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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종이는 무엇을 기념할 수 있을까 – 전 세계 주요 영화지들의 운영 현실을 개괄하며

<사이트 앤드 사운드> 2026년 3월호.

종이 잡지의 문을 닫는 사람들은 거창하거나 뭉클한 고별사를 마다하곤 한다. 대개 원치 않는 결과였을 터다. 2024년 봄, 캐나다의 영화 계간지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이자 비평가인 마크 퍼랜슨은 97호 에디토리얼에서 종간을 알리며 이렇게 썼다. “이 잡지를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구걸이 아니고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가이 매딘 감독이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표지로 두른 마지막 호는 특별한 장식도 없이 평소처럼 발행됐다. 한 시대의 종언치고는 담백한 퇴장이다.

<시네마스코프>의 폐간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국제 잡지·미디어 산업 협회인 FIPP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잡지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연평균 3.1%씩 줄어들고 있었고, 2020년에는 전년 대비 16% 급락을 기록했다가 2022년 들어서야 소폭 회복했다. 이들의 예측은 앞으로도 연평균 약 2.1%의 감소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전세계 종이 잡지 시장의 하강 곡선 안에서 종이-영화-잡지는? 줄어드는 영토 앞에서 오히려 초연한 희귀종이다.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야에 비해 광고 규모가 작고, 호사가들의 이목을 자극하는 속보에서는 디지털에 한참 밀리며, 학술지가 그렇듯 기관 구독에 기댈 수도 없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2020년 은행가, 기업인 중심의 컨소시엄에 잡지가 매각되자 편집진 전원이 사직했다가 일부 복귀했다.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영화잡지인 일본의 <키네마 준보>는 2017년 TV 방영권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영상 유통사에 인수되어 2023년부터는 기존 월 2회에서 월간 발행으로 전환했다. 자매지이자 증간호 성격인 <키네마 준보 NEXT>가 화보 중심으로 팬덤을 공략해 수익 보전을 돕는 구조다. 그나마 안정적인 영국의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영국영화협회(BFI)라는 공공기관이 뒤를 받치고 있다.

미국은 가장 극적인 변화의 현장이다. 1962년 독립 잡지로 창간 후 재정난을 겪으며 1974년 필름 앳 링컨센터(FLC)에 인수된 <필름 코멘트>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2020년 5월 이후 FLC 소속 평론가, 에디터 3인이 편집진을 맡아 주간 뉴스레터,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명목을 잇는 중이다. 미국 촬영감독협회(ASC)가 1920년부터 발행해온 촬영 기술 전문지 <아메리칸 시네마 토그래퍼>는 월간 인쇄와 디지털 에디션을 병행하며 100년 넘게 존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더욱 사랑받는 잡지 중엔 스트리밍 플랫폼 무비가 만든 <노트북>이 떠오른다. 무비는 14년간 무료로 비평과 뉴스를 발행해온 온라인 채널 <노트북>의 인쇄판을 2021년부터 별도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반연간으로 발행되는 이종이 잡지는 이름만 공유할 뿐 디지털 공개 없이 오직 종이로만 존재한다. 물성적 매력을 극대화한 두꺼운 무광택 표지엔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등 아티스트가 직접 찍은 커버 사진이 실린다. 산재한 영화잡지의 지형을 집약하느라 한데 서술했지만, 엄밀한 의미의 비평지로 한정하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종이 영화 잡지는 1967년 창간한 <시네아스트>다. 영화사, 언론사, 기관 및 조직 등에 소속되지 않은 채 계간 발행을 고수하는데 뉴욕주예술위원회(NYSCA)와 국립예술기금(NEA)의 공적자금이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간략히 덧붙이자면 미국 대형 산업지들의 풍경은 한층 ‘버라이어티’하다. <버라이어티>는 2012년 펜스키 미디어(PMC)에 인수된 후 80년 역사의 <데일리 버라이어티>를 2013년 종료, 주간 형태로만 인쇄를 지속하고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2010년부터 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인디와이어>와 <데드라인>은 태생부터 디지털 네이티브다. 복잡한 소유권 이동 끝에 네 매체 모두 현재 PMC 산하에 있으며, 뉴스 속보 경쟁은 전적으로 웹에서 벌어진다.

종이냐, 디지털이냐라는 양자 택일의 질문은 현시점에서 무의미해졌다. 다만 지금도 던져봄직한 질문은 ‘종이가 디지털과 다른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다. 사실 <시네마스코프>의 마크 퍼랜슨은 폐간사에서 이렇게도 썼다. “다른 이들과 달리 나는, 인터넷에도 이런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고- 혹은 누구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잡지의 종간은 나무를 죽이는 일을 그만두는 것 외에 어떤 것의 ‘끝’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무비 부사장이면서 <노트북>의 편집장인 대니얼 카스먼은 인쇄판의 출발을 알리며 낙관을 고수했다. “영화 출판물이 줄어들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종이 잡지를 통해 영화 제작과 영화 관람, 영화 문화의 생생한 물리적 세계에 대한 헌신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자 한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간극이 곧 오늘날 영화 잡지가 서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