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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 찬란하고 무궁한 신화의 역사를 보라 – 역사학의 관점에서 신화 <오디세이아>를 읽는 법

“그 비정한 자는 아무 대답 없이 벌떡 일어서더니 내 전우들에게 두손을 내밀어 한꺼번에 두명을 강아지처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내리쳤소. 그러자 전우들의 골이 바닥에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소. 그러더니 그자는 그들을 토막 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산속에 사는 사자처럼 내장이며 살점이며 골수가 든 뼈들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소.” - <오디세이아>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이자 그리스신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인들과 트로이와의 싸움을 다룬다면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다. 원래는 8권의 책이었는데 그중 두권만이 남아 있다. 덕분에 우리의 통념은 시작부터 산산조각 난다. 아킬레우스는 발목에 부상을 입고 사망하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승전만을 다루고, 목마를 통해 트로이를 멸망시켰음에도 <오디세이아>는 이 사건에 관해 회상 장면처럼 간략하게 설명할 뿐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을 다룬 책이 모두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막상 원전을 읽으면 서술 방식이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어디까지가 신의 활동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활동인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사건의 전개 과정이나 의미에 관해 정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지만 무척이나 사람과 나라를 편애한다. <일리아스>에서는 철저히 그리스인들의 편에 서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무찌르며 트로이 멸망에 가담하였고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 편에 서서 이들의 귀향을 도왔으니 말이다. 신이라면 무릇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통념은 그리스신화 앞에 무참하게 깨지고 만다.

사실 이 거대한 서사시는 오랫동안 허구와 재미만이 가득한 ‘신화’로 여겨졌다. 하지만 독일인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이에 의문을 품었고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하여 과격한 고고학 작업을 추진한 끝에 중요한 유적지와 유물을 발굴하면서 역사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역사다! 놀라운 변화였고 이 발굴로 인해 고고학의 진가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기원전 1200년 전의 이야기인지, 암흑시대로 불리는 기원전 800년경의 이야기인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 어떤 배경으로 벌어진 싸움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남겨져 있는 기록과 발굴의 결과가 적당히 일치할 뿐이니 말이다. 더구나 고대인들은 신화적 상상을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것을 공연으로 즐겼을 뿐 현대인들이 기대하는 정교한 서사 구조나 꼼꼼한 기승전결 그리고 엄밀한 사실성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측면이 크리스토퍼 놀런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명확하다는 것은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인 사이클롭스인 폴리페모스, 바다 괴물인 세이렌 등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방해한다. 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진짜 괴물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야만족일 확률이 높다. 그리스인과는 생활 방식이 다르고, 그리스인들의 전리품을 노리는 세력, 이들의 습격이 과장된 기억을 낳고 이야기가 전승되면서 한층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를 싫어했을까? 혹독한 바다를 껴안고 살아간 그리스인들에게 바다는 기회와 위기, 풍요와 죽음의 공간 아닌가. 포세이돈의 저주는 바다 그 자체를 상징하고 오디세우스는 고대를 살아간 뱃사람들의 표상은 아닐까? 포세이돈의 경우 아테나와 더불어 아테네 도시국가가 섬기던 신이기도 했다. 이를 고려한다면 오디세우스의 부재가 도시국가의 권력구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놀런은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몰입감 있게 끌고 가는데 이는 그의 해석일 뿐 원전이나 관련 공부를 한 입장에서는 보다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고전이 지닌 힘이다.

아르놀트 뵈클린,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 출처 GETTYIMAGESKOREA

“갑작스러운 파멸을 면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쟁과 바다에서 벗어나 이제는 집에 돌아와 있건만 귀향과 아내를 애타게 그리는 오디세우스만은 여신들 중에서도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요정 칼립소가 자기 남편으로 삼으려고 속이 빈 동굴 안에 붙들어두었다.… 모든 신들이 그를 불쌍히 여겼으나 유독 포세이돈만이 그러지 않았으니, 포세이돈은 신과 같은 오디세우스가 고향 땅에 땋을 때까지 끊임없이 그에게 화를 냈던 것이다.”- <오디세이아>

정말 황당한 것은 페넬로페가 그토록 지고지순하게 남편을 기다릴 때 정작 오디세우스는 편안한 방랑을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키르케의 관심을 받았고 칼립소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놀랍게도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와 칼립소의 동거에 대해 매혹적이며 행복한 감정과 우울하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혼돈케 한다. 조강지처와 자식에 대한 향수와 새로 만난 미모의 여성에 대한 욕망이 뒤엉키는 것은 남성 혹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고약한 본질이라는 말인가?

페넬로페의 입장 또한 보다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왜 오랫동안 재혼을 하지 않고 어렵게 자신의 지위를 유지했는가. 우선은 오디세우스가 귀환했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오디세우스의 동료이자 원정군의 수장 아가멤논의 아내는 바람을 피웠고 귀환한 남편을 죽였다가 자식들한테 살해를 당한다. 재혼을 해도 문제이다. 자신의 아들이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이 뻔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재산과 권력만 가로챈 후 자신마저도 버림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들의 선택과 결정은 사랑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만 복잡한 계산과 정치적 결정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당연히 작품은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구나 고대인의 생활 방식은 오늘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역시 해석. 무엇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고 놀런은 바로 그 지점에서 놀라운 창조성과 적절한 대중성을 취했다.

그리스신화의 배경은 지중해와 에게해가 얽힌 도시국가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해안가에 나라를 세웠고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며 문명을 일구었다. 선진문명은 이집트에서 발생했고 크레타섬을 거쳐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의 해안가로 전파되었다. 평야에서 농업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구었던 우리의 역사와는 참으로 다른 경험이다. 일단 영화가 개봉했으니 놀런의 상상력에 취해보자. 그리고 원전 혹은 관련된 좋은 책을 읽으면서 각자의 상상을 만들어보자. 혹시 아는가, 미래에 <오디세이>보다 뛰어난 해석의 결과가 영화로 만들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