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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이원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천주교의 영광송에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삼위일체일 것인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지만 영원은 결국 그 모든 구분을 무효화하는 시간성을 뜻한다. 이 구절을 떠올린 것은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의 ‘시인의 말’을 읽다가였다. “사과 옆에 돌 옆에 감자 옆에 어둠이 하나씩.// 이미 있었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처럼, 해파리 인간 제미나이.” 그러니까 단어 셋이 나란히 나열되는 것의 효과 말이다. 두개일 때는 짝을 짓지만 셋이 되면 삼각형이 되고 그 삼각형은 무엇으로 만들어도 단단한 결속력을 지니곤 한다. 이것이 구조의 힘일 것이다. 해파리 인간 제미나이.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 공교롭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시집의 제목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시의 제목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이라는 단어를 빵부스러기처럼 따라, <작은 교회>라는 시를 읽어본다. “(전략) 여태 기도문을 잊어버리지 못했니? 대낮에도 콩알 같은 것이 안에서 툭툭 떨어지니, 나도 모르는 반복을 심장이라고 믿고 있니,(후략).” 암송하는 대신 잊어야 하는 기도라면 어떤 것일까.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 그것을 기도라고 불러보았다.” 기도는 완성되면 그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게 되고, 그렇다면 잊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다음의 시 <잠봉뵈르가 말하기를>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는 더 이상 시가 없다고 생각되나요?” 기도와 시가 하나인 듯 느껴지는 것은 우연일까?

사실, 제목의 ‘작은 사람’이 제목에 든 시도 있다. <작은 사람 공 동체>인데, 화자는 계속 어느 식당을 이야기한다. 토요일, 금요일, 목요일에는 식당에 갔고, 수요일에는 가지 않았다. 월요일에는 식당에 갔다. 이 식당은 같은 곳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식당에는 거의 손님이 없고, 가끔은 주인도 없다. 밥을 해먹이는 사람과 그 밥을 먹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도 말하자면 작은 공동체일지 모른다. 돈이 오가는 관계지만, 주인이 없는 식당에서 냅킨을 하릴없이 접으며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어쩐지 돈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대단한 것은 아닌, 작은 무언가가.

어쨌든 단어 세개의 연쇄효과. <날씨 행성 뗏목>. “입까지 지퍼를 올렸다/ 초록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은 남았다.” <일요일 손들 유령 들>. “오늘은 일요일이야 손과 손을 마주 붙이며 거울을 포기하지 사람들은 거기를 기도라고 불러 내미는 손이 없어 잡을 수 있는 손도 없지 안식일보다 급한 고통은 없는 법이니까(후략).” <돌 사과 파도 깎기>. “(전략) 표지판이 보인다고 해서/ 막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후략).” 기도든 기도가 아니든, 입속으로 되뇌다 보면 말은 몸으로 다시 스며드는 법이다. <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이후 8년 만에 출간된, 시인 이원의 일곱 번째 시집.

쪽지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의도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인간은 팔 다리 몸통 머리 이렇게 분류할 때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편. - <생물권> 중에서,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