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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중한 탐색의 미덕, 제31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심사평 – 최우수상 박윤희, 우수상 최재혁

제31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은 4년의 공백을 깨고 5년 만에 최우수상을 선정했다. 심사가 수월했던 적은 한해도 없었지만 올해는 한층 각별했다. 최우수상 없이 우수상 2인 선정이 이어졌던 건 비평의 평준화에 따른 불가피한 흐름이기도 했지만 심사측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남다은·오진우 평론가, 송경원 편집장, 조현나 기자 4인의 심사위원이 올해 공유한 심사 기준은 개성과 가능성이었다. 상투적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기본으로 돌아간다. 기존의 논의와 차별화되는 시선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했고, 이어서 본인만의 호흡과 언어로 논지를 풀어나갔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미세한 차이라도 그 결을 나누기 위해 고심하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검토했고, 결국 최우수작 1편을 결정할 수 있었다.

올해는 지난해 72편에서 크게 증가한 총 112편의 소중한 원고가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모였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100편이 넘는 작품이 모인 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제는 기본값이 되어버린 비평의 위기(혹은 무용)론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글을 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 올해는 상대적으로 허수도 적었다. 많은 응모작들이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맞추어 작성된, 소중한 결과물을 보내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가지 특이할 사항은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는 점이다. <어쩔수가없다> <세계의 주인> 등 화제작에 대한 글이 없진 않았지만 외화에 대한 관심이 월등히 높았다. 꾸준히 투고되었던 홍상수 감독에 대한 글이 거의 없었던 점도 이채롭다. 반면 개별 작품이나 감독론보다 서부극, 역사물, 실화 바탕의 영화, 매체론 등 다양한 주제로 접근한 글들이 많았다. 특히 이미 활동을 하고 있는 기성의 평론가와 여러 차례 응모를 해주신 익숙한 이름들이 적지 않았다. 현재 비평 글편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이 얼마나 부족하고 목마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최종심사에 오른 11편의 작품 중 마지막까지 논의를 이어간 건 기효준, 박윤희, 임태수, 장지애, 최재혁씨 5인의 글이었다. 기효준씨의 장평 ‘21세기 서부극을 통해 바라본 서부극의 장르적 순환성’은 논지를 명쾌하게 이어나간 흥미로운 글이었다. 다만 왜 서부극을 대상으로 삼았는지에 대한 당위가 부족했고, 기존의 분석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임태수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대한 단편이 돋보였다. 가독성이 높은 표현과 문장이 눈길을 끌었지만 장평의 논지가 상대적으로 거칠다는 지적을 받았다. 장지애씨의 장평 ‘영화는 시를 구원할 수 있을까-마티아스 피네이로 <너는 나를 불태워>와 포이에시스의 정치학’은 논리, 구성, 전개 모두 흠잡을데 없는 완성도의 글이었다. 다만 이슈를 날카롭게 잡는 저널리즘 비평이라기보다는 정제된 소논문에 가까운 글이라 접근이 쉽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단편이 다소 급하게 쓴 인상을 줄 만큼 밀도가 떨어졌다.

우수상 당선자 최재혁씨의 ‘기입되는 디지털 망명지’는 설정된 주제를 밀고 가는 힘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올해는 조르조 아감벤을 비롯한 몇몇 이론가의 통찰과 실험영화에 대한 애정에 기반을 둔 글이 많았는데, 최근 비평의 화두와 유행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단평 역시 접근 방식이 새로웠다. 다만 이미 결정된 주제와 결론을 다소 편의적으로 활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치열한 논의 끝에 최우수상으로 결정된 박윤희씨의 글은 여타 응모작들에 비해 소박한 접근으로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를 깊고 성실하게 응시하는 시선에서 영화를 향한 절실한 애정이 묻어났다. 동시에 이내 소박해 보이는 통찰이 얼마나 섬세하게 깊이에 도달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글이었다. 가만히 오래 보면 진가를 드러내는, 분리되지 않는 덩어리처럼 단단한 통찰에 기반한 결과물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로 작품을 관통하는, 선명한 색깔과 섬세한 취향, 그리고 기저에 흐르는 영화를 향한 은밀하고 뜨거운 애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 심사는 쌍방향이다. 심사를 받는 사람들과 동등하게, 심사하는 자들 역시 시험의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올해의 당선작들은 앞으로 <씨네21>이 향할 방향과 의지를 표명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평의 소용과 쓸모가 풍화되고 있는 시대, 31번째 영화평론상을 발표하며 <씨네21> 역시 함께 의지를 다진다. 거창하게 비평의 영토, 소박하게 영화를 읽고 쓰는 이들이 자신을 표현할 무대를 잃지 않도록 오늘의 할 일을 다하겠다. 지면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할 이들의 활약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