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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실과 환상 사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며 -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피에르 폴데스 감독

어느 날 아내가 사라졌다. 이윽고 평범한 일상에 기이한 사건들이 끼어든다. 은행원 가타기리 앞에 사람만 한 거대한 개구리가 나타나서는 도쿄를 지진으로부터 구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저마다 삶의 균열을 마주한 사람들을 따라간다. 쓰나미 영상을 반복해서 바라보던 교코는 남편 고무라를 떠나고, 홀로 남겨진 고무라는 낯선 여정을 시작한다. 한편 가타기리는 도쿄의 지하에 잠들어 있다는 거대한 괴물과 맞서야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재난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과하며 조금씩 연결된다. 프랑스의 피에르 폴데스 감독은 무라카미의 여러 단편을 엮어 현실과 환상, 외부의 재난과 내면의 혼란이 뒤섞이는 세계를 완성했다. 음악과 회화, 실사영화를 넘나들어온 그가 선택한 표현 방식은 애니메이션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눈앞의 이미지로 바꾸되, 그 의미를 하나로 결정하지 않는 영화. 피에르 폴데스 감독에게그 기묘한 창작의 과정을 물었다.

무라카미의 바다에 몸을 던지다

사진제공 피에르 폴데스

피에르 폴데스 감독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일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당시 애니메이션과 회화 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소설에서 받은 영감을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전혀 몰랐다. 아름다운산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무라카미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처음부터 명확한 방향을 정해두기보다 이야기의 바다에서 마음껏 길을 잃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관객에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지시하기보다 스스로 이해를 찾아가도록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서로 독립된 단편들을 하나의 장편영화로 엮는 과정도 그랬다. 처음에는 별개의 이야기였던 인물들이 뜻밖의 연결점을 드러내면서 서사는 점차 하나로 모였다. 그러나 감독은 단편소설 특유의 독립적인 구조를 완전히 지우고 싶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여러 장으로 구분한 이유다. “낯설고 독립적인 세계 에서 또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느낌을 유지하 면서도, 그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점차 발견하게 하고 싶었다.”

무라카미의 원작 소설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조차 담담하게 서술된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거대한 개구리와 지하의 괴물에게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다. 심리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우디 앨런과 데이비드 린치로부터 많은 정서적 유산을 물려받은 피에르 폴데스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인간의 머릿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를 눈앞에 펼쳐놓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다만 형체를 부여하는 것이 곧 의미를 확정하는 일은 아니다. “개구리는 물리적인 존재일 수도, 심리적 투영이나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다. 영화가 그중 하나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보여주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환상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아니라 그 환상이 관객에게 불러일 으키는 감정과 해석의 가능성이었다.”

배우의 감정에서 태어난 애니메이션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인물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지니면서도 현실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비밀은 폴데스 감독이 직접 고안한 ‘라이브 애니메이션’에 있다. 라이브 애니메이션이란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한 뒤, 그 움직임과 표정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촬영된 배우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로토스코핑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배우들은 캐릭터의 시각적 모델이 아니라 표정과 움직임의 원천이다. 특정한 제스처를 과장하거나 단순화하고, 다른 움직임과 결합할 수 있다. 배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감정적 진실을 전혀 다른 인물로 옮기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직접 조각했다. 3D로 만든 머리는 인물의 표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거대한 개구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연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완성됐다. 인간 배우의 몸에서 출발한 감정이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존재의 얼굴을 얻은 셈이다. “실사영화는 배우와 카메라를 통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재현한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마음이 느끼고 상상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실제 배우의 연기는 감정의 출발점이지만 최종적인 형태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움직임을 보존하면서도 그 표현을 자유롭게 변형하는 것. 폴데스 감독이 찾은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이다.

‘진짜 지진’은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영화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을 배경으로 한 원작의 이야기들을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도쿄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배치했다. 서로 다른 재난의 기억을 하나로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폴데스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의 정확한 재구성보다 재난이 인간의 내면에 남기는 파장이었다. “지진은 물리적인 사건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재난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던 무언가를 어떻게 뒤흔드는지 궁금했다. 쓰나미 영상을 반복해서 바라보던 교코는 자신이 외면해온 진실을 발견하고, 고무라는 아내와의 이별로 삶의 균형을 잃는다. 반면 가타기리는 거대한 개구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의 힘을 발견한다. 물리적 지진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지진은 인물들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서 감독은 원작에 대한 충실함을 새롭게 정의했다. “무라카미의 작품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것을 내가 이해하고 느끼는 방식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그의 작품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비전을 전달 하고 싶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이를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는 일에 비유했다. 악보에 적힌 음표를 정확히 재현하는 것보다 작곡가가 그 음악을 쓸 때 느꼈을 감정에 다가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폴데스 감독이 운영하는 회사 스튜디오 마(Studio Ma)의 이름은 일본어의 ‘마’(間)에서 따왔다. 사물 사이의 공간, 음표 사이의 침묵, 문장 사이의 여백을 뜻한다. 그가 자신의 영화에서 지키려 한 것도 바로 이 빈자리다. 원작을 영화로 각색한다는 것은 결국 문장으로 존재하던 세계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의 모습을 결정했다고 해서 해석의 가능성까지 닫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관객의 상상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 내 과제는 정의를 피함으로써 무라카미의 모호함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호함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의하는 것이었다. 각색의 역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