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답보다 질문을 품고서 - 배우 증경화

그야말로 쾌속 질주다. 8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19년 데뷔작 <반교: 디텐션>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주목받더니, 이듬해에는 또 다른 주연작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대만 박스오피스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 성적을 거둔 LGBTQ+ 영화로 기록됐다. 이후 코미디, 멜로, 스릴러를 오가며 활약한 그는 금마장을 비롯한 대만의 주요 영화제와 시상식에 이름을 올렸고, 패션계와 광고계의 러브콜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올해로 데뷔 7년차, 1996년생인 그가 20대를 달려오며 쌓아올린 성과는 눈부시다.

인터뷰 룸에 들어선 증경화는 유난히 편안해 보였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짐작했는데 최근 삶의 태도를 바꾼 경험이 그에게 있었다. “상반기 동안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으며 도시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일상의 속도를 늦추는 시간을 보내면서 평온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글로벌OTT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넷플릭스 시리즈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에서는 지금과 같은 느긋한 얼굴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맡은 리런야오는 극악한 살인자이자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복합적인 캐릭터를 반년 가까이 품고 살던 증경화는 “깊이 생각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파고들수록 리런야오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갈림길의 순간에 집중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그 배경과 동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했다. 관객이 그를 참혹하게 바라보거나 동정하게 만들지 않도록 표현의 균형을 맞추는 데도 신경 썼다.”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

지난 5월 대만에서 개봉한 영화 <실락원>을 위해서도 오랜 시간 인물과 단둘이 머물렀다. 대신 이번에는 인물의 인생사에 집중했다. “내가 맡은 18살 소년 ‘양’은 고아원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일찍 사회에 나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생존을 위해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데 그 길이 순탄할 리 없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적은 선택지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의 잔인함을 가슴에 품고 연기했다.”

지금까지의 답변에서도 느껴지듯 증경화는 진중하게 사유하는 배우다. 제62회 금마장 남우조연상을 안긴 <가족 문제>(2025)에서는 막내아들 샤오쯔샤를 연기하며 고향의 의미를 곱씹었다. “언제 어느 때 돌아가도 고향은 그대로다. 물론 가족들은 나이가 들고,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면서 풍경은 바뀌지만 소속감만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의 힘이 있기에 내가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 믿음이 이 작품을 하는 동안 나를 지탱했다.”

증경화의 로맨스를 기다려온 한국 팬이라면 영화 <신신 앤 더 마우스>(Sinsin and the Mouse)의 개봉을 기대해도 좋겠다. 처음 만난 대만 남성(증경화)과 일본 여성(기시이 유키노)이 대만 곳곳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멜로드라마다. 증경화는 이 영화를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전체 대사가 일본어”였기 때문이다. 반달눈으로 웃으며 고충을 털어놓던 그는 이내 다시 사색적인 표정으로 돌아왔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만 피어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촬영을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게 일상인 내게 이 이야기는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올해 9월, 증경화는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다. 수련과도 같았던 상반기를 지나 더욱 단단해진 그는 또 다른 인연과 캐릭터를 만나며 그 속의 고유한 의미를 발견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