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꿈을 좇아야만 살 수 있는 팔자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최우수 작품상·촬영상 <서를 담고> 박정수 감독

피리 연주자 수현은 그토록 열정을 쏟던 피리를 그만뒀다. 집념을 다해 피리 연주에만 매달려도 오디션 결과는 낙방이었고, 그 자리에 내정자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게 될 뿐이었다. 주인공이 피리를 그만둔 후 일회성으로 내림굿에 연주자로 불려간 상황에서 시작되는 <서를 담고>는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벼린 피리 소리와 함께 담아낸다. “<위플래쉬>처럼 집념과 꿈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를 하다 보면 이 일이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나. 결과만 보고 계속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냥 뭔가 배우고 만들고 할 때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런 게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서를 담고>에는 수현의 과거 시점이 두번 등장한다. 고등학생 시절 수련회에 가서까지 옷장 속에 들어가 혼자 연습을 하는 시점과 성인이 되어 오디션을 보는 시점이다. “수련회에서 옷장에 들어가서 연습하는 것과 내림굿에서 연주를 하면서 굿당 바깥으로 나와 신명나게 연주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생각했다. 이 두 장면의 대비가 무척 중요해서 로케이션 때 수련원 옷장 문이 특별한 곳을 찾았다.”

<서를 담고>에서 ‘서’는 피리의 리드 부분으로 바람을 모아 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이 ‘서’ 부분을 물에 담았다 꺼내야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낼 수 있다. “피리를 불기 위해선 서를 담는 것이 꼭 해야 하는 작업이다. 물속에 서가 담겨 있듯이 웅크리고 있던 인물이 자신이 그토록 매달렸던 피리를 다시 부는 과정이 담겼다.” 박정수 감독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영화나 음악과 같은 예술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팔자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해야만 숨통이 트이는 것, 꿈이 결국은 팔자라는 생각에 감독은 피리 연주자를 내림굿에 불러앉히게 되었다. “신내림을 받아야만 하는 팔자와 피리라는 꿈을 좇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인물들의 팔자를 연결하고 싶었다.” 무기력해 보이는 수현이 영화 전반에서 무슨 심리인지 배우에게 설명할 때 감독이 예시로 든 것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었다. “자전거는 굴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물이고, 꿈을 향해 집요하게 매달리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 그래서 옷장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선택까지 한다고 배우에게 설명했다.”

제22회 미쟝센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더불어 촬영상을 수상한 만큼 <서를 담고>는 인물을 담은 구도와 색감이 눈을 붙든다. “<이다>나 <콜드 워>처럼 카메라는 고정하고 마지막에 움직임을 줘서 인물이 해방되는 감정을 강조하고 싶었다. 내림굿이 사실 굉장히 볼거리가 많은데 최대한 절제하는 방향으로 갔다. 촬영상을 타서 기쁘면서도 그 결과에 있어서 감독인 내 역할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미쟝센영화제에서 만난 선배 감독님들이 구성에 맞게 장면을 만드는 것도 다 연출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내가 한 게 없진 않다는 자신감도 조금 생겼다.” 박정수 감독은 인터뷰가 짧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영화에 과한 의미 부여를 하거나 멋있게 포장을 했을까봐 우려가 된다고. 정성을 다해 깎은 감독의 ‘서’를 꺼내 온몸의 숨을 모아 소리를 내는 피리 연주자처럼 공들여 만든 영화임이 보임에도 신중하게 말을 잇는 박정수 감독은 <서를 담고>를 라이벌 구도의 장편으로 확장시킨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