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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화와 영화 사이 - 11개의 얼굴들, 오디세우스부터 키르케까지, <오디세이아>의 인물들은 어떻게 달라졌나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

고귀한, 많이 참는, 꾀 많은, 영광스러운, 웅변에 능한 자,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이아>는 수많은 관형어로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다양한 면모를 설명한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를 고안해 10년의 트로이전쟁을 아카이아군의 승리로 이끌었지만, 금의환향의 길에서 신들의 노여움을 사 또다시 10년을 바다에서 표류한다. 또 이타카에서는 자신의 영지와 아내를 노리는 구혼자들과 최후의 전투를 벌인다. 전투력에 비례하는 이성과 언변을 가졌고,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껴안은 실존적 영웅이 <오디세이>에선 끝없는 공허 속에서 학살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리고 아비의 죄가 아들에게 대물림되지 않도록 십자가를 짊어진다. 한편 고전학자 에밀리 윌슨(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영어권에서 최초로 완역한 여성이다)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듯한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 묘사가 형편없다”는 비평을 기고해 분분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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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인터스텔라>+<마션>=? 소셜 커뮤니티 ‘쿠오라’에 의하면 할리우드는 맷 데이먼을 구조하기 위해 (인플레이션까지 반영해) 총 9천억달러를 족히 지불했다. 숱한 맷 데이먼 구조기 중 <시리아나>를 <오디세이>와 함께 보면 좋을 이유는 데이먼이 연기한 브라이언을 이루는 제1 요소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무난한 삶을 살던 인재가 중동 정세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는 점 또한 오디세우스와 일면 닮았다.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

가장 고귀한 여인. 신중한 페넬로페. <오디세이아>의 페넬로페는 20년간 남편 오디세우스를 향한 정절을 지킨다. 구혼자들이 재혼을 강요하자 “시아버지의 수의를 완성한 다음 결정하겠다”라며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몰래 실을 풀어버리는 지략도 펼치지만, 텔레마코스의 표현대로 “여자의 일”에 충실한 이상적 아내 이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오디세이>의 페넬로페는 다르다. 독수공방의 번민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구혼자들을 위한 연회 주최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재혼을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텔레마코스의 말에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지난 20년간 왕좌를 지킨 건 나”라며 풋내기 남성들의 맨스플레인을 일축해내기도 한다. 영화는 ‘앤 해서웨이 보유작’임을 과시하듯, 페넬로페가 분노하며 눈물짓고 서러워할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그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프레이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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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에서 <I Dreamed a Dream>을 열창할 때, <인터스텔라>에서 사랑의 의미를 연설할 때. 감독들은 보란 듯이 앤 해서웨이의 얼굴 근처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두 작품이 나오기 전 <레이첼 결혼하다>의 킴이 있었다. 언니 레이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재활원에서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온 킴은 가족 안에서 늘 긴장과 갈등을 유발한다. 조너선 드미 또한 애정결핍과 불안이 뒤엉켜 온몸으로 고독을 호소하는 킴의 표정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킴도 페넬로페도, 집에 있는데도 심신이 괴롭다.

톰 홀랜드의 ‘텔레마코스’

총명한, 강력한 힘을 지닌 텔레마코스. <오디세이아> 속 텔레마코스는 누구에게나 오디세우스의 기상을 연상시키는 청년으로 묘사된다. 구혼자들의 눈을 피해 항해를 떠나 아버지의 업적을 전해 듣고, 여정의 끝에서 아버지와 재회해 명예를 지키며 왕위의 자격을 입증한다. 신화 속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성장 서사의 원형이다. <오디세이>의 텔레마코스 또한 분명한 ‘성장캐’다. 그런데 <오디세이>는 작품 초중반의 텔레마코스를 응석받이처럼 그린다. 최후의 전투에서 텔레마코스가 보이는 활약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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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코스는 좋은 아들이다. 세간의 평을 수용하되 자기만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머니를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대로 존중하려고 애쓴다. 톰 홀랜드는 텔레마코스보다 성숙한 아들을 이미 10대에 연기했다. 그가 <더 임파서블>에서 분한 소년 루카스는 쓰나미 앞에서 엄마를 지키려는 사춘기 소년이다. 개봉 당시 모든 평단이 “연기 천재가 나왔다”라며 주목했다.

로버트 패틴슨의 ‘안티노오스’

신화든 영화든 작품 최고의 빌런이다.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108명의 무리 중 가장 오만하며 텔레마코스 암살 모의를 주도한다. 안티노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중요한 도덕률(영화에선 제우스의 법이라고 표현한다)인 환대를 철저히 무시하므로 말로가 예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빤하게 그려지기 쉬운 인물이고 영화 또한 안티노오스를 달리 해석할 여지를 주지 않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어떻게든 판에 박힌 인물을 살아 숨 쉬도록 만든다. 안티노오스가 페넬로페의 규중에 들어가 속삭이는 대화 신 역시 패틴슨이 아니었다면 스파크가 덜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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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은 지금 상업영화와 아트하우스영화 모두가 원하는 일급 주연배우다. 그는 조역일 때도 못지않게 빛난다. 올해 초 개봉한 <다이 마이 러브>는 단연 제니퍼 로런스를 위한 영화지만 패틴슨의 은근한 서포팅이 없었다면 작품의 착란적 매력이 절반으로 줄었을 터다. 패틴슨의 좋은 조연 연기는 <잃어버린 도시 Z>와 <라이트하우스>에도 담겼다.

히메시 파텔의 ‘에우릴로코스’

대범한 에우릴로코스. 그리스의 맹장인 동시에 함대의 부함장이고, 오디세우스의 동생 크티메네와 결혼한 매제이다. 상관이자 형님인 오디세우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불멸자와 필멸자의 대비가 중요한 화두인 <오디세이아>에서 에우릴로코스는 지극히 인간이다. 굶주림과 질병 앞에 이성을 잃고 무너지고, 무모한 여정을 지속하려는 오디세우스에게 거듭 반항한다. <오디세이> 속 히메시 파텔의 연기가 에우릴로코스의 인간다움에 놀라운 현실성을 부여한다. 트로이에서도 망망대해에서도 오디세우스만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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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의 무명 뮤지션 잭, <돈 룩 업>의 제니퍼 로런스 남자 친구…. 히메시 파텔의 이름은 낯설어도 그의 얼굴만은 눈에 익을 것이다. <오디세이>를 통해 파텔의 연기에 매료된 독자에게 <HBO>의 시리즈 <스테이션 일레븐>을 추천한다. 그가 분한 지반 차우드하리는 전염병으로 붕괴된 문명 한가운데에 있다. 방황하다가도 위기 앞에선 타인을 구하려 몸을 던지는 지반은 시리즈 안에서 온갖 선의를 전담한다.

존 레귀자모의 ‘에우마이오스’

가장 고귀한 돼지치기.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를 제외하고 <오디세이아>가 고귀하다고 일컫는 대상은 에우마이오스뿐이다. 에우마이오스는 오디세우스의 부재에도 주인의 영지를 성실하게 관리하고, 아버지 없이 자란 텔레마코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한다. 존 레귀자모는 흡사 강호의 고수처럼 에우마이오스가 지녔을 법한 품위를 정중한 말씨와 고아한 제스처로 구현해낸다. 신화와 달리 영화 속 에우마이오스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 레귀자모가 사건의 전말을 돌아보고 해법을 제시할 때면 그가 스크린 너머의 관객까지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는 듯하다. 가히 스크린 속 ‘올해의 충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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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 <썸머 오브 샘> <아이스 에이지> <아메리칸 셰프>…. 존 레귀자모는 오랫동안 여러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에우마이오스만큼 카리스마를 자랑한 배역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티볼트다. 베로나 비치에서 담배꽁초로 주유소를 폭파하고, 현란한 권총술을 과시하던 그가 30년이 지나 절제된 무공으로 이타카를 수호한다.

샬리즈 세런의 ‘칼립소’

사진출처 GETTYIMAGESKOREA

머리 곱게 땋은 무서운 여신. 교활한 칼립소. 난파당한 오디세우스를 먹이고 입히며 사랑마저 베푼 신을 왜 이렇게 서술하나 싶지만 어찌 됐든 신화 속 칼립소는 7년간 오디세우스를 오기기아섬에 가둔다. 칼립소는 스스로의 불멸성을 앞세워 필멸자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하지만, 끝내 사랑하는 남자의 귀환을 위해 뗏목을 만들 목재를 내어준다. 자비와 구속. 양면이 존재하는 칼립소는 영화 속에서도 연민 아래 집착을 담는다. 샬리즈 세런이 연기한 칼립소는 마치 소크라테스 같다. 망각에 빠진 오디세우스에게서 끊임없는 산파법을 통해 ‘영웅담’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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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즈 세런이 <오디세이>에서 발휘하는 가장 큰 무기는 목소리다. 막연하고 불확실한 이야기가 세런의 “기억나는 걸 말해봐요”라는 한마디면 선명한 실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라이카 스튜디오의 숨은 걸작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서 세런은 주인공 쿠보의 조력자 원숭이로 분한다.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오직 세런의 음성만으로 위압감이 번뜩인다.

엘리엇 페이지의 ‘시논’

시논은 영화 초반 잠시 얼굴이 스친 후 한참이 지나서야 망령의 형상으로 오디세우스 앞에 등장한다. 시논은 <오디세이아>의 인물이 아닌,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사촌이다(다수의 독자가 읽었을 홍은영 그림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4권엔 시논이 나온다). 막상 <오디세이>의 시논은 <아이네이스>와도 다르다. 오디세우스의 사촌이 아닐뿐더러 오디세우스와 그리스군, 그리고 안티노오스에게 정치적으로 희생된다. 영화 속 시논은 긴 독백으로 오디세우스의 죄책감, 영웅으로서 마주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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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는 놀런과의 첫 협업작, <인셉션>에서도 그리스신화 속 이름을 가진 인물 아리아드네를 연기했다. 하지만 그보다 시논과 맞닿은 배역은 <클로즈 투 유>의 샘이다. 샘과 시논은 모두 자신을 공격하는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 권리를 회복하고자 분투한다. 페이지가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이후 처음으로 연기한 트랜스젠더 남성 역할이다.

젠데이아의 ‘아테나’

올빼미 눈의 여신. 그 눈은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의미한다. 아테나는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의 양대 서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 제우스의 허락을 받아내고, 텔레마코스가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세상을 경험하며 후계자로 성장하도록 판을 설계한다. 텔레마코스와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한 신화와 달리, 영화 속 아테나는 주로 오디세우스와 소통한다. 소통 수단은 오직 눈빛이다. 아테나의 눈은 수많은 갈등과 가책 앞에 놓인 오디세우스를 바라보는 관객의 리액션을 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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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데이아가 대사 없이 환영으로 존재하는 영화가 한편 더 있다. <듄>이다. 대사와 비중이 상당한 <듄: 파트2>에 비하면 <듄>의 챠니는 폴(티모테 샬라메)에게 미래와 가능성을 오로지 눈빛과 표정만으로 이끌어낸다. <듄>의 챠니와 <오디세이>의 아테나는 폭력의 악순환을 단절하고 진정한 평화와 질서를 복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루피타 뇽오의 ‘헬레네’ &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진출처 GETTYIMAGESKOREA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메넬라오스의 아내다. 메넬라오스를 등지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나서며 10년간의 트로이전쟁을 촉발한 원흉으로 묘사된다. 또 헬레네의 자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메넬라오스의 형이다)이 출항을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다는 이유로 복수의 칼날을 간다. 지금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으면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성을 매혹하여 파멸시키는 여성에 대한 편향된 시선이 읽힌다. 이때 <오디세이>는 두 자매를 가부장제 권력 구조에 저항하고 폭력의 고리를 끊어낸 인물로 그리려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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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어스>다. 루피타 뇽오의 1인2역을 보다 만끽할 수 있는 영화라 그렇다.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차이를 목소리와 보디랭귀지로 미세하게 세분한 그의 장기가 <어스>에서는 광기까지 더해 폭주한다. <어스>의 루피타 뇽오는 도플갱어를 연기하는 ‘두명’의 배우 같다. 피해자와 포식자, 어머니이자 딸인 인물의 갖가지 정체성을 기이하게 오간다.

서맨사 모턴의 ‘키르케’

인간의 음성을 가진 무시무시한 여신. <오디세이아>의 키르케는 자신의 영토에 찾아오는 이들을 짐승으로 바꿔 가둔다. 그러다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목숨을 위협하자, 키르케는 즉각 패배를 인정하고 그의 조력자가 된다. <오디세이>의 키르케 역시 무서운 마녀다. 서맨사 모턴이 무심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남성들의 얼굴을 짓이겨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은 누구나 인정할 명장면, 명연기다. 한데 영화 속 키르케의 말이 주술보다 강력하다. 그는 오디세우스를 질타한다. 당신들의 전쟁은 결국 강간과 약탈을 일삼아 여성과 약자에게 고통을 안길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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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답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일 것이다. 영화 속 제일 강력한 예지자 아가사는 여러모로 신화적 존재다. 그런데 서맨사 모턴 최고의 연기는 <스윗 앤 로다운>에 있다. 말을 할 수 없어 연인에게 오로지 해사한 눈빛 그리고 몸짓으로만 응답하는 해티는 무성영화적 연기 미학의 현신이다. <오디세이>의 모턴은 그때의 그 눈빛과 몸짓에 해괴한 저주까지 실어 돌진한다.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