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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어두운 방에서>

브라이언 딜런 지음 서민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어딘지 묘비명 같은 제사(題詞). “집이 불에 타고 있을 때에야 건축의 근본적인 문제가 처음으로 또렷이 드러난다.” 조르조 아감벤의 <우울한 천사>에서의 인용이다. 물리적인 형태의 집, 그리고 건축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긴 투병 생활과 1985년 여름에 끝내 찾아온 죽음, 그리고 최근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 그렇다 보니 나는 유산을 현금으로 챙기려 안달이 난 탐욕스러운 형의 역할을 맡는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우리 공동의 슬픔 앞에서는, 오직 돈만 밝히는 듯한 행동조차 어떤 위안 같은 것을 안겨준다.” 그렇게 가족이 살았던 집의 마지막 거주자였던 부모가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나고 짐을 정리한 뒤 마침내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는 순간이 오면, 집은 일종의 폐허처럼 느껴진다. 브라이언 딜런의 설명은 그렇다.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폐허. 브라이언 딜런은 또한 그 감정에서 다소 차가운 어조로 “결국 나는 가족이 살던 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고아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진부한 싸구려 감상이라고. <어두운 방에서>는 <에세이즘>의 브라이언 딜런이 쓴 에세이로, 을유문화사 ‘암실문고’로 출간되었다.

<어두운 방에서>의 원제는 ‘In the Dark Room’인데,‘다크 룸’은 ‘어두운 방’을 뜻하기도 하지만 ‘암실’(暗室)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진을 암실에서 현상할 때, 일체의 자연광이 차단된 이 어두운 공간에서 인화지 위로 사진이 서서히 떠오른다. 거기 찍혀 있던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 암실에서 이루어진다. 브라이언 딜런이 이 책에서 하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조심스럽게 집과 기억을 살살 흔들며 무엇이 시야에 들어오는지를 살펴본다. 생각은 집과 관련한 수많은 일화들로 뻗어나간다.

집. 새집으로 이사하는 순간에 생각이 미치는 부분들. 먼저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이한 미적 취향을 가늠하게 하는 특이한 부분들. 집이라는 공간의 물성을 철저하게 탐색해가는 이 책은 기억과 물리적 공간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의 화두를 능숙하게 풀어나간다. 그러니까, 집이라는 곳에 기억이라는 것이 달라붙어 있다면 어디에 달라붙어 있겠느냐는 말이다. 사진. 사진도 중요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제대로 보게 되는 부모님의 사진들을 떠올려보라.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브라이언 딜런에게 음악은 긴 시간 삶의 중심이었는데, 그 말인즉 음악은 그에게 단 한번도 무언가의 배경이었던 적이 없다. “지금 내가 문득 궁금한 건 이거다. 그때의 내가 그토록 들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고, 또 듣지 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을 비우는 순간이 되어서야 드디어, 비워지지 않는 것들을 발견한다.

내 몸을 향한 공포는, 이 육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고민은,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마주하려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