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오래된 이야기를 영화로 옮긴데도 흥미진진할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훌륭한 이야기엔 유효기간이 없다는 걸 증명하며 과거의 대서사시를 스크린에 생생히 되살려낸다. 영화의 시작,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이타카를 떠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대한 목마를 지혜의 여신 아테나(젠데이아)에게 바치는 선물로 속이는 책략으로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왕좌가 빈 사이 왕비인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의 구혼자들이 궁을 점령하고는 매일 밤 연회를 벌이며 곳간을 축내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는 지중해의 눈부신 태양과 맑고 푸른 바다를 뽐내지 않는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어스름한 시간 해안가에 처박힌 거대한 목마, 어두운 석조건물에서 벌어지는 연회를 가장한 탈취 현장을 비추며 관객에게 씁쓸한 감정부터 안긴다. 여기엔 승리의 고양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또 다른 삶의 난관이 이어질 따름이다. 인간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다가 한세월을 다 보내는 존재인 걸까. 페넬로페는 수의를 완성하면 재혼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밤마다 실을 풀며 겨우 시간을 벌고 있고,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는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처럼 구혼자를 가장한 무뢰한들에게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신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그러나 두 사람이 기다리는 오디세우스를 위대한 영웅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그러하듯 그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박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오디세우스는 무겁고 단단한 전쟁의 갑옷을 벗고 흐느적거리는 베옷을 걸치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채 등장한다. 기억까지 잃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가족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치른 전쟁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바다의 요정 칼립소(샬리즈 세런)는 오디세우스의 귀향 의지를 꺾지 못하자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질문을 던지며 그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선 자신으로 되돌아오도록 돕는다.
오디세우스와 칼립소의 대화로 촉발된 회상 신들은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하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빌 어윈)의 동굴에 갇혔던 일, 바닷물이 차오르는 목마 안에 숨죽이고 있다가 트로이를 함락시킨 밤, 마녀 키르케(서맨사 모턴)에게 부하들을 모두 잃을 뻔한 일화 등이 재현된다. 특히 바다에서 표류하며 세이렌,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를 맞닥뜨린 순간은 이 영화에서 뱃사람들이 느끼는 바다의 포악함을 극장에 묶인 관객이 간접 체험하게끔 이끈다.
기억과 시간이란 테마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이 테마를 붙들어맨다. 기억은 순서대로 되돌아오거나 기억의 조각들이 선형적으로 차례가 잘 맞추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난 이후의 이야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을 먼저 보여준 다음 함락한 트로이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작위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떤 기억은 되짚을수록 깊은 의미가 생겨나기도 해서, 이 도시국가가 함락되는 광경을 여러 번 재현하며 오디세우스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가 고찰하도록 만든다. 망각에 빠진 책략가가 불타는 트로이의 모습을 반복해서 떠올릴 때 관객도 이타카의 왕과 함께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인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 무너졌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관한 통찰로 이어진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폭력을 효과로서만 단순화하지 않고 그를 준비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은 연출자다. <오디세이>에서도 목마가 트로이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그것이 설계되고 내부에 숨은 사람들의 사정을 소상히 보여주면서 폭력을 행하는 자의 마음속 흔들림을 포착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책략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도 목마가 한 국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깊이 있고 통렬하게 다가온다.
물론 <오디세이>는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영화 형식을 시도한 작품은 아니다. 호메로스의 고전을 뿌리에 두었고 전에 보지 못한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조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오디세이>는 고전적 서사를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관객을 뒤흔드는 묵직한 힘을 발휘한다. 가령 인물들 누구나 외우듯 말하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그는 변장한 신일 수 있으니”, 즉 ‘제우스의 법’은 러닝타임 동안 반복, 강조되어 현대 관객에게 하나의 메시지로 가닿는다. 자연스레 오늘날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들을 떠올리게 하며 평화와 환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소로 변해 “음매” 소리만 내야 하는 여인 이오, 다른 사람의 말만 되풀이하는 요정 에코 등을 등장시켰듯, 침묵을 강요받았던 페넬로페도 현대화되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속 페넬로페는 음유시인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풋내기인 아들에게 “어머니 방으로 다시 올라가세요. 가셔서 어머니의 직분인 베틀 짜기에 매진하시란 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남자가 할 일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영화 속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떠난 20년간 이타카를 통치한 자가 자신이었음을 명확하게 아들에게 주지시키는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오디세이> 전체 분량을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과 함께 아이맥스 필름카메라로 촬영했다. 카메라 특성상 촬영 시간이 3분가량밖에 되지 않아, 숏의 길이는 최장 3분이지만, 영화가 다루는 서사는 방대하기만 하다.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의 후반부와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 10년, 약 20년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3분짜리 숏을 페넬로페가 베를 짜듯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172분의 ‘시간의 직물’을 만들어냈다. 긴 시간을 응축하면서도 강렬한 기억과 중요한 메시지를 유려하게 반복하는 그의 솜씨는 내러티브 영화가 해낼 수 있는 최상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숏의 길이가 유난히 짧다는 느낌을 받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대서사시에 빠져들면 20년의 세월을, 바다와 육지를 훌쩍 넘나들게 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오디세우스는 “훗날 기억이 될 문명의 흔적은 노래”라고 이야기한다. 인류의 오래된 서사를 되살려내 생기를 불어넣은 크리스토퍼 놀런은 오디세우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듯하다. 노래가 인간의 유한한 기억과 시간을 되살려냈다면, 이제는 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