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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처음 했던 약속을 지켜주세요.” - 서울시에 시네마테크 원안 복귀를 촉구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

서울시에 시네마테크 원안 복귀를 촉구하는 성명서에 단체 43곳, 개인 1508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지난 8월 연명을 시작해 약 한달 만에 모인 숫자다.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도 가세했다. 그러나 11월 서울영화센터는 본 설립 취지에 관한 재고 없이 개관해 15년 동안 쌓아온 약속을 기억하는 이들을 당황케 했다. 2010년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이명세 감독을 필두로 서울영화센터로 인해 20년 된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을 잃을 위기에 처한 관객들까지, <씨네21>은 현 사태를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변영주 감독

“진심으로 분노합니다. 서울시네마테크는 영화인들이 무척 고대하고 기대하던 장소입니다. 그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수년간 영화인들이 서울시와 함께 건립을 위한 회의를 해왔고, 운영권에 관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약속을 무시하고 일종의 관공서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는 행정기관이 문화정책을 잘못 펼친 사례로, 시네마테크만의 문제로 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서울시는 이 사안을 ‘누가 밥상을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불쾌합니다. 얼마 전 한국영화감독조합도 양측의 입장을 모두 공유받은 후 투표를 거쳤고, 원안 복구를 주장하는 입장이 95% 이상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회원들도 시네마테크 건립 원안 복구를 촉구합니다. 서울영화센터에는 협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독 없이는 시네마테크도 없습니다.”

이명세 감독

“현재 서울영화센터의 모습이 오랜 시간 영화인들이 논의하고 염원해왔던 ‘시네마테크’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서울시가 서울시네마테크 건립 과정에서의 합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지금이라도 이행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원래의 약속대로 시설 조성은 서울시가 하되, 운영은 영화계의 전문성과 역사성을 존중하여 민간이 전담하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영화 유산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시네마테크는 시 정책 변화에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문화 공간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관 주도 운영을 지양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경미 감독

“지난 15년간 시민들을 위한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건립을 위해 많은 영화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왔습니다. 이 사업에는 어떤 이해관계도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오승욱 감독

“처음 했던 약속을 지켜주세요.”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 겸 영화수입배급사협회 대표

“서울영화센터의 개관을 지켜보며 많은 영화인들의 근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서울에 세계적인 시네마테크를 세우고자 했던 수많은 노력과 바람이 현재의 방향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현실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 관객으로서 저 역시 매우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서울영화센터가 시네마테크의 본질적 취지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방향으로 전환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국 영화산업의 중요한 축인 관객 여러분도 이 사안에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

“미디액트는 서울시네마테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민관이 협력하는 공공 모델을 초기 단계부터 함께 논의해온 단체 중 하나입니다. 당시 영화계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델로서의 공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합의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민간이 주체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 또한 형성했습니다. 그 약속을 어긴 서울시는 서울영화센터의 역할과 주체를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김병인 작가 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서울시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더욱 긴밀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울 시민의 문화적 성숙도에 맞는 방식으로 서울영화센터가 운영되려면 서울시 역시 그에 걸맞은 운영 태도를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오!재미동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현재 서울시는 오!재미동 운영 종료를 재검토한다고 합니다. 약간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영화센터와 오!재미동의 기능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오!재미동이 사라져도 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이 시민들이 오랜 시간 활발히 이용해온 공간을 없애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지난 11월26일 서울시 공공 시네마·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한 긴급 포럼에서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이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서울영화센터가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울영화센터가 허브가 되어 작은 아카이브들을 지원해야지, 소규모 사업 예산을 빨아들이고 통폐합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울시네마테크 원안을 복구한다면 이런 종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큰 도서관이 생긴다고 작은 도서관이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각 공간이 규모에 맞는 쓰임새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저희는 원주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60년 된 단관극장,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모인 시민들입니다. 21년간 공공 문화공간으로 운영된 오!재미동이 폐관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영화는 이제 세계적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 감동은 단순히 대형 멀티플렉스의 시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사람이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감독의 메시지를 함께 해석하고 음미하는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꾸준히 쌓여온 오!재미동과 같은 문화공간이 있어야 오늘날 한국영화와 창작의 토양이 유지되고, 새로운 문화와 창작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서울영화센터의 개관이 문화의 다양성을 덮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시민이 만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공간들이 지켜져야 합니다. 비록 원주의 아카데미극장은 사라졌지만, 서울시는 오!재미동의 가치를 깊이 되새기고, 폐관 결정을 재검토해주기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