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의 장르 전략은 명확하다. 다음 장면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 지구를 침공한 것처럼 보이는 외계 생명체의 등장도 같은 맥락 안에서 기능한다. 그런데 영화 역사상 새로운 크리처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게 쉽지 않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예상할 수 없는 생명체의 디자인이란 게 있을까. 그러므로 <호프>의 장르 전략은 명확하다. 현대 관객에게 익숙한 징그러운 크리처 디자인을 한꺼번에 등장시키자. 괴수종합선물세트 같은 <호프>의 크리처 디자인 계보를 짚어봤다. 제작진의 공식적인 레퍼런스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짐작만으로 줄 세운 리스트임을 밝혀둔다.
자이언트
<호프>의 호포항을 쑥대밭으로 만든 정체가 곰인지 호랑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범석(황정민)은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그것이 “크고 길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현대 괴수영화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는 흔히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로 묘사되기 마련이다. <호프>의 미확인 생명체 역시, 특수효과의 거장 레이 해리하우젠 영화에서 묘사하는 거대 괴수나 일본의 <고질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수 캐릭터의 활용과 흡사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묘사한다. 최근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는 몬스터버스라는 세계관을 만들어 거대 괴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프>를 볼 대다수의 관객이 이사야마 하지메 작가의 <진격의 거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물론 제작진의 크리처 컨셉 디자인과 거인화된 에르디아인과의 연관성은 확인된 바 없다.
변신 메카닉
<호프>는 단순히 거대한 크리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것들의 형체가 변형을 일으키도록 디자인했다. 쉽게 말하면 대중문화 속 로봇 캐릭터의 컨셉이나 기능을 떠올리게끔 디자인되었다. 이와 연관된 대표적인 작품이 <트랜스포머> 시리즈다. 미국의 완구 회사 해즈브로와 일본의 완구 회사 다카라토미의 합작 아래 탄생한 이 거대 프랜차이즈는 일상의 가전제품이 로봇으로 변신하도록 디자인한 것이 핵심 컨셉이다. 바로 이를 디자인한 사람이 <마크로스>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메카닉 디자이너인 가와모리 쇼지다. ‘변신 메카닉’이라는 하나의 캐릭터 장르를 탄생시킨 그의 작업 이후, <파워레인저> 시리즈, <용자> 시리즈 등 수많은 걸작들이 변신 메카닉의 계보를 잇게 된다. <호프>에서 마베이요라는 캐릭터에서 변신 메카닉의 흔적이 엿보인다. 형체는 괴수지만 생김새는 인간과 유사하게 디자인된 점도 변신 메카닉 디자인 방향과 유사하다. 변신 메카닉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원형은 지구를 침략한 외계 존재에 맞서 인간들이 외계의 힘을 빌려 대항한다는 스토리다. 이 또한 <호프>와 연결된다.
아가미 인간
<호프>에 등장하는 모든 외계 생명체는 직립보행을 한다. 체형 조건이 인간과 흡사하며 물리적인 힘은 엄청나다. 나홍진 감독은 칸영화제 공개 당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 참고한 영화 중에서 잭 아널드 감독의 1954년작 <검은 산호초의 괴물>을 언급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가미 인간(Gill-man)은 양서류 인간형 생명체인 것이 특징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템페스트>의 칼리반, 안데르센 동화 <인어 공주>, H. P. 러브크래프크의 작품 속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 존재하는 딥원 등이 비슷한 맥락에서 창조된 캐릭터다. 대중문화에서는 <플래시 고든>의 상어인간, <헬보이>의 에이브 사피엔이 이를 계승했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양서류 인간이 이를 가장 훌륭하게 업그레이드시킨 캐릭터다.
이들은 어쨌든 지구 생태계 기반의 존재라서 가상의 해저도시나 심해와 연관이 있고, 아가미로 호흡하며 대체로 몸은 단단한 갑각류로 둘러싸여 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이들과 <호프>에 등장하는 존재와의 연관성을 따진다면, 얼굴의 형태를 꼽겠다. 디즈니 스튜디오 초창기의 여성 애니메이터이자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특수효과 메이크업 부서 최초의 여성 스태프였던 밀리센트 패트릭 디자이너가 창조한 아가미 인간의 얼굴에서는 그것이 괴물인지, 아니면 오해받는 존재인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슬프고 아름다운 인간성이 느껴진다.
제노모프
현존하는 인간형 생명체 디자인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1979)을 꼽을 것이다. <호프>의 생명체 역시 H. R. 기거가 창조한 에일리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육체와 기계의 기괴한 조합처럼 보이는 디자인, 인간의 한계를 위협하는 폭력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가상의 종 ‘제노모프’는 숙주에 기생하면서 오로지 종족 번식의 목표 외엔 별다른 지능도 없어 보이는 원초적인 포식자처럼 묘사된다. 물론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크리처 디자인도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DNA 복제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종이 양산된다는 설정도 덧입혀지고 있지만 그 압도적인 원형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최근 한국에서 만들어진 SF 드라마 <스위트홈> <경성 크리처> 등에 등장하는 인간 신체를 변형시킨 크리처 디자인도 제노모프의 신체적 기능과 유사성이 많다. 끈적끈적한 점액질과 단단한 갑피, 날카로운 강철 돌기 묘사 같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호프>에 등장하는 여러 생명체 중 일부는 손가락 5개, 발가락 4개의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무릎과 발꿈치 사이에 관절이 하나 더 존재한다. 역시 속도와 파워 모두를 자랑하는 제노모프의 신체 구조와 유사하다. 우주선 내부 구조도 <에이리언> 시리즈 세계관 속 엔지니어의 우주선 모양과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