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가르송 영화평론가는 2020년 <카이에 뒤 시네마>부편집장에 임명됐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외부 필진으로서 꾸준히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한 그는 잡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적임자였다. 중간에 7~8년간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나 다른 매체에서 글을 발표하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평론 활동을 하던 기간이 있었지만, 2020년 마르코스 우잘 신임 편집장이 부편집장 역할을 제안하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제안받고 주저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잘 알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거라고 마르코스 우잘 편집장과 페르난도 간조 공동 부편집장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쉽지 않은 여정도 어느덧 6년째다. 그 시간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지금 그가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서울과 파리, 7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영화잡지란 공통점 하나로 그와 화상으로 만나 나눈 긴 대화를 꼼꼼히 옮긴다.
- <카이에 뒤 시네마>가 일하는 풍경이 궁금하다. 최신호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카이에 뒤 시네마>는 월간지이기 때문에 발행 2개월 앞서서 준비하려고 하지만, 바로 다음달에 발행될 잡지에 집중하는 편이다. 물론 다뤄야 하는 특집기사나 커버 일정 때문에 3개월 앞서 준비할 때도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월간지이지만, 시간과 싸우며 마감하는 기간은 9일밖에 되지 않는다. 마감 첫날 대부분의 원고를 준비해놓고 검토하며 편집하기 시작한다. 전체 분량은 90페이지가 넘고 60편의 원고가 실리기 때문에 모든 글의 마감일이 겹치지 않도록 주의하려 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원고들을 교열 담당과 디자이너, 사진 편집자에게 전송한다. 월간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 주간지인 <씨네21>보다 긴 호흡으로 일할 것이다. 하지만 시사회와 영화제 같은 공식 일정 때문에 주간지처럼 일할 때도 있다.
- 잡지의 밑그림을 그리는 기획 회의는 어떻게 진행되나.
원래는 매주 기획 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격주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재정적으로 상시 고용이 어려워서 우리는 외부 필진에게 글 단위로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다. 외부 필진 대부분은 평론가로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고등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격주 회의가 열리면 이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참석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편집진 3명 이외에도 매달 약 20명의 필진이 글을 쓰기 때문에 회의 규모가 큰 편이고 결국 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우리가 ‘위원회’라고 부르는 모임인 비교적 작은 핵심 필진의 인원도 12~15명이 된다. 핵심 필진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달을 제외하면 매호 글을 쓴다. 하지만 이들이 글쓰기에만 시간을 쓰는 건 아니어서 실제로 글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최근 <카이에 뒤 시네마>는 손이 부족한 데서 오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음달에 이런저런 주제에 관해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만, 시간을 쏟을 수 있는 필진을 5명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매주 15편, 한달이면 60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어떤 경우엔 70편까지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린 그 모든 작품을 다룰 수 없다. 개봉작도 워낙 많고, 회고전도 많고, 시네마테크 프로그램도 많다. 영화 관련 책도 많고, DVD까지…. 매달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외부 필진이 많이 필요하다.
-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잡지로서 살아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참고로 <씨네21>은 봉준호, 박찬욱 감독과 같은 인물들과 유튜브 콘텐츠 ‘마스터스 토크’를 만들고 있고, 미쟝센단편영화제도 주관하고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규모가 워낙 작아서, 3일간 개최되는 영화제라도 직접 조직하는 게 쉽지 않다.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공적 지원일 것이다. 우리는 그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프랑스에는 언론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나, 뉴스 매체에 해당해야 해서 우리 같은 전문 잡지는 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재원으로 민간 자본이 있다. 현재는 명품 브랜드 샤넬이 <카이에 뒤 시네마>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이 브랜드는 영화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서 최근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화 프로그램과 프랑스의 시네마테크에도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민간 스폰서가 그렇듯, 그들의 사업 판단에 관여할 수 없기에 상황이 바뀌면 후원을 중단할 수도 있고, 사업 성과가 좋지 않으면 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일도 한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위한 영화 교재가 있는데, 매년 새로운 영화들이 추가된다.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 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에서 매년 이 사업 공고를 낸다. 지금은 <카이에 뒤 시네마>가 맡고 있다. 나는 아니지만 일부 필진은 그 작업에 참여하고 보수를 받는다. 예전엔 ‘카이에 위크’라는 행사를 도쿄나 뉴욕 등 여러 도시에서 열고, 편집진이 프로그램을 꾸리고 감독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장미셸 프로동 전 편집장이 그런 활동을 자주 했던 걸로 안다. 그때의 <카이에 뒤 시네마>는 <르 몽드>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지금과 전혀 다른 구조였고 훨씬 더 여유가 있었다. 현재는 작은 규모의 조직이라 많은 일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이다.
- 한국에선 많은 영화잡지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프랑스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건 영화잡지만의 흐름이 아니라, 문화를 다루는 잡지 전반의 상황이라고 본다. 경쟁지라고 할 수 있는 <레쟁로퀴티블>(Les Inrockuptibles)은 영화뿐 아니라 음악, 책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문화 잡지인데 영화 섹션이 굉장히 탄탄했다. 본래 주간지였지만 2021년부터 월간으로 바뀌었다. 매달 발행되던 영화잡지 <소필름>(SoFilm)도 마찬가지로 격월간으로 전환됐다. <흐뷔 에 코리제>(Revus et corrigés)란 흥미로운 잡지가 있었는데, 프랑스엔 재개봉이나 복원 상영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옛 영화와 재개봉작만 다뤘다. 몇년간 유지되던 이 잡지는 결국 지난해에 문을 닫았다. 이 모든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한 운송비 상승, 그리고 종이 가격 인상과 관련이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와 짝을 이루는 잡지인 <포지티프>도 있다. 한때 영화평론가 미셸 시망이 이끌던 잡지였는데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포지티프>가 계속 발행이 가능한 건, 리옹에 있는 뤼미에르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리옹은 뤼미에르 형제의 도시이자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데 이 재단은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운영하고 있다. 물론 프랑스에선 전문 영화잡지를 구매하지 않아도, 여전히 좋은 비평은 읽을 수 있다. 일간지 <르 몽드>와 <리베라시옹>에는 굉장히 훌륭한 영화평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잡지들이 사라지는 건, 나쁜 신호이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만 살아남고 싶지 않다.
- 영화잡지는 독자에게 끌려가선 안되지만, 독자와 완전히 거리를 둘 수도 없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독자와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구독자 전체에게 설문지를 보내 10% 정도의 응답을 받은 적 있다. 그 설문을 통해 확인한 건, <카이에 뒤 시네마>의 구독자 다수를 차지하는 게 중년 남성들이란 사실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모든 대학 도서관과 지역 도서관에 비치돼 있어, 학생들이 구매하거나 구독하지 않고도 많이 읽는 걸로 알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충성도 높은 구독자 대부분은 중년 남성이다. 이는 시네필 문화와도 연관돼 있고, 누가 돈을 내고 잡지를 살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23년 2월 <카이에 뒤 시네마>는 주로 여성 필자들이 글을 쓰고 여성을 주제로 한 호를 발행한 적 있는데, 전량 품절되었다. 잡지가 품절된다는 건, 충성 구독자뿐 아니라 비구독자들이 가판대에서 잡지를 구매했다는 뜻이다. 잡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항상 구독자를 만족시키고 싶지만, 이처럼 젊은 독자층에게도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다루는 주제를 잘 선정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이 앉아서 글을 읽게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씨네21>도 당면한 도전일 텐데, 종이 잡지가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젊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가 있고, 지난해에는 ‘아카이브’라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카이브는 1951년 창간호부터 전체 컬렉션을 온라인으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로, 야심차게 진행한 작업이다.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고, 이전에는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아카이브 구독은 단순히 학생이나 젊은 독자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영화비평의 개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잊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수아 트뤼포가 1954년에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쓴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을 읽을 수 있고, 세르주 다네의 에세이 ‘<카포>의 트래블링’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글들은 정말 많이 인용되었고 어떤 면에선 남용된 글들이다. 아카이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당시 잡지에 실린 레이아웃 그대로의 글을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글들을 신비화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게 된다. 그 글을 쓴 이들도 결국 월간지의 호흡으로 글을 썼다. 영화비평의 개념을 실험해보고, 논쟁해보고, 바로 어제 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글 속엔 ‘뭔가를 말해보려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필자들도 그 글이 영화사를 바꿀 줄은 몰랐을 것이다.
- 아카이브 구독 시스템이 큰 호응을 받았나.
점점 관심을 받고 있다. 먼 과거의 자료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지금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에도 관심 있고, 다 같은 결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이 잡지를 갖고 있지만, 온라인 아카이브도 활용한다. 온라인으로 잡지를 보면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고, 글의 위치와 구성도 바로 파악해 곧바로 읽게 된다. 반면 한호에 실린 모든 기사를 보는 건 종이 잡지일 때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 온라인 구독이 페이지를 넘기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대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아카이브는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 최근 한국에서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유튜브의 부상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가 바뀌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도 궁금하다.
우선 나는 적당한 예가 아닐 듯하다. 나는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카이에 뒤 시네마>부편집장으로서 나의 일은 영화보다는 글에 집중돼 있다. 파리에 살고 있는데 여기엔 영화관이 정말 많아서 극장에서 보는 영화면 충분하고, 시사회 관람으로 족하다고 여긴다. 극장에서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온라인으로 굳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다. 물론 일반 관객이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현상은 이해한다. 사람들은 영화뿐 아니라 많은 걸 온라인으로 본다. 심지어 <카이에 뒤 시네마>에도 ‘비극장’(Nontheaters)이란 섹션이 있고, 여기서 영화뿐 아니라 시리즈도 다루고 있다. 이 섹션을 통해 좋은 시리즈가 많다는 걸 새삼 느끼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가 시리즈만 다룬 특집호를 냈을 때 판매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낮은 판매량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스트리밍서비스로 작품을 몰아보는 문화와 그렇게 본 작품에 관한 글을 읽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카이에 뒤 시네마>를 꾸준히 보는 독자들은, 이 잡지가 스트리밍 잡지처럼 되길 바라지 않는 듯하다.
- 한국영화를 향한 프랑스의 관심이 상승 중인지 하락 중인지도 궁금하다.
다른 곳처럼 프랑스에서도 ‘한류’가 일어나고 있다. 음악부터 화장품까지 하나의 흐름이 느껴지고, 예전보다 한국의 존재감이 훨씬 커졌다. 하지만 영화 분야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200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25년 전쯤에는 한국의 새로운 감독들을 ‘발견했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많지 않았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스릴러나 필름누아르 장르의 한국영화들이 있다고는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고 한 분야에만 집중하지는 않아서 이런 한국영화들에 다소 거리를 두고 ‘아, 또 장르영화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를 궁금해하지 않는 게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그러한 선입견을 갖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또 박찬욱 감독 스타일이겠지, 폭력적인 장면이 강한 영화겠지’ 이렇게. 반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인들은 홍상수 감독을 좋아한다. 프랑스인들은 “최근 홍상수 감독 신작 봤어?”라고 물으면 신작이 5편쯤은 나와 있으니 “어떤 거 말하는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워낙 신작이 빠르게 나와서 매번 다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작은 규모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에릭 로메르 감독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좋아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종이로 된 영화잡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씨네21>이 내린 답변과 비슷할 것 같다. 나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문학적인 글을 쓰는 잡지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영화에, 나머지 절반은 글쓰기에 무게를 둔다. 영화에 관해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영화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를테면, 최근 프랑스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다룬 자비에 지아놀리 감독의 <빛과 그림자들>(Les Rayons et les Ombres)이 개봉했다. 프랑스에는 나치에 저항하지 않고 협력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소재로 한 <빛과 그림자들>은 거대 자본을 투입해 만든 러닝타임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편집진은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설명하려고 준비 중이다(이 영화는 프랑스판 IMDb로 불리는 ‘알로시네’(AlloCiné)에서 별점 5점 만점에 4.2점을 기록하며 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다. -편집자). 이는 부정적으로 군다거나, 프랑스 영화산업을 공격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목적은 우리가 본 것을 이해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데 있다. 내 생각에 <카이에 뒤 시네마>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작품이 더 깊이 울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관객도 영화를 보지만, 우리는 영화를 더 오래 붙잡고 시간을 들여 글로 풀어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글을 읽고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은 책이나 글로 정리된 깊은 생각을 읽는 걸 즐긴다. 다만 그 수가 크게 확장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카이에 뒤 시네마>편집진은 팟캐스트를 하고 있고, 각자 영화관에서 필름클럽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들 알고 있다. 인쇄매체가 더이상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확장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정기 구독자가 10만명이 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카이에 뒤 시네마>필진들이 의도적으로 독자를 배제하며 엘리트 의식에 가득 차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뉘앙스를 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기 위해선 글을 쓰는 데도, 읽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글을 온라인으로도 읽을 수는 있지만 종이 잡지의 형태로 손에 쥐고 읽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 동의한다. 어린 시절 <씨네21>을 서점에서 구매해 집어나올 때, 좋아하는 섹션을 먼저 펼쳐 읽을 때의 감정은 정말 특별했다.
맞다. 그 물성 자체가 중요하다. 들고 다닐 수 있고, 기차에서도 읽을 수 있는. 그건 영화를 볼 때의 감상과는 또 다른 결의 경험이다. 온라인으로 글을 읽으면, 온라인에서 영화를 볼 때와 거의 비슷한 상태가 된다. 반면 책이나 잡지 형태로 읽을 때는 완전히 다른 글을 접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편집진은 사람들이 그런 즐거움을 느끼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를 가끔 한번씩 사보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취향 소비, 거의 ‘페티시’처럼 말이다. 누군가가 실제로 우리의 글을 읽었다고 하면 놀랄 때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영화잡지 <씨네21>이 시간 내주어서 고맙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