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마이클 잭슨을 연기한 건 그의 형 저메인 잭슨의 아들, 자파 잭슨이다. 대중문화 역사의 얼굴이 되기로 한 어린 조카는 기꺼이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당사자의 생전 습관과 손짓의 각도, 음성적 버릇까지 많은 것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사실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팝의 아이콘을 연기하기란 혈연이라는 안정된 토대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혈연이기에 가족들로부터 훨씬 더 엄격하고 철저한 평가를 요구받았을 것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인물을 재현하기 위해 <마이클>은 무엇을 선택했을까. 의상, 분장, 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끗을 올린 디테일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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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스팅 초기 단계에 자파 잭슨이 주연 후보로 거론될 것을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삼촌과 놀라우리만큼 닮았다는 말이 종종 나오긴 했지만 마이클 잭슨의 타고난 재능을 구현해내는 건 도전을 넘어 책임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파 잭슨도 말한다. “나는 배우를 꿈꿔본 적도 없다. 오히려 ‘과연 누가 마이클 삼촌을 연기할까?’를 궁금하던 쪽이었다.” 그때 제작자 그레이엄 킹은 수많은 배우를 발굴해온 긴 경력을 지녔음에도 드문 직관을 느꼈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라미 말렉이 내 사무실에 들어와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깊은 영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전 세계에서 200명에 달하는 배우를 검토했지만 자파를 능가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 뒤로 자파 잭슨이 마이클 잭슨을 연습한 건 장장 2년여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몇 시간씩 스스로를 훈련했다. 실제로 그는 1996년 ‘히스토리’ 투어부터 마이클과 함께 무대에 오른 안무팀의 리치 & 톤 탈라우에가에게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이때 연기 코칭도 함께 병행했는데, 엔시노 헤이븐허스트가에 위치한 저택에서 마이클이 실제로 사용한 옛 침실에서 잠을 자고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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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이 된 자파 잭슨을 처음 본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제작자 그레이엄 킹이 그 과정을 밝혔다. “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는 자파의 스크린 테스트 영상을 마이클의 어머니 캐서린에게 보여드린 날이다. 나를 불러 세우더니, 단 한마디를 하셨다. ‘저 아이가 바로 마이클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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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 잭슨이 마이클 잭슨이 되는 모든 과정은 메이크업아티스트 빌 코소와 헤어스타일리스트 칼라 파머 팀이 지휘했다. 마이클 잭슨의 생애를 다루는 작품에서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그의 생애주기별로 달라진 외모 변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는 펩시 광고 촬영 중 마이클의 머리에 불이 붙는 사건을 상세하게 다룬다. “이 사건은 마이클 잭슨에게 심각한 화상과 영구적 손상을 남겼고, 그후 그는 가발을 착용해야만 했다. 이 시기가 그의 외모를 중점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렇듯 주요한 사건과 외모 변화을 내밀하게 연결하여 영화에 반영했다.”(칼라 파머) 방대한 참고 자료를 가이드 삼으면서도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의 특징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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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아티스트 빌 코소에게 가장 여운 깊은 작업은 단연 <Thriller>다. 뮤직비디오의 메이크업을 재현하는 시간은 마치 크리에이티브의 근원지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우리 세대의 많은 메이크업아티스트들에게 <Thriller>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다. 내게도 그랬다. <Thriller>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가히 역사적인 메이크업아티스트 드림팀을 구성했다. 아카데미 수상자들을 포함한 저명한 아티스트들에게 메일을 보내자마자 즉각 답장이 왔다. 업계 최고의 실력자들이 좀비 메이크업을 위해 모여드는데,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다.”(빌 코소) <Thriller>에서는 칼라 파머의 디테일도 빛을 발한다. 뮤직비디오 본편에서 마이클의 머리 모양이 계속 바뀌는 것을 똑같이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칼라 파머는 테이크마다 자파의 머리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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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에만 낀 시퀸 장갑, 짧은 턱시도 팬츠, 반짝이는 흰 양말, 스트랩이 달린 가죽 재킷, 광택이 도는 페니 로퍼, 몸에 딱 맞는 군복 스타일의 예복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팝 스타들은 자신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있지만, 마이클처럼 영향력 있는 패션 아이콘을 구축한 인물은 드물다. 앤트완 퓨콰 감독은 “어떤 슈퍼스타도 그처럼 즉각적으로 정체성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의상이 핵심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의상디자이너 마시 로저스에게 <마이클>은 그 자체만으로 중대한 과업이자 책임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않았다. 스스로 트렌드를 창조했고, 오늘날 우리가 런웨이와 거리에서 보는 수많은 룩에 영감을 줄 정도로 그 일을 완벽히 해냈다. 그의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실제로 마시 로저스는 마이클 잭슨 연구를 위해 그래미 박물관과 잭슨 유산 관리 재단의 아카이브를 방문하여 그가 입었던 오리지널 의상을 면밀히 조사했다. 줄자를 가져가서 버클의 폭과 길이는 물론, 스트랩 사이의 간격까지 일일이 계산했다. 가장 공들인 건 <Thriller>에 등장하는 사과빛 레드 컬러의 V자형 재킷. 실제 <Thriller> 뮤직비디오의 의상디자이너였던 데버라 나둘먼 랜디스는 마시 로저스에게 “당시 리바이스에서는 빨간 바지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 속 마이클이 입은 바지는 직접 손으로 염색한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흰색 리바이스 바지를 가져다가 재킷 색상에 맞춰 빨갛게 물들인 것인데, 대다수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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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의 첫 번째 장갑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정황을 종합해볼 때 마이클의 첫 장갑은 골프 장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집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부탁해 장갑에 라인스톤을 박아 화려하게 꾸민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버전이 나왔지만 모두 기성품이 아닌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나 역시 같은 방식을 택했다. 원단 시장에 가서 직접 장식재를 고르고 자파의 몸에 맞게 재단했다. 또한 마이클의 스타일을 따라, 양말은 언제나 장갑의 선택에 맞춰 매칭했다.”(마시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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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아역을 소화한 줄리아노 크루 발디에 관한 사랑스러운 일화 하나. 마시 로저스는 발디에게 의상을 입힐 때마다 그가 어떤 옷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의상이 마음에 들면 그대로 춤을 췄기 때문이라고.(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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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을 배경으로 웸블리스타디움에서 7만2천여명의 열광적인 팬들(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당시 찰스 왕세자 포함) 앞에서 선보인 공연 신에는 한 가지 비밀이 담겨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사실 촬영 첫날 진행되었다. 자파 잭슨이 마이클의 페르소나를 완벽히 체화할 수 있도록 대규모 퍼포먼스를 제작 초기에 촬영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파 잭슨이 상징적인 순간을 먼저 경험한다면 본격적인 드라마 연기에 더 원활하게 몰입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진짜로 자파가 잘할 수 있을까? 약간의 의구심과 긴장감이 휩싸였지만 무대가 시작된 순간 모든 게 압도됐다. 내가 ‘컷’을 외친 뒤에도 엑스트라 관객들은 여전히 소리 지르고 있었다.”(앤트완 퓨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