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희 영화 분장 30년: 반복과 절제로 쌓아올린 시간의 기록>이라는 전시 제목은 그 내용과 무척 어울린다. 특수분장을 배우기 위해 캐나다로 유학했던 몇년을 제외하곤, 30년 넘게 촬영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송종희 분장감독의 끝없는 업무 반복, 욕심에 일을 그르치지 않으려 했던 절제의 미덕이 전시장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크게 중앙 복도와 양쪽에 문이 나 있다. 어디부터 보아도 무리는 없다. 작업의 연대기순으로 전시가 구분되기보단, 모든 공간에서 영화 분장의 총체적인 상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송종희 분장감독이 분장팀에서 일을 시작한 1995년부터, 처음으로 분장 헤드 스태프를 맡았던 <그들만의 세상>(1996),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구현한 <해피엔드> <공동경비구역 JSA>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괴물>, 최근 인기를 끈 영화·드라마 <헤어질 결심> <마스크걸>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사랑 통역 되나요?> <파반느> <왕과 사는 남자> 등 62편의 필모그래피가 정리되어 있다.
<은교>의 영상 전시가 펼쳐지는 곳 바로 뒤편엔 분장실을 고스란히 가져다놓은 듯한 별도의 공방이 있다. 수없이 들어선 분장 도구와 얼굴 탈들이 그간 송종희 분장감독이 쌓아온 시간을 대변한다.
<아가씨>에 대한 송종희 분장감독의 기억도 무척 인상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주연 히데코(김민희)의 헤어스타일 레퍼런스로 <드라큐라>(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92) 속 게리 올드먼의 이미지를 제안했다. 그대로 1차 테스트를 거치고 나니 송종희 분장감독은 성이 차지 않았다. 생각보다 당시 상류층 여성의 고혹이 헤어스타일에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송종희 감독은 “분장실에서 9시간 동안 김민희 배우에게 정말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거친 끝에” 히데코의 시그니처 헤어스타일인 비대칭 올림머리를 완성했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시리즈를 참고했냐는 말도 나중에 들었는데 그렇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팜므파탈적인 히데코의 이미지에 맞는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송종희 분장감독은 분장 후의 이미지를 거울이나 유리에 비추어 찍는 습관이 있다. 정면으로 보거나 직접 보았을 때보다 다른 시선으로 영화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에 차서 민희씨에게도 ‘이제 나만 믿어!’라고 외친 뒤에 박찬욱 감독님에게도 사진을 보냈다. 물론 감독님이 안된다고 해도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웃음)”
중앙 복도에는 <아가씨> <미쓰 홍당무> <왕과 사는 남자>, 배우 김고은 등과 함께했던 분장의 기록이 전시돼 있다. 송종희 분장감독은 <미쓰 홍당무> 작업 당시를 회고하며 크게 웃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감독의 좋아하는 영화다. 작중 서우 배우가 연기한 종희 역도 내 이름에서 따왔다. 심지어 내가 한 말도 영화에 들어갔다. 영화에 관해 전화하면서 조금 화가 난 채 막 토로한 적이 있다. ‘너 사람들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 착하게 살지 마라. 그럼 사람들이 너한테 못되게 군다. 근데 네가 못되게 굴잖아? 그럼 사람들이 착하게 굴어’라는 식의 말이었는데, 이게 미숙(공효진)의 대사로 거의 그대로 쓰였다. (웃음)”
전시장 왼쪽의 가장 깊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유일한 영상 전시가 한편 마련되어 있다. 송종희 분장감독의 대표작이자 한국영화 분장 역사에 한획을 그은 <은교>의 테스트 영상이 메인이다. 70대 노시인 이적요로 변해 은교에게 나지막이 대사를 읊는 박해일 배우의 목소리가 공간을 은은하게 울린다. “그러니까, 내게 연필은 눈물인 거지. ‘할아버지 제 연필 좀 깎아주세요’라고 네가 말하면 나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린단다. ‘할아버지 제 눈물 좀 닦아 주세요.’” 마치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 느껴진다.
전시장 오른쪽엔 송종희 분장감독이 협업했던 배우들과의 상세한 분장 과정이 모여 있다. 최민식, 송강호, 이영애, 전도연, 이병헌, 김혜수 등등의 연기 궤적을 복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각 캐릭터에 대한 감독들의 코멘트, 송종희 분장감독의 프로덕션 노트도 꼼꼼하게 살필 수 있다. 예를 들어 <밀양>(2007), “이신애: 단계적 붕괴, 단정함 고통 무너짐. 메이크업의 목적이 아름다움이 아닌, 인간의 영혼이 어디까지 처절하게 부서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기록. 헤어의 결감과 피부의 수분감을 서사에 맞춰 단계적으로 통제하며, 대사와 오열 그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얼굴을 스크린 위에 복원”. 이러한 분장 작업의 세부와 창조력을 찬찬히 확인하다 보면 분장을 넘어 영화예술의 험난함과 대단함을 새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송종희 분장감독이 2011년 <은교>를 작업했을 때부터 팀원들과 기록해온 분장 노트. 매해 작업했던 작품들의 분장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과정이 무척이나 상세하게 적혀 있는 사실상의 분장 교보재다. 캐릭터의 최초 해석, 레퍼런스, 메이크업 단계 등 영화 분장의 A to Z를 만끽할 수 있다. 외부에 무작위로 공개하기엔 어려운 자료이므로 이번 전시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백미는 공방과 메인 룸 사이의 유리창이다. 유리창에는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다. “수정해야 할 점, 허 교수 아쉬운 점, 눈썹 부분 엣지 티 남, 가발 목덜미쪽 떨어짐, 가발망이 머리 뒤쪽으로 보였을 때 대책 필요, 눈가 붉은 라이너 색 너무 선홍색” 등등 분장 과정에서 송종희 분장감독이 직접 적었던 자체 피드백이 쉴 틈 없이 기록돼 있다. 그간의 성과와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수많은 실패의 기록까지 품었단 점이 이번 전시의 울림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