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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호피무늬 모자>

안 세르 지음 송원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안 세르의 장편소설 <호피무늬 모자>는 한권의 책이 전부 파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파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묘사임에도 이 책을 다 읽어도 우리는 파니가 그래서 결국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파니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변덕스러운 인물이라서이기도 하지만, 때로 지나치게 자세하고 정성스런 묘사는 그 촘촘한 구체성 때문에 대상의 총체를 보기 어렵게 만든다. <호피무늬 모자>는 화자가 파니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자는 말 그대로 화자(서술자)다. 파니처럼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자는 그저 파니의 친구로만 이 책에서 존재 가치가 있으며 파니에게 마구잡이로 휘둘리면서도 계속 파니의 곁에서 그가 생의 의지를 이어가기만을 기도하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금세 알 수 있다. 파니의 모든 행동은 과거형으로만 존재한다. 화자가 두개골을 열어 그 고통의 연원을 속속들이 알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파니는 더는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많이 말한 적이 없었다. 그 애를 깨우기 위해, 삶에 매어두기 위해, 현실에 붙잡아두고 꿈에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말했다.”(31쪽) 오늘의 파니는 햇빛같이 웃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숨을 쉬는 것 같지만 곧 그 빛이 사그라들고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실제로 이 소설은 안 세르가 동생이 죽은 후 애도하며 쓴 소설이다. 파니가 죽은 나이, 안 세르의 동생이 죽은 나이 역시 동일하다. 사실 파니가 안 세르의 동생인지, 화자가 안 세르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나 사랑했던 사람을 애도하며 그에게 가닿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했다는 것만이 유의미하다. “너란 존재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너란 존재는 탱크처럼 강하고 낫처럼 날카롭지. 네가 떨고 있다 해도, 작디작아 보일 때조차도 말이야. 나는 이런 엄청난 존재를 사랑했던 거야, 라고 화자는 생각한다. 이 불안하고 가혹한 존재를. (중략) 요컨대, 살아가게 한다.”(156쪽) 매 순간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존이 파니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관둘래, 라고 파니는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고 화자는 결국 파니에게 가닿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독히도 끈질기게 거기 매달리는 문장들은 가혹하게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답고 자유롭다. 오직 한 사람의 죽음을 탐구하기 위해 써내려간 이 이상한 소설이 주는 감흥이 무엇이라고, 역시나 간단히 설명하지 못하겠다.

살아내야 할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자마 위에 가운을 걸치고서, 나무 계단과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다락방이 있고 방마다 책과 사진이 오래된 물건이 가득한 아름다운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나절에는 모든 게 쉬웠다. /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