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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리스트>

요시무라 에이이치 지음 이정미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류이치 사카모토는 생전 뉴욕의 단골 레스토랑 가지쓰(Kajitsu)를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음식이 마음에 들어 자주 찾았지만, 갈 때마다 배경음악이 요리의 맛까지 해친다는 생각에 직접 셰프에게 “당신의 음식은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이 식당의 음악은 못 참겠다. 누가 골랐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신 골라줘도 되겠냐”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남긴 선곡 리스트 중 그보다 유명한 것은 장례식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골라둔 장송곡들이다. ‘funeral’이라는 제목의 이 리스트에는 총 33곡이 담겨 있으며, 실제로 그의 장례식에서 재생되었다. 가지쓰를 위한 곡들과 장례식의 플레이리스트 모두 유튜브를 비롯한 음원 스트리밍 채널에 올라와 있어 누구나 찾아 들을 수 있다. 가지쓰 리스트는 식사 자리보다 오히려 업무나 공부처럼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 틀어놓기에도 잘 어울린다.

2023년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투병 중 콘서트를 준비하며 음악 안에 머물던 모습을 기록한 영화들은 이후에도 개봉되고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 같은 영화들이 잇따라 제작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긴 영상과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였던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역시 자타 공인 사카모토 덕후인 작가 요시무라 에이이치가 생전 그가 음악 잡지에서 소개한 곡들, 라디오에서 선곡했던 음악들, 그가 사랑한 민속음악과 전위음악, 프로듀싱에 참여한 신인 뮤지션의 곡들까지 총망라한 책이다. 그야말로 사카모토와 관련된 모든 음악을 샅샅이 찾아내 기록했고, 각 곡에 대해 그가 남긴 감상과 그것이 그의 음악 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해석, 그리고 해당 뮤지션의 정보까지 빠뜨리지 않고 담았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클래식, 재즈, 팝, 영국 록을 비롯해 오래된 민속음악까지 일평생 다종다양하게 음악을 섭렵한 리스너였고,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기에 이 책이 담아낸 음악 목록 역시 방대할 수밖에 없다. 유튜브 뮤직에서 손쉽게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지만, 사카모토 연구자에 가까운 저자가 집대성한 컬트적인 음악들은 읽는 이의 귀마저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소장하고 매일 앨범 하나씩 찾아 듣는 것이 이번 가을의 낙이다.

당시 그가 붙잡고 있는 중요한 화두는 ‘시간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젊은 시절 스스로 직선이라고만 생각하며 달려왔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그 자체가 사람이 만들어낸 관념적인 허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