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이즈 캔슬링>은 어디서 출발한 이야기인가.
취미로 풋살을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랑 뛰던 중에 개천 너머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반복되니까 다들 원래 하던 일을 하게 되더라. 비명 때문에 처음엔 웅성웅성하다가 다시 친구들이랑 뛰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근데 가는 길에 계속 생각나더라. 사람들이 친구와 떠들고 도시락을 먹고 연인과 데이트하며 일상을 지속하는 와중에 어디서는 비명이 들리는 상황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 일이 계속 마음에 남아 이야기로 발전시키게 됐다.
- 영화에는 일상 속 현실적인 소재들, 이를테면 이웃 간 소음이나 산재사고와 같은 것들이 얽혀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시켰나.
비명에 대한 미스터리를 쓰고 있다가 그 소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전개를 해야 했다. 그동안 계속 노동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를 해왔다. 초등학생 때 큰아버지가 추락 사고를 당하셨다. 큰아버지가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아주 호쾌한 분이셨는데, 일터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서는 네살 아이처럼 변하셨다. 그 일이 어린 내게도 무척 충격이었다. 일터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매일 나가는 곳인데 오히려 거기서 삶이 파괴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 일이 영향을 준 것인지 창작을 하면서 노동자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다.
주인공이 듣는 소리들이 약자의 소리 내지 타인이 겪는 고통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걸 듣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응용하기보다는 좀 과장된 캐릭터로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배우에게도 “미주가 좀 미쳐가는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예전에는 사회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막 분노하고 같이 동참하기 위해 찾아보다가 나 역시 어느 순간 지치게 되더라. 아무리 목소리를 내고 싸워도 변하지 않고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회피하고 싶은 거다. 그럴 때 무엇이 우리를 다시 진실에 접근하게 만들까, 현실을 외면해야만 편안해지는 주인공을 판타지적으로 보여주면 관객도 한번 더 들여다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영화를 시작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그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현실주의자라 당장 영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돈을 벌어서 영화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영화 가까이에서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 학교 현장이나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할 수도 있겠다.
이상하게도 내가 익히 잘 아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게 되더라. 언젠가는 교사나 초등학생이 등장하는 영화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더 시간이 흘러야 거리 두기가 될 것 같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그 이야기에 접근하지 않으면 자기 연민이 들어갈 것 같은데, 그 부분은 경계하고 싶다.
- 앞으로 영화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우리가 자신의 약자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그걸 조금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고 싶은 바람이 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에 대해서도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계속 고민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