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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박준 지음 난다 펴냄

이런 얘길 하면 늙은이 인증이 되는 것 같지만, 나 때에는 짝사랑하는 사람이나 절친에게 '좋아하는 시집'을 선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쓰임새 좋은 실용적 선물이 아닌 시집을 굳이 선물한다는 것은 ‘너는 내가 이 시집을 왜 사랑하는지 알아줄 사람’이라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았다. 지금은 친구의 생일 선물로 시집을 들고 가면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 10대 때에는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믹스테이프처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게 서기 몇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시집의 낭만이란 아득해져버렸지만.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시에 (눈)물기가 묻어나는 듯 느껴지는 것이 박준의 시인데 그런 그가 애정하는 시 68편을 모아 산문집을 냈다. 1896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김명순 시인의 시 <유언>으로 시작해 2000년대의 신용목 시인까지 박준이 애정하는 현대시를 꼽았다. 시를 꼽고 그 시에 대한 해설을 박준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약간의 영감을 받은 산문이 실려 있다. 책 제목이 된 ‘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는 김종삼 시인의 <북 치는 소년>과 함께 실린 산문 제목이기도 하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처럼/ 어른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의 시 뒤에 바로 이어 실린 박준 시인의 산문에는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마냥 반짝이는 예쁜 산문이 실려 있지 않다. 산문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매일 시를 읽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 박준 시인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솔직히 펼쳐놓음과 동시에 자신이 애착하는 시과 연결된 산문에 이렇게 쓴다. ‘기쁨과 희열을 느낄 때 시집을 펼치는 법이 없다. 밖에 나가 잔을 들거나 집에서 울어야지. 다 울고 나서는 웃어야지. 웃다가 말고 춤을 춰야지.’ 왜 우리는 시를 읽으면 울다가 웃고 싶을까. 웃다가 울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 애써 웃어 보이려다가 어쩔 수 없이 울어버리고 또 술에 취해 ‘둠칫둠칫’ 춤을 추고 마는 것. 박준은 이어 이렇게 쓴다. “울음을 참거나 아니면 울어야지. 아무 데서나 울어야지. 희뿌엿도록.”(80쪽) 좋은 시를 읽으면 술을 마시고 싶어지고,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이고 싶어진다. 당연히 박준 시인이 이 산문을 술에 취해 썼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술에 취해 읽고 싶어진다. 좋은 시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박준이 사랑하는 시들을 찾아 읽고 그가 이 시를 읽고 쓴 글을 읽으면 괜히 술을 찾게 된다. 그리고 술에 취해 춤을 추고 싶어진다. 울다가 웃다가 춤을 추다가, 그리고 다시 시를 읽고 싶다.

하나 다행스러운 사실은 아무리 오래 만지작거렷다고 해도 끝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은 뱉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나는 함께 알게 되었다.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