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이모>는 위은경 감독이 거리에서 우연히 본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동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애견 미용사가 강아지를 안고 병원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는 아니지만 정말 예뻐하면서 말을 걸고 있었다.” 자신의 몫 이상의 사랑을 듬뿍 주는 누군가의 모습은 위은경 감독의 5번째 이모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가 9남매 중 8명이 딸인 집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7번째인데, 5번째 이모가 어린 시절 날 정말 예뻐하셨다.” 그렇게 현실 속 이미지와 어린 시절 몸소 느낀 이모의 사랑은 영화로 재형상화됐다. 동물병원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선희(정호정)는 아름답게 꾸며달라는 주문을 끝으로 잠적한 주인을 대신해 귀를 노랗게 물들인 강아지 메주를 집으로 데려와 돌본다. 버려진 메주와 오버랩되듯 오래전 선희가 동생을 대신해 10년간 키웠던 조카 서연(위은경)이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이고 나타난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모를 만나러 온 것이다.
위은경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서연 역을 연기했기에 <선희이모>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 감독이 이모를 생각하며 쓴 이야기일 뿐,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 물론 배우상을 받은 정호정 배우의 실감나는 생활 연기는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홀로 있을 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지만, 조카에겐 불고기를 뚝딱 만들어 상을 차려주고, 옷을 깔끔하게 개켜 여행 가방을 정리해주며, 잠든 서연이 선풍기 바람에 추울세라 이불로 배를 덮어주는 정호정 배우의 눈빛과 동작은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보는 듯 느끼게 한다. ‘필름메이커스’를 통해 정호정 배우를 만난 두 감독은 그가 선희 역의 적임자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특히 위은경 감독은 배우의 얼굴이 “정이 있게 느껴”져서 참 좋았다고 회고한다.
위은경, 손광민 두 감독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그럼에도 대사에만 기대지 않고 의외의 이미지들이 서로 반향을 일으키고 음악이 서사를 힘 있게 끌어당기는 ‘영화적인’ 연출을 구사한다. 선희 이모, 조카 서연, 강아지 메주가 서로의 모발을 노란색으로 염색해주고 보듬어주는 영화의 구성은, 이재준 촬영감독이 정호정 배우의 염색한 머리를 보고 던진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독특한 뉘앙스로 발전시킨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세 주인공이 밤거리를 달리는 신은 영화엔 등장하진 않지만 두 감독의 지인인 심달기 배우의 역할이 주효했다. 편집본을 본 심달기 배우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하카 음악을 떠올리면서 이미지와 사운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장면이 탄생했다.
<선희이모>는 인물간 관계를 깊이 다루면서도 감정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갈등의 순간은 분명 존재하지만 영화 자체는 담백하고 산뜻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인물간 감정은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묘하다. 부부 사이인 위은경, 손광민 감독은 앞으로도 이런 “현실적인 톤”을 영화의 주요한 가치로 삼겠다고 말한다. 위은경 감독은 “영화 안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깥과 연결되어서, 보고 나면 관객 주변의 어떤 것과도 연결될 수 있는 영화”를, 손광민 감독은 “확실하고 극적인 변화가 아닌, 일상에 미세하게 균열이 나면서 생기는 변화들을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