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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음악을 디딘 독립, 자유, 해방감 - <마이클>이 정의한 마이클 잭슨의 혁명

포털사이트에 ‘팝의 황제’라고 검색하면 제일 먼저 마이클 잭슨 위키 사이트가 나온다. 기묘한 일이다. ‘팝’은 마이클 잭슨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황제’ 또한 오직 그만을 위한 수식어가 아닌데 두 키워드가 조합됐을 때 인터넷 세상은 당연하다는 듯 나를 그에게 인도한다. 언뜻 보기에 누구에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표현이지만,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딱 한명만 가리키며 고정돼버린 것이다. 따라서 팝과 마이클 잭슨의 운명적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전기영화 <마이클>의 핵심을 간파하는 것에 가깝다. 팝이라는 장르에서, 더 넓게는 대중음악의 카테고리 안에서 마이클 잭슨이 점유한 것은 무엇인가. 세기를 압도하는 그의 장악에는 어떤 사회적 함의가 포함돼 있나. 유행이나 트렌드같이 단편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턱없이 모자란, 길고 오래된 역사적 맥락이 하나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마이클>은 어린 마이클 잭슨(줄리아노 크루 발디)이 형제들과 함께 보이 밴드 ‘잭슨 파이브’를 이끌어나가던 시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은 그저 승자와 패자로만 나뉜다는 아버지 조 잭슨(콜먼 도밍고)의 권위적인 말처럼 형제들은 음악을 즐기기보다 훈련했고, 만끽하기보다 눈치를 봤다. 어딘가 탐탁지 않은 날이면 가르침과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아버지는 자주 벨트를 풀어 마이클을 때렸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어린 예술가를 위해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음악과 노래 부르기는 신나는 일이었다. 화장실에 숨죽여 우는 날이 많았으나, 막상 무대 위에서 연주가 흘러나오면 마이클은 모든 고민을 잊고 팔다리를 들썩거리며 자동으로 춤을 췄다. 잭슨 파이브의 활동은 실로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개개인을 잊으라는 아버지의 요구와 달리 사람들이 마이클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투어를 돌며 돈도 벌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가난한 제철소 변두리에 살지 않아도 됐다. 마이클에게 음악이란 다면적인 존재다. 부와 명성의 기쁨을 안겨주는 동시에 아버지로부터의 족쇄를 강화시켰다. 좋아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아직 어린 마이클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정하진 못했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굴레를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대형 레코드 회사 모타운에서 마이클 잭슨에게 관심을 보이며 앨범 제작을 제안한다. 관심 어린 눈빛, 미래가 궁금하다는 칭찬과 질문, 순진무구한 박수갈채까지. 마이클은 가족 밖의 영역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심지어 모타운의 프로듀서는 제왕적인 아버지의 입을 다물게까지 한다. 그리고 어린 마이클을 믹싱 콘솔 앞에 앉혀두고 온갖 기능을 알려주며 한편의 음악이 완성되기까지 지식과 정보를 가름 없이 알려준다. 지금까지 마이클에게 가장 가까웠던 어른이자 전문가, 아버지 조 잭슨은 어떠했나. 가족 자체가 브랜드가 돼야 하기 때문에 개개인을 지우라 하고,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정확히 이 대목은 영화 속에서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된 뒤에 언급되지만, 그의 케케묵은 태도로부터 오랜 일관성을 추측하기 충분하다). 조 잭슨은 오로지 자신만이 진실이고 정답이라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녹음실에서 찰나처럼 스쳐간 그날, 또 다른 어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본 순간 마이클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질기고 성긴 굴레를 빠져나가는 방법이 바로 음악 안에 있다고.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성공과 흥행을 백인 가수의 그것과 나란히 평가하긴 어렵다.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적으로 추앙받던 1970~80년대 미국 사회는 이미 민권운동 이후였지만 현실적으로 방송·미디어 산업은 여전히 백인 중심주의였고 흑인음악 또한 대중가요가 아닌 ‘특정 장르’로 인식되었다. 1981년 개국한 MTV가 영화 속에서 비백인의 음악은 틀기 어렵다고 말하는 장면 또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성취는 단순히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니라, 미국 내 사회구조적 장벽을 뛰어넘어 대중문화에 녹아든 혁명에 가깝다. 심지어 그는 유행이나 인기라는 말로 대상화된 객체가 아니라, 백인·흑인·어린이·노인·해외 등 모든 집단을 가로지른 크로스오버 스타였다. 주류에게 사랑받는 비주류. 전투 없는 반항아. 글로벌과 슈퍼스타라는 수식어를 얻은 최초의 흑인 가수. 마이클에게 팝(Popular)이란 말 그대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자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수 있는 매개였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마이클 잭슨(자파 잭슨)이 패밀리 네임이 아닌 제 고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오늘날의 기획자처럼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모습은 오직 음악만이 자신의 저항을 이해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이 모타운에 솔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때 가장 중요하게 내건 조건은 곡과 가사를 자유롭게 쓰는 것이었다. “A Whole New Me.” 그는 완전히 새로운 자신을 목도하고 경험하고 싶었다. 영화 <마이클>은 속편을 이미 예정에 둔 듯,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마이클과 아버지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이 구간이 마이클 잭슨의 초창기 예술성을 이해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음악이 가족과의 유대감, 가족을 향한 사랑, 가족으로부터의 억압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유롭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건 위대한 흑인 예술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는 인간적인 사실을 놓지 않는다. 물론 그 결과로 선역의 마이클, 악역의 조 잭슨으로 뭉뚱그려진 이면이 강하기도 하다. 마치 마이클을 그 어떤 것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다는 명백한 성역화와 신화화의 목적이 느껴진다. 찔러보기도 전에 방어막부터 내세우는 장면들이 마이클 잭슨의 굴곡을 다소 납작하게 평면화시키지만 그럼에도 그가 음악으로 현실에 불응하고 싶었던 것인 무엇인지는 왜곡 없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시대와 세대를 포용하며, 그러나 끊임없이 저항하고자 했던 이데아. 자기만의 세계관을 무대 위의 이미지로 응축한 예술가. <마이클>이 정의내리고 싶은 마이클 잭슨의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