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에이전트>를 보고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에게 궁금증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대용량의 첨부파일이 도착했다. 그가 서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목소리로 일일이 녹음해 회신한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온 그의 음성을 <씨네21> 편집실에서 하나씩 꺼내 듣자니 1977년 마르셀루(와그네르 모라)의 구술녹음을 듣는 2025년의 플라비아(라우라 루페스쿠)가 된 듯 했다. 마침 멘돈사 필류는 매년 6월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원 영화제 ‘시네마 리트로바토’에 참석 중이었다. 영화를 매개로 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그가, 이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 축제 한가운데서 자기 작품의 주요한 방법론 그대로 응답하다니.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말의 진의를 아주 잠깐 실감했다.
- <시크릿 에이전트>는 1977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대를 다루지만 에르네스투 가이제우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이어가던 정권의 실상을 적시하지 않는다. ‘독재’라는 단어나 군사정권을 표상하는 이미지조차 전무하다. 구체적 언어, 상징적 이미지를 소거한 채 시절의 부조리를 묘사하기 위해 무얼 고민했나.
우선 브라질의 영화와 텔레비전에는 ‘독재정권 이야기’가 일종의 하위 장르로 존재한다. <시크릿 에이전트>를 구상하며 이 장르가 자리 잡은 방식, 예컨대 군대나 독재와 고문, 어떤 형태의 투쟁이나 레지스탕스의 발전 과정을 그리는 작법은 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1977년의 분위기와 논리를 구현하는 데에 주력했다. 특정 역사나 특정 문화로부터 파생되는 서사적 논리가 있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국적에 상관 없이 살아 숨 쉴 수 있다. 내가 한국영화를 본다고 치자. 나는 관객으로서 영화 속 한국 사회와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즉 한국만의 서사적 논리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영화 속 독재정권의 논리는 매우 구체적이다. 정치적으로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특정 시점(時點)에 깊이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독재라는 단어나 독재를 표상하는 시각적 단서를 등장시키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영화 속 사건의 논리와 시대의 질감이 당대의 현실을 매우 정확히 반영해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자막 카드에 1977년의 브라질을 두고 “장난(Pirraça)의 시대다”라고 적은 것도 이유가 있다. 혹시 한국에서는 이를 어떻게 번역했나.
- “해악이 만연하던 시대”로 나왔다.
어쨌든 장난이라는 단어에 1977년 브라질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의 중대성과 심각성, 그리고 폭력성을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축소해서 표현하려고 했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Pirraça’의 영문 도착어로 장난 또는 해악을 의미하는 영단어 ‘Mischief’를 언급했다.-편집자)
- 단순히 과거를 고증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특정 시대를 산 인물들이 어떻게 사고했는지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사람이 좋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의 사람과도 사랑에 빠지거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브라질만을 바라본다. 내 나라에 대한 나만의 이해도는 물론 내가 브라질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작용하므로 브라질 예술가의 시선이 캐릭터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브라질 사회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부분에 더해 혐오하는 면까지 이 영화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캐릭터를 고민하고 그들을 역사적 맥락 안에 배치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재밌다. 거시사의 흐름 속에서 인물이 어떻게 미시사를 이룩했는지 관찰하면 되니 말이다. 도나 세바스치아나(타니아 마리아)는 1977년 당시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정체성을 모두 거칠 만큼 나이가 들었다. 동시에 거실에 예수의 성화를 걸어둔 가톨릭 신자다. 와중에 고집이 세고, 사랑이 넘치며, 좋은 친구이면서도 분노할 줄 알고, 퉁명스럽고 강인하다. 도나 세바스치아나를 다면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오늘날에도 존재할 법한 보편적인 인간인 동시에 오직 브라질의 역사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 와그네르 모라는 당신으로부터 마르셀루 특유의 치열한 온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동의하나.
꽤 일리가 있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고, 마르셀루는 내가 문학, 영화, 그리고 현실에서 만난 여러 인물들이 결합된 결과물이니까. 그 안엔 나의 모습도, 와그네르의 모습도 혼재해 있다. 마르셀루는 언제나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전형적인 영화 속 주인공은 아니겠지만 동시에 할리우드적인 의미에서 매우 카리스마 넘치는 고전적 히어로 아닌가. 또한 마르셀루는 현실과 매우 밀착한 캐릭터다. 예컨대 나는 단 한번도 총을 소유해본 적 없다. 평생 총을 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총 없이도 인생의 수많은 희로애락에 온전히 흥분하며 살아왔다. 이 점이 내가 마르셀루에게 입히고 싶었던 현실이다. 영화 제목은 <시크릿 에이전트>지만, 마르셀루는 제목과 장르가 줄 법한 클리셰를 모두 벗어난다. 와그네르는 종종 이 마르셀루가 자신에게 꽤 이례적인 배역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간 다혈질적 남자를 자주 연기해서 그런 것 같다. 어떤 캐릭터든 배우와 감독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 여러 영화에서 ‘집’이라는 특정 공간을 그려왔다. 정주 공간이든, 생활 양식이든 혹은 자산 불평등을 설명하는 도구든 영화를 통해 ‘집’을 탐구하는 일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자극이 있다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면 그이의 많은 정보를 배우게 되지 않나. 나의 경우 타인의 집에 가면 그 사람이 집에 책을 두는지, 혹은 자신의 책을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지를 눈여겨본다. 혹시 거실에는 책이 한권도 없는데 따로 마련된 방에 책이 꽉 차 있지는 않은지 살피기도 한다. 집은 계급과 연동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봄으로써, 한 사회 속 삶의 모습을 유기적 초상으로 얻어낼 수 있다. 집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은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기회다.
- 혹시 다른 ‘영화 속 집’을 주시하기도 하나.
며칠 전 <디스클로저 데이>를 보며 영화 후반 등장하는 세트장에 놀랐다. 마거릿(에밀리 블런트)의 어린 시절 침실을 세트로 구현한 것 아닌가. 그 아이디어가 아주 기묘해 마음에 들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포렌식으로 재구성한 것만 같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작들, 이를테면 <1941>이나 <미지와의 조우>를 보면 아늑하고 몽환적인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어린이 침실’이 등장한다. 물론 브라질의 집과 미국의 집은 전혀 다르고, 내가 프레이밍하는 침실과 스필버그의 버전도 많이 다르지만(웃음) 아무튼 스필버그의 침실숏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디스클로저 데이>의 침실은 이전과 상이한, 사적이고 시적이며 우화적인 공간으로 묘사돼 놀랐다. 무엇이 그 차이를 가져왔을지 궁금해진다. 내 영화로 돌아오면, <네이버링 사운즈> 때만 해도 영화 속 공간이 실제 로케이션과 100% 똑같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아쿠아리우스>로 넘어오며 그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캐릭터를 위해서는 영화적으로 완벽히 세팅된 공간도 필요하다. <바쿠라우>에서 제작진이 찾아낸 수많은 집을 사랑한다. <시크릿 에이전트> 속 도나의 아지트도 마찬가지다.
- <시크릿 에이전트>는 로버트 올트먼의 영화처럼 캐릭터의 앙상블이 주효한 작품이다. 수많은 인물이 소개되고 이들은 서로를 물고 당기며 영화 안팎을 오간다.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동시에 수많은 캐릭터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있다면.
삶의 논리를 활용한다. 누군가의 24시간을 상상해보자.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데, 그를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운전 기사가 아주 재밌는 사람이거나, 자기 아이에 관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그 도시나 월드컵 결과에 대해 대화를 나눌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만으로 흥미로운 캐릭터가 탄생한다. 그러다 비행기를 탔는데 파리를 경유해 핀란드로 향하는 여성이 옆자리 승객으로 탈 수도 있다. 그때도 멋진 대화가 가능할 거다. 이것이 삶의 논리다. 계획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렇듯 삶의 가능성에 촉수를 세우고 있다면, 일상의 모든 경험이 흥미로운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근래엔 시중의 많은 시나리오 작법서를 떠올린다. 책을 펴면 특히 상업영화의 경우 캐릭터마다 특정한 존재 이유가, 내러티브 안에서 분명한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 또한 그런 책을 많이 읽던 젊은이었는데, 그거 다 개소리다. 캐릭터는 존재의 당위 없이도 이야기 속에서 생명력과 진실, 드라마,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 갈등을 불어넣는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많은 캐릭터들은 기억에서 온다. 흥미롭고, 생생하고, 진솔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드는 방식이 만족스럽다. 이 기회에 스크린에 여러 ‘인간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 당신의 장편영화엔 두 가지 구조적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바쿠라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사진의 모음으로 영화의 문을 연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도 이 방식을 고수했다.
<바쿠라우>는 줄리아누 도르넬리스와 공동 연출한 영화다. 혼자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해야 했다. 브라질 세르탕지역의 놀라운 과거 사진들을 찾아낼 수도 있었겠지만 우주와 공간, 그리고 지구의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하는 그림이 <바쿠라우>만의 독자적인 문법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단독 연출작에선 관객이 마치 갤러리의 사진전에 걸어 들어오듯 영화에 진입하길 바란다. 1분 남짓의 시간 동안 교차하는 수많은 과거의 이미지는 관객 스스로 과거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감각을 인지하게 만든다. 흑백사진을 통해 정지한 과거의 현실을 응시한 직후 필연적으로 픽션과 색채, 그리고 움직임의 세계로 뛰어들게 될 거라는 걸 짐작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링 사운즈>의 오프닝 시퀀스를 위해 사진을 배치하던 때가 기억난다. 정적인 흑백숏이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움직임으로, 특히 롤러스케이트를 탄 소녀와 자전거를 타는 비밀 요원의 모습으로 부서질 때 흡족해했다.
- 또 다른 공통점은 3부 구성이다.
영화를 3부로 구성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새롭지 않다. 10부, 7부의 챕터로 나뉜 영화가 얼마나 많나. 그런데 나는 3부 구성이 가장 흥미롭다. 뭐랄까, 그 안엔 내가 매력을 느끼는 문학적인 특성이, 관객의 기대감을 갖고 놀아볼 수 있다는 여지가 존재한다. 의외로 3부 구성에서 가장 신경 쓰는 작업은 ‘말장난’이다. <네이버링 사운즈>의 경호견(Guarddogs)과 경호원(Bodyguards)처럼 경호(Guard)를 굳이 제목에 배치하는 식이다. 챕터에 박힌 텍스트 자체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한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3부 제목이 ‘수혈’인데 앞의 러닝타임을 따라온 관객이라면 피가 명시된 제목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차기작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3부의 구획은 모두 시나리오 단계가 아니라 후반작업 중 자연스럽게 떠올랐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편집 과정이 “글의 문단을 구분하세요”라는 편집자의 피드백처럼 다가온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는 책을 만드는 기분이랄까.
- 수많은 영화를 통해 브라질 헤시피의 과거를 축조하거나 복원했고, 혹은 촬영 시점의 현재적 헤시피의 풍광을 박제했다. 내부자로서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헤시피를 조망하나.
지역색이라는 단어에 갇힌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싶다. 이건 헤시피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수년 동안 미디어에 제대로 비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되는 도시가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스스로를 변방 취급한다. 하지만 그 안엔 수많은 개성과 특질이 있다. <네이버링 사운즈>는 헤시피의 가장 평범한 장소에서 촬영됐다. 그 평범성이 좋아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와이드스크린과 35mm 필름으로 촬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나 존 카펜터, 혹은 고전영화들에서나 볼 법한 전통적인 프레이밍을 보통의 장소에 적용해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구도를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천천히, 나의 도시를 향한 나만의 가족 앨범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수아 트뤼포, 켄 로치,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헤시피는 열대기후의 도시이며, 카니발, 음악, 문화, 사람들, 심지어 상어 떼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특수성을 안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아이디어의 앨범이 됐고, 그 도시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살아간다.
- 신문기사, 구술사, 카세트테이프, 연재만화, 영화 등 <시크릿 에이전트>는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의 여러 형태를 환기하며 사람들이 이야기에 매료되는 과정을 그린다.
헤시피 자체가 글쓰기와 구전 스토리텔링의 전통이 강하다. 헤펜치스타스(Repentistas)라는, 랩보다 100년 앞선 즉흥 음유시인이 흥성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두 작가이자 역사학자의 자녀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문학과 책을 접하고 글을 썼으니 나중에는 나만의 스토리텔링 기술을 적립할 수밖에 없더라.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일부다. 그게 일기장의 메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이메일이나 왓츠앱 등 어디에 적혀 있든지 말이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역사가 기록되고, 전송되고, 촬영되는 시대이지 않나. 왓츠앱 메시지 기록만 봐도 내 영화에 대한 이야기, 친구와의 사연, 아내와의 관계 등 완벽한 서사가 담겨 있다. 이런 요소들로 구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리고 <시크릿 에이전트>를 포함한 모든 영화에서 미디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했다.
- 한국에서는 지난 10년간 임기 중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훼손한 두명의 대통령이 탄핵됐다. 그중 한명은 2024년 12월3일 계엄령을 기습 선포하며 내란을 일으켰고, 시민들이 이에 맞섰다. 그 투쟁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크릿 에이전트>가 한국의 여러 영화제를 순회 후 이듬해 개봉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시크릿 에이전트>가 한국부터 브라질, 미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에서 일어난 극우 세력의 권력 과시 현상에 대한 논평이다. 내 나라 브라질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그런 선택’을 했던, 힘든 시기에 이 작품을 썼다. 민주적인 투표였다고 말하기엔 다소 복잡하다. 그 선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거대 언론에 의해 철저히 조작됐기 때문이다. 그 언론은 극우 후보를 밀어주고, 민주주의 후보를 무너뜨리고 방해했다. 그들은 성공했고 우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4년을 겪었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재선에 실패했고, 이에 반발한 쿠데타 모의 및 의사당 폭동 선동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현재 그의 아들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대권 주자로 거론 중이다.-편집자) 보우소나루는 멍청이다. 무책임한 인간이고, 자기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상황에 대한 역사적 반응이 <시크릿 에이전트>다. (격양된 목소리로) 그러니까 전세계의 ‘퍼킹 이디엇’들이…. 지구촌이 열린 세계라는 점을 인식조차 못하나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한 채 세상을 자기 입맛대로 굴린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족속들이다. 보우소나루와 그 추종자들은 브라질을 자기들이 젊었을 때의 좋았던 시절, 그러니까 50, 60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리고자 했다. 또 브라질 사회가 오래전에 내다버린 병폐마저도 다시 흡수했다. 성소수자나 여성 인권에 대한 몰이해 말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비극이다. 하지만 이 점이 이야기로서는 굉장히 강력한 요소다. 아주 ‘남성적’인 집단이 수백만명의 삶을 대신 결정한다. 그 남자들이 선입견과 사소한 개인적 욕망, 세계의 복잡성에 대한 완전한 무지로 똘똘 뭉쳐 정치를 한다. 여기에 분노해 <시크릿 에이전트>를 썼다. 조국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에서 벌이는 폭력마저 끌어들였다. 현재 미국에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기막힌 비극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아주 무섭다.
- 1977년의 마르셀루는 말소된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려 공기관의 서류철을 뒤지고, 2025년의 플라비아는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격동의 역사를 더듬는다. 이들은 작중 현재에 살며 과거를 향해 간절히 대화를 시도한다. 한국의 한강 소설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특별 강연에서 던진 질문을 인용해 당신에게 묻고 싶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과거를 출토하는 일이야말로 삶과 시간을 응시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과거가 의미 없다고 여기는 이들 또한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나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하면 감동할 것이다. 아카이브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반응이 있다. 단 한장의 사진일지라도 과거의 이미지나 오디오, 문서가 지닌 불가피하고도 압도적인 힘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와 외연을 얼마든지 확장해낼 수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엔 편집, 특수효과, 사운드디자인, 그리고 감독이 추구하는 수많은 다중 서사가 모여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영화는 시간의 컬렉션이다. <시크릿 에이전트> 또한 사람의 이야기나 사람에 대한 관찰에 머물지 않고, 이미지 그리고 사운드의 역사가 개인의 삶과 한 국가, 나아가 세계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자문하며 구축한 영화다. 이 흐름에 오랫동안 매혹당한 내가, 어느 날 문득 책상에 앉아 <시크릿 에이전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