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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펑펑>

복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얼마 전 지하철역 근처 분식집에서 저녁을 해결한 적 있다. 많은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고 ‘배달의민족, 주문’ 알림음이 귀 아프게 울리고 음식이 계속 나왔다. 자주 열리는 문 사이로 거리의 소음이 들어오고 날벌레도 돌아다니는 와중에 가게에서는 애절하기 그지없는 90년대풍 발라드를 틀었다. 비탄에 빠져 절절히 흐느끼는 그 노래가 지친 직장인의 맵고 달고 짠 저녁 한끼에 희한하게도 어울려서,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고 있을 때 <펑펑>을 읽게 되었다.

<펑펑>은 할 말이 많은 책이다. 90년대 솔로 가수 돌풍에서 시작해 아이돌 전성시대를 거쳐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202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가 저자에게는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내는 시간이었고, 케이팝과 하나되어 슬픔을 해소한 시간이었다. 케이팝은 머리 염색이나 손짓 하나까지도 기획의 손길이 들어간다. 컴백곡 앞에서 팬들은 말 그대로 깨알 단위로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실력과 인성을 따지고 코디를 평가한다. 기획사와 방송사는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자세고, 팬들은 그들의 의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팬이 개인적으로 품은 사랑과 열정, 음악을 접하는 경험만큼은 순수하다. H.O.T.의 팬들은 ‘팬픽이반’을 통해 다양한 하위문화를 실험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우리 오빠’와 스캔들이 있었던 여성 그룹 베이비복스는 얼마나 잔인하게 괴롭힘을 당했던가. 투표 조작이 있었던 <프로듀스 X 101>을 향한 뜨겁고도 묘한 응원은 또 어떤가.

세계의 변방에서 태어나 중심으로 가고자 하는 열정, 그 청춘의 열정이 도착한 곳은 서울의 월세방과 야근이 끝나지 않는 일자리였고 피로가 겹겹이 뭉쳐 있는 새벽의 거리였다는 저자의 자전적 고백은, 케이팝의 이 열정적이고도 모순이 가득한 풍경과 어우러져 만화경 같은 형상을 이룬다. 세상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같은 생각이 들 때 <펑펑>이 권하는 음악을 순서대로 들어보자. 신화의 <Perfect Man>을 배경으로 20년 만에 만난 동창과 신화 누드집을 산 얘기를 버스에서 나누었다는 일화를 읽으며 웃자. 같이 알바하던 친구와 무작정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탔다는 추억을 읽으며 청하의 <Roller Coaster>를 들어보자. 베이비복스의 명곡 <Killer>, “세기의 적반하장”이란 평가가 딱인 태양의 <나만 바라봐>, 뽕이나 끼 같은 건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은 티아라의 <넘버나인(No.9)>등 빼어난 선곡을 따라 책을 읽으면 의문이 풀린다. 세상의 모순, 나의 슬픔을 비탄의 샤우팅 혹은 몸을 마구 흔드는 춤으로 풀어주는 우리의 노래 케이팝.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