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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계엄이 어떻게 극영화가 될 것인가, 12·3 비상계엄과 극영화의 양상

<신명>

2024년 12·3 비상계엄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비상계엄 사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상업영화의 개봉이나 구체적인 제작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영화산업이 침체한 상황에서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작품의 위험성을 감수하기 어려울뿐더러 관련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안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박정희가 피살된 1979년 10·26사건이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로, 같은 해 일어난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이 2023년 <서울의 봄>으로, 1980년 광주의 5·18민주화운동이 1996년 <꽃잎>을 시작으로 2007년 <화려한 휴가> 등을 통해 극화된 사례를 고려하면 한국의 상업 극영화가 정치·사회적 대사건을 그리기 위해선 일정 정도 시차가 요구되어 왔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대중적 화제에 올랐던 <서울의 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차후 한국 현대사 시리즈를 이어갈 것이라 밝히긴 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와 김영삼 정권 시절의 이야기가 중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동시대적 의식의 부재 속에서 더 뾰족하게 12·3 비상계엄을 파고드는 극영화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해 미국이 <미키 17><슈퍼맨><씨너스: 죄인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등 대규모 상업영화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은유하고 대중이 이 영화들을 논쟁의 중심으로 삼는 경향, 또는 <어프렌티스>(2024)가 도널트 트럼프의 생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도전 의식 등이 지금 한국의 상황과 곧바로 대조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관련 사회·정치적 의제를 다룬 국내 극영화로 지난 6월 개봉한 <신명>이 있다. 윤석열 부부를 풍자하는 정치적 목적과 영화의 수단화가 명확한 동시에,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오컬트의 영역에서 다루는 윤리적 문제 등 질적으로 여러 비판의 소지가 잇따르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미명>

사회적 사건에 대해 상업영화보다 더 기민하고 직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독립영화의 현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12·3 비상계엄을 직접적으로 다룬 독립 극영화가 아직 정식으로 개봉하진 않았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고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에서 ‘남도장편경쟁 작품상’을 받은 이원영 감독의 <미명>이 현재로선 가장 유의미하게 다가온 포스트 12·3 비상계엄 영화로 읽힌다. 계엄을 현실적인 차원으로 분석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비상계엄을 겪은 한 부부의 일상을 불분명한 혼란의 뉘앙스로 그려내며 평단의 호평을 이끈 작품이다. 현실을 재현하는 각 영화의 방법론을 두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긴 어렵겠다. 그럼에도 1989년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처럼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을 고스란히 극화했던 독립영화의 패기,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습 사건을 곧바로 극화한 자주영화(일본의 독립영화) <레볼루션 +1>의 시의성처럼 지금 이때에만 발산할 수 있는 시대의 열기 역시 다양한 갈래로 이야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