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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한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디디에 에리봉이 이번에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전후한 시간을 통해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으로 썼다. 그의 어머니는 1950년, 스무살에 한살 연상이었던 아버지와 결혼해 스물세살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결혼하고 55년이 지난 뒤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함께했지만 “난 두분이 서로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점점 거동하기조차 힘들어졌지만 자신의 쇠락을 인정하는 법이 없어 언제나 “내가 나아지면…” 또는 “내가 회복되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마침내 요양원에 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까지. 이 책의 부제가 ‘어머니’로 시작하지 않고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가 생각나는데, 두 저자 모두 고향을 떠나, 노동계급-서민이었던 부모의 세계를 떠나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을 얻고 작가가 된 뒤 부모의 죽음에 이르러 아버지-어머니의 순서로 각각 책을 썼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모’로 묶어 하나의 책-무덤에 담지 않고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름’은 노동계급에서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 디디에 에리봉은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은 동생이 명백히 동성애 혐오의 분위기를 풍기며 ‘가족에 대한 중상모략’으로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할 때, 어머니가 다른 두 형제간의 다툼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를 지른 이야기를 들려줄 때의 상황들 사이로 어머니가 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전단지를 배부하는 일을 맡았던 때 혹시 누가 알아볼까 수치심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를 때, 수치심이 계급적 양상을 띠며 성장기를 얼룩지게 만드는 몇몇 양상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릴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오랫동안 잊기 어려운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더 나은 관계를 갖고자 시도해본 사람이라면(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3장에 이르러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에 빠질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두 번째 죽음이 찾아오면 이것은 결국 늦어버릴 수밖에 없는 게임임을 알게 되니까. 거동하지 못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부모만이, 비로소 우리의 시간과 돈, 관심을 온전히 붙들어둔다.

어머니는 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걔는 이제 대단한 음악을 들어. 미사에라도 와 있는 것 같아.” 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