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피 Recife
〖명사〗 브라질의 동북부, 페르남부쿠주(州)에 있는 항구도시. 유럽과의 교통에서 중요한 곳이며, 제당·면 공업이 활발하다. 주도(州都)이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고향이자 <바쿠라우>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장편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다. 헤시피를 향한 그의 애정은 다른 단편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솜 소녀>(2002)는 <시크릿 에이전트>의 ‘털 난 외다리’를 연상시키는 솜 소녀 괴담을 다룬다. 전자기기가 헤시피 중산층 가정의 삶을 통제하는 <가전제품>(2005)이나 열대사바나기후에 속한 헤시피가 혹한기에 접어드는 <차가운 열대>(2009) 또한 구체적 시공간에 상상력을 더한 경우다. 이외에도 멘돈사 필류는 다큐멘터리 <헤시피의 월드컵>(2015)을 통해 브라질월드컵 당시 축제와 동시에 불거지는 빈곤 문제를 다뤘다.
헤시피는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성영화가 도래하기 전부터 소규모 영화 제작자 그룹이 모여 13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지만, 이 도시는 클라우지우 아시스 감독의 <망고 옐로우>(2002) 전까지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에 비해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일이 적었다. 멘돈사 필류는 왜 헤시피를 영화에 담느냐는 질문에 “스파이크 리와 마틴 스코세이지가 뉴욕을 다루듯, 내가 자란 곳이고 사는 곳이므로 당연하다”라고 밝혔다. 그의 차기작 또한 1930년대의 헤시피가 배경이다.
음향 音響
〖명사〗 물체에서 나는 소리와 그 울림.
사운드 슈퍼바이저가 있어도,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영화의 음향 편집에 집요하게 관여한다. 심지어 그는 장편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2012)에선 사운드 슈퍼바이저까지 겸했다. 음향 작업에만 2년이 걸린, 창밖의 개 짖는 소리, 세탁기의 진동음, 노점상의 오디오 소리 등 외화면의 소리가 내화면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인물 못지않게 소음이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영화다. 멘돈사 필류는 “빛은 블라인드로 통제할 수 있지만 소음은 어떻게든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는 착점하에 “사운드를 이용해 삶의 레이어를 겹겹이 더하는” 영화를 완성해냈다(외신에서는 이 작품을 두고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 이후 최고의 노이즈 오프 영화”라고 평했다).
아예 음악평론가가 주인공이었던 <아쿠아리우스>만큼,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다량의 삽입곡이 귀를 어지럽힌다. “저작권료를 지불했는데 왜 굳이 화면 구석의 작은 라디오 배경음악으로 남기느냐. 최대한 자랑스럽게 활용해야지”라는 지론으로 시카고, 도나 서머, 엔니오 모리코네 등의 음악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고. 라디오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화 사운드에 관한 멘돈사 필류의 견해를 옮긴다.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내 영화가 흘러나온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작동해야 할 것이다. 사운드만 들어도 흥미롭고, 수수께끼 같고, 신비로우며 매혹적이어야 한다.”
영화평론가 映畵評論家
〖명사〗 영화평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영화평론가 출신 감독이다. 13년간 일간지 <조르나우 두 코메르시우>나 <폴랴 데 상파울루>에 영화 기사를 썼고, 영화 전문지 <콘치넨치> <시네티카>에서 평론을 게재했다(이 기간 중 2004년 칸영화제에서 역시 한때 영화평론가였던 박찬욱 감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멘돈사 필류가 만든 다큐멘터리 <크리티코>(2008)를 참고해도 좋겠다. 그는 인터뷰 현장에 늘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다녔고, 허락하는 감독에 한해 영상을 촬영해 이를 80분짜리 영화로 재편집했다. 10편의 단편영화 연출과 영화평론 겸직이 힘에 부쳤던 걸까. 어느 금요일. 그는 갑자기 평론을 그만두었다. 다음 토요일. 멘돈사 필류는 지체 없이 <네이버링 사운즈>의 프리프로덕션에 돌입했다.
멘돈사 필류는 자신의 영화에 영향을 준 리스트를 밝히는 데 적극적이다. 그에 따르면 <시크릿 에이전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다. 주유소 오프닝 시퀀스엔 스필버그의 <듀얼>과 <슈가랜드 특급>, 로버트 올트먼의 <내쉬빌>이, 털 난 외다리 시퀀스엔 아벨 페라라의 <드릴러 킬러>와 <복수의 립스틱>, 윌리엄 프리드킨의 <광란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참고로 그는 평론가 출신답게, 자신의 신작이 나올 때면 레터박스와 같은 영화평 플랫폼에 올라오는 리뷰까지 전부 정독한다고 한다.
영화관 映畵館
〖명사〗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을 갖춘 건물.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또 다른 직장은 영화관이었다. 그는 평론가이자 감독인 동시에 헤시피 내 예술영화 및 지역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유명한 조아킹 나부쿠 재단 영화관의 프로그래머였다.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면 마르셀루의 장인어른인 알레샨드리의 일터, ‘상 루이스’의 영사실에서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이 극장은 1952년 개관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 중이다. 몇 차례 폐점과 재개관을 거친 상 루이스는 2023년 침수 피해를 이유로 다시 문을 닫았다. 이때 충격을 받은 멘돈사 필류는 극장의 미래를 묻는 공개서한을 페르남부쿠주 정부에 보냈다. 멘돈사 필류의 노력으로 상 루이스 극장은 2024년 11월에 재개관했다.
그리고 2025년 9월10일, 상 루이스에서 <시크릿 에이전트>의 브라질 최초 상영이 열렸다. 한편 알레샨드리는 실존 인물에 근거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멘돈사 필류의 단편 <영사기사>(1992)엔 41년째 아트 팔라시우 극장에서 일하는 영사기사 알레샨드리 모라(당시 65살)가 등장하는데, 그의 외양은 <시크릿 에이전트> 속 알레샨드리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끝에 이르면 한때 영화관이었던 건물이 등장한다.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자아내는 이 결말부는 실제로 극장 ‘보아 비스타’였던 곳에서 촬영했다. 청소년 멘돈사 필류는 보아 비스타가 1980년 문을 닫기 전까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등을 관람했다고 한다.
아카이브 Archive
〖명사〗 오랜 세월 동안 보존해두지 않으면 안되는, 가치가 있는 자료를 기록하는 것.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영화를 단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건 ‘아카이브’일 것이다. 그의 영화엔 늘 지난 역사를 물리적 실체로 기록하고 저장해 기념하는 아카이브의 공간이 등장한다. <아쿠아리우스>의 주인공은 클라라(소니아 브라가)와 그의 모든 역사가 담긴 집이다. 재개발로 인한 건설사의 퇴거 요청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자기가 살며 투쟁해온 공간 그리고 시간 안에서 존엄하게 버틴다. 유사한 공간은 <시크릿 에이전트>에도 등장한다. 범상치 않은 할머니 도나 세바스치아나(타니아 마리아)의 오피르엔 그의 지난한 삶이 전시돼 있고, 집주인만큼 격렬한 투쟁을 이어가는 세계 각국의 인물들이 한데 모여 산다. 폭력과 억압의 역사를 딛고 혐오 앞에 우뚝 선 공간, <바쿠라우>의 역사박물관도 멘돈사 필류식의 아카이브 스폿이다. 다큐멘터리 <유령들의 초상>은 아예 아카이브를 기조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헤시피에 축적된 시간의 지층을 조망한다. 감독 개인이 소장한 사진과 녹화본은 물론 시네마테크와 브라질의 방송국, TV 네트워크가 보유 중인 자료를 총동원해 영화 자체를 또 다른 아카이브로 만든 셈이다. 트리비아 하나. 멘돈사 필류의 어머니는 역사학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수많은 브라질 문화 인사들의 구술사를 녹음해 연구에 활용했다. 모전자전이다.
블랙리스트 Blacklist
2016년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아쿠아리우스>팀. 사진출처 게티이미지코리아
〖명사〗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 흔히 수사기관 따위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마련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당국의 누적된 병폐를 영화로 고발한다. 극우 포퓰리즘 정부에게 단연 눈엣가시일 터. 2016년,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군부독재 시절 반정부 게릴라 활동에 투신한 지우마 호세프가 직무 정지를 당했다. 칸영화제 기간에 이 소식을 접한 멘돈사 필류는 레드카펫에서 <아쿠아리우스>의 출연진 및 제작진과 함께 “브라질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이후 지우마 호세프는 탄핵됐고, 극우 국회의원들은 오스카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영화상) 심의위원회를 장악해 <아쿠아리우스>가 후보가 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에 브라질영화계는 “브라질이 출품해야 할 작품은 <아쿠아리우스>뿐”이라며 연대의 의미로 자신들의 영화를 자진 철회했지만, 심의위원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골라 제출했다. 이같은 사보타주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악명 높던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우파 정권은 <바쿠라우>가, 우파 정당을 후원하는 기업의 이익 단체는 <시크릿 에이전트>가 브라질 대표로 오스카 국제영화상 후보에 나서는 데 조직적인 방해 공작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엔 관객이 함께 저항했다. <바쿠라우>와 <시크릿 에이전트>는 브라질 내에서 기록적인 흥행 성과를 냈고, 이중 <시크릿 에이전트>는 오스카 후보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