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공원에 가본 적 없던 유년 시절, 혼성그룹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들으며 환상을 품었다. 어른이 되어 가본 마로니에 공원에는 정작 마로니에가 몇 그루 없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조성래 시인의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은 백일장을 치른 마로니에 공원을 추억한다. 그때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어폰으로 들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파일명은 ‘Mozart.mp3’였는데, 지금은 그 곡이 바흐의 것임을 알지만 그날의 장면을 수정할 수는 없다는 시인의 말에 백번 동감한다.
<햇생강이 나오면>은 젊은 시인 23명의 시를 엮은 여름 앤솔러지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은 남현지 시인의 시 <햇>에서 따왔다고 한다. 햇, 그해에 새로 났다는 뜻의 접두사. 발음이 귀엽고 생김새가 산뜻한 말. 그렇지만 햇생강에는 집에서 보내주는 말린 생강이 따라붙고, 아무리 차를 마셔도 생강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단다. 찬장 곳곳에 밀어넣곤 했던 말린 식재료들과 그 식재료들을 다 품지 못한 채 흘러간 시간을 떠올리니, 쓴맛이 입 안에 슬쩍 감도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학교를 찾아온 엄마가 “살이 부러진 우산”처럼 복도에 서 있었다는 김혜연 시인의 <복도>를 읽으며 학창 시절 엄마가 부끄러운 나의 마음과 엄마에게 감추고 싶은 나의 사정을 추억한다. 비바람에 젖은 엄마와 바다로 돌아갈 때를 놓친 인어 이미지가 포개지고, 벚꽃과 푸른 파도가 얽히는 시의 흐름에 빠져본다. 강우근 시인의 <개미 한마리를 실수로 밟 을 뻔한 날>을 읽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물렁물렁합니다”라는 문장을 발견하고서,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약함과 관계의 끈적함을 곱씹는다. 스티븐 킹의 유명한 작법서를 읽어본 독자라면 넘길 수 없을 유선혜 시인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픽션 쓰기의 직업적 윤리를 다룬다. 적당한 시련과 적당한 인물을, 너무 평범하지는 않고 너무 심각하지도 않은 비극을 떠올리되 남의 인생사는 적당히 바꿔서 쓰라는 직업윤리라니, 상상의 실험 쥐를 대상으로 전기충격을 주는 과정과 얼마나 다르냐는 말이다. 임유영 시인의 <고해성사>는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장롱 속에서 비명을 지른 기억과 장롱 같은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고해성사를 나란히 두고 용서가 무엇인지 묻는다. “시집도 집이다”라는 장난스러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김진선 시인의 <가업>은 제 집을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을 지어주러 전국을 돌아다닌 엄마의 아버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었다. 시집도 집이라면 이 시집은 기억에 남을 시,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시로 지은 집이라고 생각해본다.
너의 마음을 오리고 접어 나를 만드는 법을/ 잊지 않을 거지? - 조온윤, <종이의 친구>, 168쪽
물티슈로/ 패딩을 계속 닦으며/ 숨이 잔뜩 죽은 삼년의 얼룩을 본다 - 유수연, <깃털 같은 사람>, 11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