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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치, 이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시네마테크’의 지속성을, 백재호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공동대표

현행 서울영화센터 체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내는 이중 한명은 백재호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이하 영화인연대) 공동대표 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이다. 그는 올해 초 서울영화센터의 운영 방식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때부터 해당 사안에 관여했고, 서울영화센터 관련 단체 성명과 연명을 주도하며 “본원대로 시네마테크의 기능을 복원”하라는 영화인들의 의견을 한곳에 모으고 있다. 11월26일엔 ‘서울시 공공 시네마·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한 긴급 포럼’을 공동주최 서울영화센터를 포함해 현재 오세훈 서울시장이 행하는 전반적인 영화·영상·문화 정책의 문제점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서울영화센터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이 공간이 정치적이거나 산업적인 이권 논리로 여겨지면 안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지난 11월17일 한국독립영화협회는 한국수입배급사 협회 등 10여개 단체와 함께 서울영화센터의 현행 체제에 협력을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11월26일엔 영화인연대가 “책 없는 도서관, 그림 없는 미술관을 지으려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공표했다. 그 배경은.

여름까진 한국독립영화협회도 서울영화센터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서울영화센터측과의 논의를 이어왔다. 그러나 서울시와 서울영화센터는 영화계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영관 운영 용역 공모를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에 반발하며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운영위원회 구성원들은 함께 사퇴하게 됐다. 이후에 영화인들의 의견을 모아 보이콧 성명서를 냈고, 이어 영화인연대 차원에서도 시네마테크 기능을 복원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영화인연대와 서울영화센터의 공식적인 교류는 없지만 개인 채널로는 개관식에 참석하라거나, 어떤 협약이나 행사를 서울영화센터에서 진행하자는 등의 연락이 오는 상황이다.

- 가장 큰 문제의식은 서울영화센터의 장기적 지속성에 대한 비판일까.

그렇다. 독립·예술·고전 영화 상영 비율을 70% 이상으로 정하고, 일부 내부 공간을 수장고로 용도 변경하겠다는 대응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지속성에 대한 부분은 해결되지 못했다. 1~2년마다 상영관 용역을 공모하고, 이에 따라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 등이 계속 변해야 한다면 애초 서울시네마테크의 목적이었던 시네마테크 공간 운영의 안정성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 11월26일 ‘서울시 공공 시네마·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한 긴급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시장이 바뀌면 좀 달라지겠지’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러한 태도도 현행 서울영화센터가 지닌 근원적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정권이 어디로 바뀌든, 시장이 누가 되든 서울영화센터는 진영 논리와 무관한 곳이어야 한다. 현 시장이 전임 시장의 치적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려 한다거나, 공간이 특정 진영의 이득을 위해서 쓰인다는 의식이 없을 순 없겠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시네마테크의 주요 성질은 지속성에 있다. 정부와 시정이 어떻게 변화하든지 정치권과 시민에게 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확실하게 얻기 위해선 결국 시네마테크로의 복원이 중요하단 것이다. 이 사안을 특정 진영이나 단체들의 이권 싸움으로 여긴다면 궁극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시네마테크나 독립영화 관련 정책은 어떤 이익을 내려는 사업이 아니다. 처음에 서울시네마테크를 논의했을 때의 목표처럼 영화 문화와 관객들의 권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 11월26일 포럼 현장에서, 그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서울영상위원회와 주최하던 ‘독립영화 쇼케이스’ 사업이 내년에 폐지된다고 밝혔다. 서울영상위원회가 진행하는 ‘인디서울’ 사업도 중단된다고. 이것 역시 서울영화센터의 영향인가.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18년 동안 227회를 개최해온 사업이다. 개봉 기회를 얻기 힘든 독립·단편·실험 영화를 상영하며 창작자에게는 제작비를, 비평가에게는 지면을 제공해 독립영화의 담론을 선순환하게 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별다른 논의 없이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서울영화센터에서 독립영화를 틀기로 했기 때문에 기능이 중복된다는 맥락이었다. 서울영상위원회가 진행하는 인디서울도 12년 동안 60개 상영관에서 433편가량의 독립영화를 5천여회 상영한 행사였지만 비슷한 이유로 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시가 제시하는 ‘기능 중복’이란 근거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독립영화 쇼케이스뿐 아니라, 충무로영화센터 오!재미동과 인디서울은 각각의 역할과 구조가 다를뿐더러 여러 장소에서 시민들의 접근성을 키우는 고유성을 쌓아왔다. 이에 서울시는 법적인 논리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해당 공간을 활용하는 영화인, 시민들과 운영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지를 통보하는 것은 절차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 위 사업들을 기능 중복이라고 폐지한다고 했을 때, 그 예산이 실제 서울영화센터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인가.

위에 언급한 작은 사업들을 정리한다고 해도 4억원 정도가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서울영화센터의 상영관 용역비와 비슷하거나 아래인 수준이다.

- 포럼 이후의 반응은 어땠나.

포럼이 끝나고 서울시측과 만났다. 독립영화 쇼케이스, 인디서울, 충무로영화센터 오!재미동 사업 등이 서울영화센터와 기능 중복이라는 이유만으로 폐지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을 서울시 경제실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다행히 12월 중순까지 서울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이 사업들이 복원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12월 중순에는 서울영화센터에서 공개적인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자고 합의했다. 서울영화센터에 관해 여러 의견이 산발하고 있다면, 아예 공론장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서울시도 수락한 상황이다. 아직 구체적인 일자나 참석자들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많은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을 모시고 진행하려 한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영화인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얼마 전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간의 활동을 돌아본다면, 그리고 서울영화센터를 비롯해 최근 영화 정책에 대한 정부·국회·서울시정 등의 온도를 어떻게 느끼는지.

함께하면 어떻게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영화인연대라는 기반 덕에 계엄 국면을 거치며 갑자기 폐지됐던 영화관입장권 부과금을 복원할 수 있었고, 그외 대정부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물론 영화인연대 안에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각 단체간의 이견이 오갈 때도 있지만 이내 전반적 방향성 내에서는 모두가 최대한 협력하고자 하는 힘을 받는다. 이것이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할 때나,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에서 이야기할 때도 큰 지지대로 작용한다. 최근 여러 직을 수행하고 다양한 자리에서 한국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가장 크게 생각하는 과제는 결국 관객이란 존재다. 영화계가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자생하기 위해서, 관객을 어떻게 극장으로 오게 할 것인지에 대해 나를 포함한 여러 영화인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