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발굴되어 공사가 중단되었다거나 유적지 보전 방안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는 뉴스는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넓다고 하긴 어려운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랜 세월 살다가 떠나고 흔적을 남겼는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한편 매월, 아니 매주 빠르게 갱신되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뉴스를 접하면 또 다른 차원에서 아득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를 접하기도 전에 기후변화가 다 쓸어가는 건 아닌지.
제3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아르고스>는 이런 시간의 감각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무대에서 펼쳐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 고분 바로 옆, 로봇과 인간이 같이 일하는 스마트 물류 특구 센터가 있다. 주인공은 빚 3억원 때문에 강남 에스테틱에서 밀려난 의사다. 젊은 피부를 만들어주는 최첨단 주사를 놓으며 살다가 사업 실패로 센터의 야간 구급대원이 된 그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을 관찰하며 한방에 인생을 역전할 기회를 노린다. 그가 포착한 것은, 비규격 상자를 처리하는 인간 노동자들이 어느 순간 잠을 안 자고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야간 수당이 늘어나니 처음에는 다들 기뻐한다. 그렇지만 웃음과 말수가 줄어들고 감정 표현도 사라진다. 좀비처럼 변해가는 이들의 유일한 낙은, 로봇 정비공 수아가 들려주는 꿈 이야기다. 수면을 빼앗긴 이들은 부드러운 꿈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정신적 휴식을 취한다.
로봇이 노동하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편히 쉬게 된다는 미래의 전망은 순진하리만큼 낙관적인 생각이었음이 요즘 들어 밝혀지고 있다. 인간은 로봇보다 가성비가 좋다는 것을 입증해야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려면 로봇처럼 다치지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24시간 내내 꾸준히 성과를 보여야 한다. 전염병 같은 불면증을 얻기 위해 서로 피를 감염시키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자들의 피를 몰래 훔쳐다 연구하며 혈청 개발로 돈을 벌겠다는 의사, 그리고 인공지능 물류센터 시스템 ‘아르고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비공개 구역에 몰래 들어갈 계획을 세우는 로봇 정비공 모두 한발 물러나는 법 없이 막다른 골목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그리고 이들이 내달리는 동안 비가 계속 쏟아진다. 기후변화로 인해 쏟아지는 폭우만큼은 인간도 로봇도 그 무엇도 막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공평하다. 멈춤 없이 내달리는 속도를 원하는 장르소설 독자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줄 소설이다.
죽은 자들의 지척에 산 자들의 비닐하우스가 서 있었다. /3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