때 많은 관객은 기존 설정과 다른 피치 공주를 만날 수 있었다. 기존 게임에서 쿠파에게 납치돼 오직 마리오 형제의 구원만 기다리던 공주는 영화 속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호전적이고, 활동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이때 피치 공주와 나란히 놓이는 게 바로 쿠파 주니어다. 체격과 힘을 모두 잃은 아버지를 회복시키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어린 아들은 부하들을 부려 빌런 행성을 건축한다. 일종의 도시 디자인이다. 실제로 쿠파 주니어는 시종일관 마법의 붓과 물감을 이용해 다양한 변신을 하거나 외부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능력을 선보인다. 영화 초반부, 아버지 쿠파가 마리오 형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들 부자에게는 사실 정복욕만큼이나 예술성이 유전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쿠파의 상황은 전과 같지 않다. 그는 이제 선한 삶을 살고 싶다. 계속해 망설임을 반복하는 쿠파의 양가적 모습은 두 가지 질문으로 전환된다. 아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조금 없어 보이는데….) 아니면 홧김에 빌런의 삶을 살까? (마리오 형제들과 그동안 나름 친해졌는데….)

반면 피치 공주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우리 엄마(로젤리나)가 위험한 일 생기면 공주님에게 도움을 청하래요!”라며 달려온 치코를 만났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로젤리나를 구하기 위해 떠난다. 가장 가까운 동료인 마리오 형제가 이제 막 행성계의 새로운 히어로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공주가 남긴 메시지는 “함께 싸우자”가 아니라 “네가 행성을 돌보고 있어”였다. 마리오는 피치 공주에게 잘보이기 위해 생일 선물을 마련하고 그를 도우려 애쓰지만, 공주 옆에 있어야 하는 건 왕자나 남자주인공이 아니라는 듯 영화는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피치의 진짜 가족인 언니 로젤리나를 세운다. 로젤리나가 치코들에게 매일 밤 읽어주던 바로 그 동화책. 그 책을 열었을 때 피치 공주는 비로소 자신의 본질, 역사, 읽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다. 실제로 영화의 원작 게임인 <슈퍼 마리오 갤럭시>에서 로젤리나는 치코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자신의 기원을 고백한다. 그가 어떻게 우주로 가게 됐는지, 어떻게 치코들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원작 안에서 로젤리나는 단순히 미스터리하고 차가운 존재가 아니라, 길을 잃은 별들과 대안 가족을 형성하며 상실, 이동, 돌봄의 의미를 깨닫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피치 공주의 정보 공백으로 확장하여 새로운 가족관계와 역사를 창조한다. 원작의 뿌리를 영리하게 활용한 전략은 두 공주 모두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라는 성격을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영화 고유의 3.0ver 스토리를 완성하는 데 이른다.

영화 <슈퍼 마리오 갤럭시>는 의도적으로 두 가지 갈림길을 만든다. 원작 게임의 이야기 조각을 모티브 삼아 슬픔의 역사를 재창조한 피치 공주-로젤리나 가족. 원작 속 공식적인 부자 관계에 새로운 고민을 던져 파동을 만든 쿠파-쿠파 주니어 가족. 두 가족을 트랙 위에 나란히 올려둠으로써 영화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래. 그 기저에는 언제 어디서든 영화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IP 재료가 지천에 널린 닌텐도의 자산이, 적절한 재료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일루미네이션의 기획력이 발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