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배우의 히트 추천사를 따라 하자면, <나의 마지막 조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극 드라마, 왜 보냐. <나의 마지막 조선> 보면 되는데.”
고종이 즉위하기 전, 철종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뒤 조대비는 은밀히 흥선군을 만난다. 세찬 비가 쏟아지는 어느 밤, 허름한 차림으로 대비전에 들어서는 흥선군. 그와 조대비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장을 읽다 보면, 두 사람의 기색과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 그리고 그 뒤의 욕망까지 눈앞에 그려진다. 시대적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오고 가는 밀담과 그 곁에서 숨죽인 늙은 상궁의 눈초리만으로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서막은 충분히 전달된다.
자가 된 뒤, 상선 남수중의 양자가 된 석호는 운명처럼 견습 내시의 길로 들어선다. 계파를 나누어 권력을 다투는 내시부에서 그는 모진 학대를 받으며 성장하고, 어렵사리 내시가 된 후에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고종을 지척에서 모시게 된다. 부친 흥선군과 대비의 압박에 짓눌려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는 허울뿐인 왕은, 석호 앞에서만큼은 속내를 드러낸다.
소설 속 조선은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되고자 했지만, 고종의 주변에는 모략꾼이 넘쳐난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 속에서 조선은 점점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수치심에 잠긴 왕을 석호는 연민으로 지켜본다. 독자는 모든 비극과 인물들의 고통, 조선 말기의 풍경을 석호의 눈을 거쳐 알게 된다. 석호는 자신의 신분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도 주변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조선시대를 살아가지만, 동시에 현대인의 시선을 지닌 인물이다. 작가 이현수의 전작 <신 기생뎐>이 기생들의 법도와 전통을 실제처럼 그려냈다면, <나의 마지막 조선>은 구중궁궐에 사는 사람들, 특히 내시부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복원해낸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의 홍보 문구는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인데, 이 소설이야말로 이상스러우리만큼 보는 감각을 일깨운다. 독자로 하여금 장면을 ‘보게’ 만드는 방법은 간명하다. 감각적으로 살아 있는 사건 묘사와 실감나는 디테일, 그리고 그 시대의 습속과 언어 속에서 숨 쉬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다. 고종을 비롯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실존 인물들 또한 작가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시간의 벽을 뚫고 뚜벅뚜벅 우리 앞에 걸어 나온다.
나는 그날 맡은 전하의 살냄새를 기억한다. 붉은 용포에 감싸인 몸에서 풍기던 달콤하고 화하고 싸하고 아릿하던 냄새. 그 후에도 그 향기가 나면 전하께서 다가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8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