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씨네21> 추천도서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지음 창비 펴냄

완벽한 소통은 있다. 일방적인 소통. “우리는 흔히 주님이나 부처는 ‘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정말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대타자, 즉 신과 같은 절대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종교 생활이지요.” 여기에 더해 한 가지 경우를 더한다면 힘과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라고. 정희진의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는 온건하고 따뜻한 소통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읽어내려가려는 고집 센 독자에게 수시로 찬물을 끼얹는다. 예를 들어 다음의 지적 또한 그렇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가장 자주 보이는 문장은 “잊지 않겠습니다”이다. 정희진은 묻는다. 이 문장은 누구의 관점을 반영하는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유가족의 입장이 아니라) 잊을 수밖에 없는, 비극과 무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짐이라고.

내가 대화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소통에 대해 당신이 하는 생각이 상대와 일치하리라는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다는 정도다. 특히 양쪽의 입장이나 상황에 차이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의 멋진 점이라면, 대화의 질료가 되는 언어 그 자체(침묵을 포함한다)를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를 살피는 과정을 우선시한다는 데 있다. ‘혼혈아’, ‘장애아’라는 (널리 쓰이는) 표현에 ‘아이’를 뜻하는 ‘아’라는 글자가 붙을 때 인식은 대상을 어떤 위치에 고정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주소를 가진다”는 도나 해러웨이의 말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글을 읽고 말을 듣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표현이다. 나보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들이 스스로 기득권자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이 말할 때, 내가 편하게 느낀 어떤 대화의 순간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페미니즘이 혐오와 비생산적인 갈등, ‘손잡고 침묵’하는 집단무의식을 극복하고, 일종의 인식론적 도구로 활용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문장이 여상하게 쓰윽 등장할 때, 이 책이 해야 하는 말을 들리게 하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는 순간을 느끼게 된다.

이 책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글 말미에는 정희진의 이메일 주소가 들어 있다(이 책에만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이메일 주소를 이번 책에서 보고, 새삼, 소통이라는 주제에 대해 정희진만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권력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이것이 듣기의 정치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명제입니다.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