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를 논하며 SF 장르를 빼먹을 순 없다. <미지와의 조우> <E.T.> <우주전쟁> 등 외계인이 직접 등장하는 작품부터,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 등 근미래의 과학기술을 다룬 영화들까지가 떠오른다. 연출뿐 아니라 제작자·각본가로서도 수많은 SF 명작을 남겼다. <빽 투 더 퓨쳐> <맨 인 블랙>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이 대표적으로 포함되며, <그렘린> <아라크네의 비밀> 등 여타 장르에 SF적 요소가 결합한 작품들도 있겠다. <디스클로저 데이> 감상을 준비하기 위해 이번엔 스필버그식 SF 중 TV시리즈를 제외한 주요 장편영화들의 연대기를 간략히 정리했다. 이 연대기를 천천히 복기하면서 스필버그에게 SF영화 또는 외계인영화가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함께 살펴보자.
그의 첫 공식 상영용 장편영화는 <불꽃>(Firelight, 1964)이라는 제목의 SF영화였다. 무려 62년 전에 만들어졌다. 스필버그가 스스로 “아주 야심찬 SF영화”(<스필버그의 말>, 2022, 마음산책)라고 회고했으며, 관객에게 각 1달러를 받고 500명에게 보여줘 500달러를 벌었다는 작품이다. 400달러의 제작비를 충당해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으니 이후 월드와이드 흥행의 거장이 될 스필버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사례이기도 하겠다. 필름이 유실되어 현재는 3분40초가량의 푸티지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만 보더라도 스필버그의 SF적 비전은 확실히 드러난다. 먼저 차에 탄 두 남녀(과학자로 추정)가 붉은색의 원형과 UFO로 추정되는 것들을 밤하늘에서 마주하며 충격에 빠진다. 이후 붉은색 원형의 무언가가 어느 가정집 마당에 떨어지는데, 그것을 한 아이가 집는다. 그 순간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이가 경악한다.
요컨대 스필버그의 SF, 특히 외계인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불꽃>과 같이 늘 두 가지의 주제와 조우한다. 첫째, 충격이나 공포라는 감정이다. <파벨만스>에서 스필버그 본인이 상세히 밝혔던 그의 본질적인 영화적 경험이다. 자신이 느낀 충격과 공포의 감정을 영화로 전환하거나, 타인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달리 말해 경이(wonder)라고 종합할 수도 있겠다. 영미권에서 흔히 스필버그를 “경이의 감독”이라 부르는 이유다. 보통 사람이 외계인을 마주친다면 당연히 경이로움을 느낄 법하다. 무척 자연스러운 리액션이다. 이런 면에서 스필버그에게 외계인의 존재는 그의 영화적 원천과 깊이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서부극이 영화의 기원과 거의 일치하는 유일한 장르”라던 앙드레 바쟁의 말을 변주하면, “SF, 외계인 영화는 스필버그의 영화적 기원과 가장 일치하는 장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둘째, 스필버그의 SF, 외계인 영화엔 대개 가족의 이야기가 함께한다. <미지와의 조우>는 한 가정의 아버지 로이가 UFO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인데, 이 과정에서 그는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 <E.T.>도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소년 엘리어트가 외계인 ET를 만나 우정을 쌓는 이야기다. <우주전쟁> 역시 별거 중인 아버지 레이(톰 크루즈)가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을 구하려 애쓰는 영화다. <A.I.>도 말해 무엇하랴. 안드로이드 아이인 데이빗(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이 엄마의 진짜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모험하는 절절한 가족영화다. 스필버그가 <미지와의 조우>에 관해 남긴 말은 SF영화를 향한 그의 성향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그저 미국 교외의 상공을 날아다니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UFO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이것은 지극히 가정(家庭)적인 영화이다. <스타트렉>도 아니고, <플래시 고든>도 아니며, <2001년>도 아니다.”(<스티븐 스필버그: 스필버그를 읽으면 영화가 보인다>, 1997, 한민사)
스필버그의 SF영화는 대부분 ‘진실과 은폐’라는 요소로 움직인다. 앞서 언급한 외계인영화들에서도 외계인의 비밀을 아는 이들(주로 정부)은 그 사실을 숨긴다. 혹은 <우주전쟁>처럼 끝까지 그 정체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때도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의 공상과학적 기술은 은폐된 사회적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된다. 이는 80억 인류가 엄청난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는 <디스클로저 데이>의 중심 줄거리와도 즉각 접속한다. 이처럼 스필버그식 SF의 주요한 주제와 흐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한다면, <디스클로저 데이>를 더 풍부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SF 필모그래피
‘제작’엔 제작(Producer), 총괄제작(Executive Produce) 등 포함
1964 <불꽃> 감독· 각본·제작
1977 <미지와의 조우> 감독·각본
1982 <E.T.> 감독·제작
1983 <환상특급>(공동) 감독·제작
1985 <빽 투 더 퓨쳐> 제작
1987 <이너스페이스> 제작
1989 <빽 투 더 퓨쳐 2> 제작
1990 <빽 투 더 퓨쳐 3>제작
1993 <쥬라기 공원> 감독
1997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 감독 <맨 인 블랙> 제작
1998 <딥 임팩트> 제작
2001 <A.I.> 감독·각본·제작
2002 <마이너리티 리포트> 감독 <맨 인 블랙 2> 제작
2005 <우주전쟁> 감독
2007 <트랜스포머> 제작
2008 <인디아나 존스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감독 <이글 아이> 제작
2009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제작
2011 <슈퍼 에이트> <트랜스포머 3> <카우보이 & 에이리언> <리얼스틸> 제작
2012 <맨 인 블랙 3> 제작
2014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제작
2015 <쥬라기 월드> 제작
2017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제작
2018 <레디 플레이어 원> 감독·제작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범블비> 제작
2019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제작
2022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제작
2023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 제작
2024 <트위스터스> 제작
2025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제작
2026 <디스클로저 데이> 감독·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