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SF는 지구를 떠난 적이 없다. 수많은 SF영화를 만들었지만, 그 무대를 쉬이 우주로 확장하지 않았다. 그의 친우인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라는 스페이스오페라의 공상을 펼칠 때, 동시대 거장 제임스 캐머런이 <아바타>로 판도라 행성을 구축할 때, 스필버그는 그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때로 스필버그의 SF는 제다이의 포스나 나비족의 영적 능력보다도 훨씬 초월적으로 느껴진다. 으레 쓰이는 표현을 따르면 더 경이로워 보인다. 아니, 공포의 염료가 섞인 경외감이라거나 미학의 언어를 빌려 숭고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하겠다.
이를테면 <미지와의 조우>(1977)의 마지막, 거대한 우주선이 현현하자 모든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빛에 경도된다. 그저 고개를 치켜올리며 감탄할 뿐 그 이전에 계획해둔 바를 새하얗게 잊는다. 주인공 로이는 결국 외계인들의 안내에 따라 우주선 안으로 초대받아 지구를 떠난다. 통상적으로 이 대목은 <E.T.>와 함께 스필버그의 초기 SF영화가 추구하던 ‘외계와의 평화 시기’로 여겨지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로이의 동승은 그의 자유의지라기보다, 극의 전반에서 우주선을 마주한 뒤 얻게 된 불가항력의 매혹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로 이것은 인간과 외계인의 우정이라고 포장하기 이전에 외계인이 한명의 인간을 부드럽게 납치한 일이다. 우주선의 빛과 크기가 가하는 숭고에 압도당한 사람들이 이를 평화라고 오인할 뿐이다.
스필버그의 외계인영화가 풍기는 숭고의 마력은 그가 SF를 대하는 태도와 연관된다. 엄밀히 말할 때 그의 SF영화는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뚜렷한 SF(공상과학)영화, 외계인이 주로 등장하는 ‘과학적 추측’(science speculation) 영화로 나뉜다. 그는 <미지와의 조우>에 관해 1977년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나눈 인터뷰에서 “만약 당신이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다면 이 영화는 ‘과학적 사실’(science fact)이 될 것이고, 믿지 않는다면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이어서 하나의 가치관을 밝혔는데, 자신은 “두 가지 믿음 사이의 불가지론자이기에, 이 영화는 과학적 추측”이라는 것 이다.
즉 스필버그에게 외계 존재란 신앙과 유사한 차원의 문제였다. 불가지론이란 대상의 진위를 (적어도 현재의 인지적 차원에서) 알 수 없기에 대상의 가치가 생성된다는 철학적 논지이며, 이는 흔히 신에 대한 칸트의 견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스필버그의 외계인영화는 몇 가지 단서나 논리로 대상의 정체를 추측할 순 있지만, 명확히 증명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로 작동해왔다. 스필버그의 외계인영화(또는 과학적 추측 영화)나 <미지와의 조우>의 결말이 여타 SF영화보다 더욱이 초월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감지됐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측의 대상일 뿐이었던 외계 존재가 인지적으로 눈앞에 도래할 때, 인간은 신을 마주한 듯한 경외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공상보다 진실에 가까운
<디스클로저 데이>는 과학적 추측 영화와 다소 다르리라 예상된다. 스필버그가 지난 시네마콘 행사에서 “이 영화는 공상보다 진실에 가까운(more truth than fiction)” 작품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1947년 로즈웰 UFO 추락 사건(혹은 음모론), 2017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UAP(미확인 이상 현상) 관련 국방부 프로젝트, 2023년 미 의회의 UAP 관련 청문회 등 ‘과학적 추측’의 객관성을 상회하는 일련의 사실로부터 시작한 영화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스클로저 데이>의 실질적 전편은 스필버그가 총괄 제작한 10부작 TV시리즈 <테이큰>(2002)이다. 스필버그 팬에게도 다소 낯설 <테이큰>은 어쩌면 스필버그의 외계인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이다. 스필버그가 연출과 각본에 참여하지 않고 작품의 얼개만 구성한 작품이니만큼, 그가 지닌 커다란 주제의식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미지와의 조우>가 한 납치 사건의 초월적 현상을 보여준 영화라면, <테이큰>은 그 제목처럼 외계인의 다양한 인간 납치(taken) 사건이 골자다. 2차 세계대전부터 21세기 초엽까지, 3대에 걸쳐 세 가족이 마주한 외계인과의 관계를 그린다. 외계인의 유전자를 물려받게 된 이의 가정,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가정, 외계인의 존재를 은폐하고 민간인을 억압하는 이의 가정이 반세기에 걸쳐 얽히고설킨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서사적 질료 대부분이 <테이큰>에서 선행됐다. 두 이야기 모두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1947년 로즈웰 UFO 추락 사건(혹은 음모론)에서 시작된다. 이쯤부터 외계인의 존재를 은폐하는 비밀 조직이 창설된다. <디스클로저 데이>에서는 ‘워덱스’(WARDEX)라는 이름의 조직으로 불리며, 이곳의 수장 노아 스캔런(콜린 퍼스) 캐릭터는 <테이큰>의 악역이었던 오언 크로퍼드 일가를 상기시킨다. 오언 크로퍼드는 정치적 입신양명을 위해 외계 존재를 숨기고 그들과 접촉한 민간인을 사찰하며 억압하는 인물이다. 그 유지를 이어받은 그의 아들과 손녀는 결국 외계 존재의 정체에 가장 집착하게 되는 괴리를 겪게 된다.
그외에도 유사점은 많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주연 마거릿(에밀리 블런트)이 거대한 비밀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깨닫는 이유는, 아마 <테이큰>의 외계인 혼혈 앨리(다코타 패닝)처럼 외계인과 연루된 과거 때문일 공산이 크다. ‘그 장치’(The Decive)라 불리는 <디스클로저 데이>의 핵심 설정 역시 <테이큰>에서 타인에 대한 정신 조종을 일으켰던 외계인의 어떤 기기와 능력에 맞닿는다. 화면 기억(Screen Memorial)이라고도 불리는 초능력은, 타인의 기억을 눈앞에 실재 이미지로 (마치 영화처럼) 현상해 인지 착오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디스클로저 데이>가 80억 인류에게 폭로하는 진실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다. <인디아나 존스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이야기를 변주해 인류의 시작이 외계인의 도움이었다는 것일 수도, 인류의 대개가 이미 외계인과의 혼혈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진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테이큰>에서 외계인과 마주친 인간들은 대개 그들의 정신력을 이기지 못해 죽는다. <인디아나 존스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악역 이리나 스팔코도 외계인이 지닌 대량의 지식을 흡수하려다가 온몸이 불타 죽는다. 즉 스필버그의 외계인영화에서 그 정체를 해부하려는 이들은 신의 광채에 눈이 머는 이들처럼 소멸하고야 만다. 과학적 추측이든, 공상보다 가까운 현실이든 간에 스필버그가 결론지어온 외계 존재의 정체란 다가서기 위험한 숭고였다.
그렇다면 80억 인류에게 외계 존재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디스클로저 데이>는 어떤 선택을 보일 것인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진실에 압도당해 모두가 무너지거나, 죽거나, 지구를 떠나며 숭고에 복속할 것인지, 혹은 지금까지 스필버그가 택하지 않았던 천연한 인간 승리의 대안을 설파할 것인지. 이 결과는 만년의 거장이 지금 인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듯하다.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나타난 유사 설정의 복기는 위 척도를 보조하는 수단일 뿐, 그 어느 영화보다 <디스클로저 데이>의 결말이야말로 스필버그라는 세계의 핵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