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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평의 틈새를 찾아서 - 영상 비평 웹진 <횡단> 편집부 인터뷰

“비평을 통한 우리의 목표는 미처 이름을 못 가진 탓에 무시되고 오해받는 존재 목적들과 존재 양식들을 복권하는 것이다.” 지난 8월 영상 비평 웹진 <횡단>이 창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전문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매체다. 동시대의 다른 시네클럽들이 고유한 색채의 상영회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한다면, <횡단>은 글의 형태로 본인들의 사유를 알리는 중이다. 이제 막 시작한 비평지에 대해 말한다는 일이 다소 섣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횡단>이 보여준 비평의 너른 형태가 여러 기대감을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횡단>은 영화를 비롯해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온라인 생태계, 게임 등에 관하여 다양한 비평을 가한다. 더불어 영화·영상 제도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다. 서울영화센터를 둘러싼 논란, 제1회 서울청소년실험영화제의 시도, 강릉시의 정동진독립영화제 예산 삭감 문제에도 더듬이를 세우며 여러 기획·인터뷰 기사를 발행 중이다. <횡단>이라는 제호가 무척이나 적절하다. 영화 매체와 환경의 안팎을 자유로이 횡단하는 이들의 행로는 작금의 시네클럽의 다양성을 입증하는 듯도 하다. <횡단>의 박하나 편집장과 김재범, 채은서 편집부원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답변이 <횡단>의 이름으로 게재되길 바랐다.

채은서, 박하나, 김재범(왼쪽부터).

- <횡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5명의 편집부원(박하나, 김재범, 채은서, 구예훈, 김시연)이 있고, 5명의 고정 필진(견정훈, 박서연, 손혜주, 송쥴리아, 조유진)이 있다. 총 10명이 글을 쓰는 일 외에도 웹진과 SNS의 운영 및 관리 업무 등을 함께하고 있다.

- 시작한 배경은.

지난 6월 박하나 편집장이 학과실에 포스터 한장을 대뜸 붙였다. “영화잡지 만드실 분?” 물론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영상과 제반 문화를 다룰 것임도 홍보했다. 동료들이 즉각 모였다. 6월부터 곧바로 창간 준비에 돌입했고 한달 반 동안 매주 기획 회의를 거치며 발행의 틀을 만들었다. 왜 시작했냐고 한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지면이 필요해서”이다. 전문사 학생들끼리는 이미 본인들의 글을 나눠 읽고 있었는데, 자신들만 보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주제가 워낙 다채로웠기에 지면을 만든다면 다른 매체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성을 지닐 수 있을 듯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히 여겼던 점은 의식적으로 영화 바깥을 매만지자는 태도였다. 영화비평을 쓰다 보면 영화 내부로만 침전되는 경향이 생긴다. 지금처럼 매체의 경계가 흐려지고 영화라는 키워드로만 포획할 수 없는 담론들이 많아지는 때에 무척 조심해야 할 지점이라고 느꼈다. 웹진의 오프닝 페이지를 보면 수많은 네모가 겹치고 이동하는 모양새를 볼 수 있다. 이 모든 네모의 스크린이 하나의 은하수를 이루는 것처럼, 영상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영상도 세계의 일환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 편집부원들이 금세 모일 수 있었던 동력은.

학생들이 영상원에 온 이유의 큰 부분은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욕심이 다들 있었다. 지금의 오프라인 영화 문화에서 즉각적으로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기는 쉽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영화 어땠냐고 대뜸 말을 걸 순 없는 노릇이니까. 이런 마음을 지닌 이들이 입학하자마자 중지를 모았다. 자체적인 학술대회를 연다든지, 연사를 초청해 특강을 꾸린다든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무언가 함께하자는 토대는 처음부터 있었고, 그것이 웹진의 형태로 완성된 듯하다. 매체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박하나

- <횡단>이 생각하는 매체의 힘이란.

직관적으로는 많은 독자일 것 같다. 그것을 얻기 위해선 <횡단>이 지닌 정체성을 피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도 비평을 비롯하여 여타 관객들이 아직 잘 모르는 영화제를 조명하고, 퀴어나 소수자 담론 등 여전히 비주류인 것들에 관심을 지니고, 비평적으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를 주목하려 한다. 다른 매체가 미처 품지 못하는 빈틈을 공략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횡단>의 첫 비평 시리즈 작품이었던 <퍼시픽션>이다. 너무나도 흥미롭고 다양한 층위를 지닌 영화인데 비평이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한 잔여를 포착하고 싶었다. 자신감을 얻었던 시점은 <호프>로 영화계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다. 개봉 즉시 영화는 ‘밈화’되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영화에 대한 감상이 퍼졌다. <씨네21>같은 매체나 현재 활동 중인 영화평론가들은 너나없이 지면과 SNS를 통해 의견을 남겼다.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온라인 환경에 뒤처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빨리 <호프>에 대해 무언가라도 남겨야 한다는 인상이었다. 이 과밀화되고 과열된 상태에서 비가시화되는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영상매체와 문화를 비평한다면 자칫 매체의 일관성이 희미해질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보완하려 하나.

편집부의 관심사가 모두 다르긴 하다. 전통적인 성질의 시네필도 있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게임이나 유튜브 등 다른 매체에 더 익숙한 이들도 있다. 그런데 모이면 공명한다. 희한하다. 9월 말에 팔레스타인 관련 특집기사를 꾸리는 과정에서도 우연히 합이 맞았다. 정치관이든 비평관이든 각자의 가치관이 다를지라도 <횡단>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일종의 암묵적 교집합이 생성되는 것 같다.

김재범

- 발행 주기와 절차도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3주 이상의 공백은 만들지 않으려 한다. 2주 간격으로 원고를 발제하고 완성본을 공유한다. 편집부와 필진 10인이 모두 참여한다. 발제 과정이 재밌다. 필자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왜 이 주제를 택했는지, 어떤 방향성을 잡을 것인지 다 공유한다. 예를 들어 송쥴리아의 ‘재현된 온기: 하츠네 미쿠의 공연’은 본인의 학창 시절 기억에서 출발하여 애니메이션 비평의 현재까지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완성된 원고에 대해서도 긴 합평을 거친다. 편집장 주도의 피드백이 아니라 모두가 의견을 주고받는 형태다. 해당 주차 발행에 참여하지 않는 구성원도 함께한다. 날 선 피드백도 많다. 그래서 의미 있다. 바깥에서는 글에 대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상의 반응을 얻기가 어려우니까. 예컨대 퀴어 이론에 관한 원고라면 쓰인 용어의 적확한 정의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지금의 사회적 맥락에 이 단어가 어떻게 자리해 있는지 등을 논의한다.

- 시의성을 중요시하는 것인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욕심을 넘어서 ‘이걸 왜 지금 발화해야 하는가?’를 꼼꼼히 따진다. <오디세이>가 개봉했다고 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왜 <횡단>이 <오디세이>를 호명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웹진의 첫 글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서울영화센터’까지”도 를 번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한국의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논했다. 이것이 <횡단>의 가장 큰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퍼시픽션>을 첫 비평 시리즈로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호프>랑 맞물린 시기였던 탓인지 기성 매체가 보여준 비평의 양이 부족했다는 인상이 컸다. <퍼시픽션>이 현대의 음모를 다루는 방식, 그 정치성이 지금 한국 사회와 닮은 양상,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성>과 겹쳐 시사하는 바 등 굉장히 많은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영화인데 아쉬웠다.

채은서

- 웹진의 형태를 택한 이유는. 2010년대 전후 등장한 대안적 영화잡지들과는 다른 방식인 듯하다. 시대의 차이일까.

다양한 영상매체를 다루기 위해선 온라인 기사에 즉각적으로 해당 영상을 끼워넣을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영상물이 산재해 있고 이곳저곳에 얹혀 있는 형국이라 생각한다. 형체를 알아보기도 전에 그것들이 지나가버리는 경험을 하다 보니 되도록 동시대적인 포맷을 택하려 했다. 일전의 매체들을 크게 의식하진 못했다. 세대적으로 그 시기를 직접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횡단> 구성원들의 세대가 다양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대안적 영화잡지라는 포맷이 새롭게 다가왔다. 기존의 매체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 그 경로가 다소 막혀 있다는 인상이다.

- <횡단>의 편집부는 어떤 비평적 시기를 통과한 것일까.

2020년대쯤 영화비평을 제대로 보려 하면 일종의 정전이랄 것들이 있었다. 허문영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을 봐야 하고, 그다음엔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작을 봐야 하고, 존 포드를 봐야 하고, 그 속의 풍경과 활력을 마주해야 한다는 식의 기성 담론이 나오던 시기였다. 영화비평에 관심을 지닌 이들이 다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았다. 계보에 천착하고 영화사적 서사를 내면화함으로써 폐쇄적인 측면이 도드라진다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내재적인 이미지 안에서만 모든 비평적 요소를 상정하는 방식이 조장되었는데, 영화를 바깥 세계와 연결 짓는 방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 오프닝 페이지.

- 그렇다면 <횡단>은 어떤 지속성을 지니고 한 시기를 거치려 하나.

제호처럼 끊임없이 횡단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어떤 구성원은 다른 영역이나 지역에 정착할 수도 있고, 대신 새로운 동료를 찾을 수도 있다. 너무 지속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지속의 방식이라 여겨진다. 비평의 특정한 지대에 유리되어 있고 차폐된 정박지가 아니라 하나의 통행로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홀연히 발화하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경유지가 되기를 바란다.

- 최근의 다른 시네클럽은 상영회나 프로그래밍 위주의 활동을 주로 보인다. <횡단>은 글을 택했다. 앞으로의 방향성은.

상영회 위주의 시네클럽이 영화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집단이라면 <횡단>은 영화에서 형성된 담론을 언어화하는 집단에 가까운 것 같다. 영화 매체가 지닌 불가피한 일시성을 글로 붙잡고 싶다. 단발적 상영회 형태로는 ‘이 영화가 왜 2026년 한국에 필요한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대신 어떠한 글이나 기획기사가 완성되고, 그 주제에 연계하여 어떤 작품의 상영이 필요해진다면 또 다른 형태의 활동을 펼칠 계획이 있다. 분명한 전제는 글이 선행하고 다른 것들을 후행하는 순서가 지켜질 것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