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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박찬욱 각본 컬렉션>

박찬욱, 이종용, 이재순, 박리다매 외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어쩔수가없다>까지 박찬욱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 각본을 모은 <박찬욱 각본 컬렉션>이 9권으로 출간되었다. 묵직한 박스세트로 묶인 9권의 책에는 오직 각본만 실려 있는데, 그 점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영화는 영화로 말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세트로 묶였기 때문에 통일감 있는 판형과 디자인이 적용되어 시나리오의 ‘분량’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데, 가장 분량이 적은 책은 <복수는 나의 것>,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은 <아가씨>다. 유일하게 박찬욱 감독의 이름이 각본 크레딧에서 빠진 책은 <복수는 나의 것>이다(대신 ‘박리다매’라는 이름이 올라 있는데, 이것은 이무영, 박찬욱 두 사람의 공동 작업 팀명이다). 참, 한국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를 ‘책’이라고 부른다.

(개봉과 영화관 상영을 마친 영화의) 각본 읽기는 영화를 보지 않고 각본만 읽는 아주 드문 케이스를 제외하면 필연적으로 영화 속 장면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때로 최종 편집본에서 빠진 장면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렇게 여러 편의 영화 각본을 한번에 읽다 보면 영화들간의 상관관계를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가장 즐겁게는, 글이 어떻게 연출과 연기로 표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마지막 3페이지는 몇줄 되지 않는 대사 말고는 온통 지문으로 빽빽하다.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간결해서 각본만으로는 영화의 그 처절한 혈투를 상상하기 불가능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각본으로 읽으니 더 슬프게 느껴진다. 근작인 <어쩔수가없다> 대본에서 범모가 아내 아라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의 지문에는 “서둘러 쌍안경을 찾는 만수, 범모의 붕괴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붕괴’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헤어질 결심>에서 이 단어가 인상적으로 쓰였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그러니 대사만큼이나 지문 부분을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마시길.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세 작품의 각본은 이번 박스세트를 통해 최초로 정식 소개된다.

“솔직히 니 편지 받고 맘이 설레서 한숨 못 잤다… 내 고향은 신의주야. 경의선이 출발하는 곳이지. 좀 춥지만 좋은 곳이야. 사람들두 순박하고… 그런데 ‘록 그룹’이 뭐지? 무슨 악단 같은 건가? 아무튼 [사랑과 평화]란 이름은 퍽 좋구나, 야.” - <공동경비구역 JSA>, 경필의 대사,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