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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지난 여름> 최승우 감독

- 2022년 숙취가 심한 날 아침, 식탁의 밥을 보며 ‘쌀이 만들어지는 홍천에 가봐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것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가보니 어땠나.

농촌에 사는 분들을 보고 느낀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들을 내가 재현할 필요도 없고 재현할 능력도 없다는 사실부터 깨우쳤다. 농촌에서 이뤄지는 실제 삶의 영역이란 그분들의 것이다. 내가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한 1년 지어본다고 그 영역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한 배움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다큐멘터리 파트와 극영화 파트를 구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 파트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특정한 장면이나 대사를 넣기보단, 주민분들이 하신 말씀을 옮기는 데 집중했다. “사람이 20% 농사짓고, 하늘이 80% 농사짓는 거다”라는 이장님 말씀 같은 것들. 촬영 때 모니터하면서 무척 좋아했던 대사다.

- 그렇다면 민우가 등장하는 극영화 파트가 왜 필요했나.

영화 전반에 생사의 순환을 담고 싶은데, 누군가의 죽음을 기도하듯 기다릴 순 없지 않나.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그러니 픽션 파트를 넣고 거기에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야 했다.

- 챕터(장마, 가뭄, 추수)와 픽션, 논픽션 파트가 나뉘어 있고 촬영 기간도 길었다. 게다가 제작진의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다. 촬영의 형식적인 일관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피사체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자는 기준만은 지켰다. 나머지는 촬영하면서 많이 깨졌다. 규칙을 다 지키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예를 들어서 촬영일이 아닌 날에 논에 벼가 얼마나 자랐는지 매일매일 보러 가면, 이장님이 사모님과 일하실 때가 있다. 그럴 때 급히 촬영감독의 개인 카메라를 꺼내서 그 장면을 찍곤 했다. 그러다보니 영화 중간중간 다른 카메라로 찍은 푸티지도 생겼다. 처음에는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어떻게 내가 무언가를 다 지키면서 만들겠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 긴 프로덕션 기간 내 편집 방식은 어땠나.

기본적으론 하루하루 촬영이 끝날 때마다 그날 촬영본을 편집했다. 앞뒤에 붙을 숏의 길이가 적절한지, 리듬이 정확하고 명확하게 잘 이어지는지 계속 체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가뭄에서 장마로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기간엔 긴 호흡의 중간 점검 시간도 있었다. 실제로 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가뭄 파트를 5월에 찍으면서는 중간에 카메라 패닝도 넣었는데, 편집하며 다시 보니 별로더라. (웃음) 그다음부턴 패닝을 최대한 줄였다.

- 가뭄 파트 때 민우가 약국에 가는 와이드 앵글의 패닝숏이 유독 두드러진다고 느꼈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나보다. 그러나 이 장면 덕에 <지난 여름>이 공간을 어떻게 찍으려 하는지 그 태도와 호흡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숏의 호흡만큼은 원하는 대로 담기기를 바라며 찍는다. 다만 문제는, <지난 여름>의 촬영 방식이 그럴 수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논에서 일하시는 어르신께 여기에서 저기까지 시간에 맞춰서 움직여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웃음) 나에게는 엔지지만, 그냥 카메라를 놓고 더 기다려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 가편집 때는 러닝타임이 90분쯤 나왔다. 전반적으로 늘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파트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극 파트로 넘어갈 때마다 덜컹거리는 느낌이 나더라. 결국은 76분으로 정리했다.

- 비전문 배우인 마을 주민들의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했나.

못했다. 동선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동선을 정해드리면 다들 갑자기 로봇이 되어버리신다. (웃음) 녹화한다는 말씀을 드려도 굳어버리셔서, 그냥 대화 중의 어느 순간에 살짝 녹화 버튼을 누르게 됐다. 찍다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기더라. 녹화를 시작하고 초반엔 영화에 안 쓸 법한 질문을 몇개 여쭙는다. 그렇게 긴장이 조금 풀리시면 그 뒤에 영화에 필요한 이야기를 최대한 하려고 했다. 테이크 초반엔 정말 프레임 바로 바깥에 내가 서서 어르신들과 대화했고, 어르신들께서 자연스러워지시면 점차 거리를 두곤 했다.

- 슬레이트 치기도 어려웠겠다.

슬레이트 없는 컷이 너무 많았다. 혼자 편집하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웃음) 그런데 어쩌겠나. 내가 택한 방식인데 받아들여야지.

- 영화의 대부분이 관습적이지 않게 느껴진 것은 제작 방식에서부터 여러 관습을 깼기 때문인 듯하다. 편집 과정에서 덜어낸 부분도 궁금한데.

조금 더 극적인 대목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가뭄 파트에서 민우가 키우는 금붕어가 원래는 장마 파트까지 등장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붙이고 보니 되게 유치하더라. 너무 상징적인 것 같았다.

- 그렇다면 가뭄 파트에서부터 금붕어 신을 없앨 수 있었을 텐데. 그 조각만 남긴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만약 관객들이 금붕어를 보고 무언가 기대한다거나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을 때, 그 존재가 아예 사라져버리는 쪽이 좋아 보였다. 실제로 가뭄과 장마 사이의 시간적 틈이 있지 않나. 그때 금붕어가 어떻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이렇게 여러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그 순간에 카메라가 꺼져 있었을 뿐이다.

- 그렇지만 이 정도로 연출자의 존재감이 큰 영화에서 어떠한 의도나 의미를 전부 소거할 순 없을 듯하다. 어느 지점에서 타협하나.

<지난 여름>을 거의 다 편집하고 크게 절망했던 날이 있다. 전력을 다해서, 영화 속의 어떠한 주장을 다 없애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거다. 카메라 위치도 내가 잡고 편집도 다 내가 했는데 어떻게 아무런 주장이 없을 수 있겠나.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또 혼자 고통받으면서 그 결과를 받아들였을 때 <지난 여름>을 더 이상 안 봤다.

-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지난 여름> 속 농부들의 태도 같다. “사람이 20% 농사짓고, 하늘이 80% 농사짓는 거다”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농사’를 ‘영화’로 바꾸면 비율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영화 만들기가 농사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하지만 비율까지는 글쎄, 최소한 영화 몇편은 더 만들어봐야 감이 잡힐 것 같다. 사실 내가 고집이 센 편이라 끝까지 억지를 부리려 한다. 그런 만큼 어쨌거나 최대한 전력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만들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게 됐다.

- <지난 여름>이 말하려는 바는 모두가 어느 정도 아는 부분 같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진인사대천명’의 태도를 지향할 것.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 도시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일까.

그 문제를 풀면 세 번째 장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