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어딘가 아는 얼굴 같은 사람을 마주친다. 어쩌면 그 사람일까 생각하다 보면 상대는 바쁜 현대인답게 금방 사라져가고, 뒤늦게 깨닫는다. 아, 시간이 흐른 만큼 내 기억 속의 얼굴은 그냥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달라져 있겠구나. 그렇게 회상에 빠지고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시점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나 깨달으며 멜랑콜리해지고, 동시에 과거가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아쿠아리움>은 그해 여름, 어머니와 함께 어디든 같이 다닌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때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어른이 된 나는 안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직장까지 잃은 어머니가 여름방학에 아홉살짜리 아이를 집에 차마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데리고 다녔다는 것을. 동네의 작은 물고기 가게에서 예쁜 열대어를 구경하며 거대한 아쿠아리움을 꿈꾼 아이에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잔혹했지만, 가게가 망한 후에도 물고기를 돌본 주인의 마음처럼 아이는 그 상처를 품은 채 어른이 되어 과거의 충격을 차분히 회상한다. <햇살에게>는 석달 전 실종된, 혹은 산으로 가출한 아이 ‘햇살’에게 성당의 신부가 말을 건네며 아이의 흔적을 따라간다. ‘사람 아닌 것의 아이’라는 엄마의 말, 동정 잉태로 아이가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주장, 신자들 사이에 퍼진 소문 같은 단서들이 천천히 하나로 맞춰진다. 동시에, 남들과는 다르게 자란 아이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이 천천히 번져나간다.
묻어둔 과거를 꺼내는 순간,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을까.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해 연인을 잃은 제나는 32년 만에 그 연인의 가족과 연락이 닿아, 걱정 속에서 그동안 마음에 품어둔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준비를 한다.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을까. 혹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해>에서 마크와 나영은 바닷가에서 매일 같이 수영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큰 수술을 앞두고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이 오와>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세 사람은 아이오와의 옥수수밭 농장에 모여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지지만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까마득한 옥수수밭처럼 ‘나쁜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떤 인생이 우리를 지나갈 뿐”이라면,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글씨를 어설프게 얹은 하얀색 싸구려 크림 케이크 앞에서 함께 새해를 축하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으리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어는 짧은 면회를 마친 죄수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13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