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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언제나 현대적인 -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공적 토대에 기반한 현실적 지속

샹탈 아케르만(비정기 특별호).

2021년, 현존하는 영화 전문지 중 가장 오래된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극적으로 변모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마리나 빌러와의 협업을 통해 전면 리디자인을 단행한 것이다. 오랫동안 고집한 ‘&’를 ‘and’로 바꾸고 영화 슬레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굵직한 타이포그래피와 격자 디자인, 서체의 현대적 재해석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 것은 새로운 표지 전략이다. 개편 첫호는 네 감독의 초상- 클로이 자오, 스티브 매퀸, 소피아 코폴라, 루카 구아다니노- 을 각각 표지로 내세운 4종 커버였다. 이후에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2024년 10월호), 데이비드 린치(2025년 3월호), 봉준호(2025년 4월호), 폴 토머스 앤더슨(2026년 3월호) 감독 등이 표지를 장식해오고 있다. 매호 ‘감독의 의자’(Director’s Chair) 칼럼에서는 현역 감독이 필자로 참여하며, 감독을 게스트 에디터로 초대하기도 한다. 최초의 게스트 데이터는 2020년 3월호에 함께 한 봉준호 감독이다. 그 밖에도 기부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해 약 100페이지 내외의 감독 중심 특별호(bookazine)도 비정기적으로 내고 있다. 이는 모두 창간 이래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강조해온 작가주의 정체성의 가장 선명한 현재형을 이어가는 행보다.

2025년 3월호 - 데이비드 린치 추모 특별호.

<사이트 앤드 사운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0년 주기 투표로 결정되는 역대 최고의 영화(Greatest Films of All Time) 선정이다. 1952년부터 2002년까지 반세기 동안 정상을 지킨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2012년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밀려났고, 2022년엔 1639명의 투표자가 4천편 이상에 표를 던진 가운데 샹탈 아케르만 감독의 <잔느 딜망>(1975)이 1위로 뛰어올랐다(2012년 36위). 폴 슈레이더 감독은 “이 결과는 역사적 연속성이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에 의한 재편”이라 비판했는데, 편집장 마이크 윌리엄스는 “우리의 리스트는 영화 만들기, 영화 즐기기, 그리고 비평적 대화가 만든 더 넓고 현재적인 세계를 반영한 결과”라고 응답했다.

디지털화를 꾀한 잡지의 발행 형태와 경영 성과는 어떨까.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월간 인쇄본과 디지털판을 병행한다. 모든 구독자에게 1932년 창간호부터 현재까지의 전체 디지털 아카이브 접근권이 무료로 제공되므로 90여년치 영화비평이 구독의 부가가치다. 뉴스레터 <더 위클 리 필름 불레틴>과 소셜미디어 채널은 인쇄 매체와 독자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윌리엄스 체제 이후 영국 발행부수공사(ABC) 기준 발행부수가 1년 만에 15% 증가했고, 영국영화협회(BFI)의 20242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8년 중 가장 많은 독자 수”를 기록한 결과다.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약 12개월간 발행된 온라인 기사 358편의 합산 조회수는 약 500만뷰다. 가판 판매로는 2025년 3월호 데이비드 린치 추모 특집이 10년 새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2026년 최신호 4월호.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90년 넘게 생존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BFI라는 공적 토대에 있다. BFI는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DCMS)의 정부보조금과 국영복권기금을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며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그 산하 매체다. 잡지는 BFI 사우스뱅크의 상영 프로그래밍, BFI 런던영화제, BFI 플레이어(스트리밍) 등과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하나의 영화 문화 생태계를 구성한다. 2024년 10월호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메갈로폴리스>를 심층 조명하면 BFI 사우스뱅크에서 관련 상영이 열리는 식이다. 순수한 시장 논리라면 진작 사라졌을 진지한 영화비평 잡지가 공적 자금의 울타리 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층 영화 저널리즘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아마도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인 대답이다.

이어지는 에세이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20년 이상 일한 현 편집팀장 이저벨 스티븐스의 글이다. 영화잡지의 편집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인쇄된 종이 위의 영화 글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를 묻는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고백을 전한다.

제호의 의미와 역사는?

1932년 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중의 문화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익단체 성인교육협회(BIAE)가 계간 영화잡지를 창간했다. 이름은 <사이트 앤드 사운드>(Sight and Sound). 영화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교양 있는 예술로 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유성영화로의 격변기에 이 잡지의 이름 ‘시각과 청각’은 새로운 매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기록하겠다는 사명의 반영임과 동시에 영화의 본질적인 단위에 집중함으로써 미학적 성취를 깊이 있게 분석하겠다는 비평적 태도의 선언이었다. 1934년 BFI가 발간을 이어받았고 이후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단 한번도 휴간한 적이 없다. 1949년 개빈 램버트가 편집장으로 부임하면서 잡지는 교양지에서 본격적인 비평지로 체질을 바꾸었고, 뒤를 이은 퍼넬러피 휴스턴은 1956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4년간 잡지를 이끌며 세계적 권위의 매체로 끌어올렸다. 휴스턴의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1960년대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의 급진적 작가주의와 대결하는 한편, 잉마르 베리만, 페데리코 펠리니 등 유럽 작가 감독들의 영미권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현재 편집장은 2019년부터 재임 중인 마이크 윌리엄스로 영국 음악 잡지인 의 편집장을 지낸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개편 공로 등을 인정받아 영국잡지편집인협회(BSME)에서 올해의 편집자(Editor of the Year)상을 2022년부터 3년 연속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