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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언가를 하고 있다 - 시네클럽 혹은 시네마 이니셔티브를 향한 응답들

지난해 <씨네21>은 1494호 특집기사 “마이크로시네마 가이드”를 통해 최근 두드러지는 새로운 영화 문화의 움직임을 종합했다. 통상적인 극장이나 영화제 등 기존의 영화 문화 바깥에서 자체적인 영화 상영·비평·출판·배급·제작 활동을 이어가며 각자의 영화 문화를 조성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각예술 커뮤니티 소리그림, 1인 배급사로 체제를 전환한 시네마토그래프, 스스로 “정체불명의 조직”(배은열 INK 집행위원)이라 부른 대전 INK, 상영회 집단 로트링겐 등을 만나고 취재하여 작금의 현상을 갈무리했다.

1년6개월이 지난 현재, 새 영화 문화의 바람은 더 눈에 띄게 강해지고 있다. 전국 곳곳 각자의 자리에서 펼치는 기획을 넘어 영화제, 기관, 학술세미나 등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하여 다루는 중이다. 영화제가 대표적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지난해 ‘클럽 시네마’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마이크로시네마, 시네클럽, 커뮤니티 시네마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초청해 상영회 및 토크 행사를 연계하고 있다. 장병원 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아마추어리즘 이상의 영화 문화로서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이 분명히 느껴진다. 색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큐레이션하고 소개하며 비평하는 이들과 협업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 ‘넥스트 시네아스트’ 프로그램에서 손구용 감독을 선정하며 소리그림과 기획을 함께하여 라운드테이블의 형태로 동시대 시네클럽의 현상에 대해 논의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도 ‘내가 영화에게 간다-시네클럽, 커뮤니티시네마, 마이크로시네마의 역할과 가능성’ 포럼을 열었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지난해부터 ‘보여줘, 시네클럽! : Hear Me Out Film’ 공모를 통해 전국 각지의 다양한 시네클럽이 극장 상영의 기회를 얻도록 도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ACC 필름앤비디오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 연계 대담 한국 실험영화와 비디오: 읽기와 다시 쓰기’를 기획하고 대구의 영화전문서점이자 비정기 상영 공간인 이미지북 등을 초청하여 세션을 마련했다. 동의대학교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는 ‘N개의 스크린, N개의 영화사(史): 도래할 시네필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미나를 통해 로트링겐, 영화 집단 키니마 등을 초빙했고 “제작-배급-상영-비평이 유연하게 한몸을 이루며 주체적 생산에 주력하는 오늘날의 실천들과 마주한다”라는 기획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요컨대 시네클럽, 클럽 시네마, 영화 집단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닌 주체들이 영화 문화에 활력과 호기심을 불어넣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요즘이다.

새 영화 문화와 기존 제도의 관계

카니마

영화 문화의 새 주체들은 다종다양한 기획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의 단일한 형태로 이 현상들을 묶기보다는 각자가 펼치는 활동을 통해 직접 체감하는 편이 수월할 수도 있다. 그 단서는 이어질 기사의 6개 시네클럽 소개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흐름, 1980~90년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국내 시네클럽과의 양상 비교 역시 이어지는 김지훈 중앙대학교 영화미디어학센터 디렉터의 글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기성 영화제, 기관, 학술 조직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편이 도움이 될 듯하다.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현재의 다양한 시네클럽 혹은 관련 활동들은 기존의 영화 문화 체제 안에서 해결할 수 없던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결과”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영화 문화가 본격적으로 융성한 1990년대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기존의 영화제, 극장 체제는 꽤 견고해졌다. 새로운 방식의 영화 문화가 자연스레 생성될 시점이란 것이다. <씨네21> 1494호 기사(“영화 문화의 새로운 확장 한국의 마이크로시네마 현황… 관객의 가장 세부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는 운영 방식부터 상영회마다의 특징까지”)에서 일환 로트링겐 대표가 “기존 시네마테크, 아트하우스영화관에서 자주 상영하지는 않지만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비내러티브영화들을 소개”라고 로트링겐의 방향성을 설명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여 주목할 점은 최근의 새 영화 문화들이 기존 제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다. 이에 관해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은 “흔히 시네클럽을 제도 밖의 독립적인 조직으로, 기관은 그것을 지원하거나 수용하는 주체로 상정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과 같은 시네클럽 활동이 현재 예술영화전용관으로까지 새 영화 문화의 기반을 만든 것처럼, 제도와 비제도는 서로 분리된 영역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문화를 발전시켜온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에 기존 제도가 “영화 문화의 흐름을 새 사안으로, 새 시선으로 간주하는 이들의 고민을 나누고 싶은 마음”(조지훈)으로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새 영화 문화를 기존 제도와의 긴장으로 읽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김지하 학예연구관의 지적처럼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독립적인 활동의 필요성이 사라지진 않으”며 “오히려 제도가 형성되고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준과 관습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다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는 영화, 영화 문화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영화 문화의 주체들이 국내 영화 생태계에서 각자의 독립성을 지키는 방식은 “기존의 기준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 가능성을 실험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김지하)일 수도 있다. 기성 제도에 대한 무조건적 반응이 새 영화 문화의 일차적 목표라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문화의 규범과 비평적 주제를 일관적 태도로 실천하는 과정이 중요하단 것이다.

시네마 이니셔티브라는 이름

‘ACC 필름앤비디오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 연계 대담 한국 실험영화와 비디오: 읽기와 다시 쓰기’ 포스터(왼쪽). 동의대학교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는 ‘N개의 스크린, N개의 영화사(史):도래할 시네필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미나 포스터(오른쪽).

점차 다양하고 넓어지는 새 영화 문화의 종류를 완전히 포획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포괄적 정의를 바라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생산하려는 욕구가 작금의 영화 문화를 작동시키는 주요 원동력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취재엔 응했지만 최근 시네클럽들의 활동을 규정하려는 말에 조심스러워하는 관계자들도 다수 있었다. 그럼에도 각종 영화제나 기관이 펼치는 기획과 연구는 이들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싶어 한다.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바다의 물결에도 파도라는 이름을 붙여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새 영화 문화의 지속성을 바깥에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이윤영 시네마토그래프 대표의 말처럼 “현 상황만 놓고 보자면 비제도권에서의 상영은 자체적 유지가 불가능한 것” (<씨네21> 1494호)으로 여겨지며, 김지하 학예연구관의 설명처럼 이 활동들이 “개인의 열정이나 헌신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되지 않도록 기관 같은 제도와의 협업이 대안적 지지대로서”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시네클럽, 클럽 시네마, 영화문화집단, 영화 집단 등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현상을 ‘시네마 이니셔티브’(cinema initiative)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영국에서 풀뿌리 영화문화의 몇몇 현상을 지칭하는 용례를 참고해서다. 클럽이나 집단이라고 하기엔 1인 구성인 사례도 있고, 커뮤니티라고 하기엔 더 유동적이고 느슨한 성질을 띠는 활동도 많다. 소유한 공간 없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기획자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은 때도 있다. 대신 이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실천한다는 부분이다. 그 행동력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니셔티브’란 단어를 붙이는 것이다. 피어나는 기획과 추진의 풍랑이 이후 어떻게 설명될지는 알 수 없다. 자명한 사실 하나는 새 영화 문화의 시네마 이니셔티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