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집] 그쪽은 괜찮으신가요? - <키네마 준보> 편집국 탐방기

<키네마 준보> 편집국의 입구 전경. 최신호 포스터와 과월호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2024년 봄, 도쿄시 긴자 도심에 있는 <키네마 준보>편집국의 문을 두드렸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씨네21>과 <키네마 준보>의 기사 제휴 등을 논의하고,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잡지사답게 20여년 전과 필진에 변화가 크게 없었으므로, 다행히도 연락이 닿았다. <키네마 준보>의 필진이자 <씨네21>과도 연이 깊은 사토 유 영화평론가가 만남을 주선해줬다.

100년 넘은 잡지이니만큼 <행복한 사전>(2014)에 나오는 근대풍의 출판사 사무실을 상상했으나,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정갈한 화이트 톤의 최신식 오피스였다. 아주 살짝 실망하려는 순간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키네마 준보> 창간호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1919년에 발행된 잡지다. ‘역시 <키네마 준보>구나!’ 싶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편집국 내부를 보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활기차기보단 적당히 고요한 분위기가 한국의 <씨네21> 사무실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세상살이가 다 비슷하듯이 영화잡지사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빠른 구경과 촬영을 끝낸 뒤 <키네마 준보> 편집국의 아케치 게이코 편집장, 미우라 미치타카, 마에다 다케오 편집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의 대화와 최근 교환한 서신의 내용을 추가해 <키네마 준보> 방문기를 남겨본다.

종이의 역사성으로

입구에 배치된 <키네마 준보> 창간호 표지. 무성영화 시대 미국 배우인 마르가리타 피셔, 도로시 기시가 표지를 장식했다.

첫 이야깃거리는 어쩔 수 없이 먹고사는 문제였다. “요즘 <씨네21>은 좀 괜찮은가요…?”, “<키네마 준보>는 어떤가요…?”와 같은 우려 섞인 인사가 대화의 포문을 열어준 것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두쪽 다 그리 넉넉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하여 얼마간의 동질감 속에서 각자의 힘듦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키네마 준보>를 비롯한 종이 잡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온라인 기사에 관한 문제였다. 일본의 다른 잡지사에서 앞다투어 웹 매거진을 만들고 있기에, “지금 와서 온라인 매체로 체제를 전환하는 것은 비용과 실용성 측면에서 모두 곤란”한 것이다. <키네마 준보>는 현재 잡지 판매 외 수익원이 별도로 없는 상태로, 운영 유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근엔 종이 잡지와의 콘텐츠 연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식 웹사이트 리뉴얼을 천천히 진행 중이다.

대신 <키네마 준보>는 잡지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강점으로 활용하는 중이었다. “SNS에서 매일같이 흘러가는 정보성 기사는 신선도나 독창성 측면에서 최대한 게재를 보류 중”이다. 대신 이전보다 더욱더 “특집기사에 비중을 두는 편집 방침”을 실행하고 있다. 예컨대 2025년 10월호에선 ‘웨스 앤더슨의 모험 또 모험’이라는 권두 특집을, 2025년 11월호에선 ‘쓰게 요시하루와 영화’라는 권두 특집을 내세웠다. 웨스 앤더슨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을 중심으로 정통 작가주의 비평에 가까운 방향성을 유지한 것이다. 주요 개봉작이나 큰 외화를 다뤄야 할 때는 최대한 작품 바깥의 영역까지 범주를 넓힌다. 2026년 3월호는 <폭풍의 언덕>을 표지로 삼은 호인 동시에, ‘<폭풍의 언덕>의 광기 어린 사랑, 그리고 영화는 문화를 다시 상상한다’라는 권두 특집으로 꾸렸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베 고보, 미시마 유키오, 찰스 디킨스, 장 콕토 등이 쓴 글과 그것들에 기반한 영화들을 관계 지음으로써 비평적 무게감을 잃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6회 동안 이어질 연재 기획을 시작했다. ‘쇼와 100년, 지금 보고 싶은 영화’라는 주제로 일본의 5대 메이저 영화사(도호, 도에이, 쇼치쿠, 닛카쓰, 가도가와-다이에이 포함)와 협업했다. 쇼와시대(1926~89)의 주요 일본영화 100편을 선정하고, 당시에 발행됐던 관련 기사를 그대로 게재함으로써 “동시대를 경험한 독자들에게는 향수를, 이후의 세대에게는 현대와 다른 당대의 열기를”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 역시 100년 전통의 <키네마 준보>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아카이빙 기획이다. 참고로 이 100편엔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의 <인정 종이풍선>(1937)부터 다나카 히데오 감독의 <스케반 형사 극장판>(1987)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이 선정됐다. 전체 목록은 <키네마 준보>웹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평론가와 영화잡지는 쉽지 않다

<키네마 준보> 편집국 내부. 키보드 타건 소리만이 울렸다.

편집부는 전적으로 편집 및 기획에만 집중한다. 때로 단신 기사를 쓰거나 인터뷰를 정리하는 정도만 맡으며, “편집부가 비평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필자들과의 회의를 “굉장히 자주” 진행하며 기획까지만 개입한다. 기사 작성과 디자인은 모두 외부에 맡긴다. 외부 필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키네마 준보>가 먼저 조심스레 물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은 생계유지가 가능한 편입니까…?” 실질적으로 어려운 환경이라 답하자 <키네마 준보>도 맞장구를 쳤다. “본가가 아주 부자이거나 본업이 있지 않은 이상 영화평론만으로 생활하기는 어렵기에, 결국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글을 써주는 필자들에게 원고를 부탁하게 된다. 전업 작가라든지 의사, 문화예술계 종사자, 대학교수 등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렇게 연을 이어온 필자는 대략 50여명이고, ‘<키네마 준보> 베스트 텐’ 선정자는 70명 정도다.

영화평론가란 직함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일본 내에서 점점 줄고 있다. 대신 영화 관련 기사를 쓰거나 상영 후 토크나 이벤트를 진행하는(한국으로 친다면 GV 모더레이터) 이들이 ‘영화 라이터(writer)’나 ‘영화 코멘테이터(commentator)’와 같은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지금의 50대 이상 되는 분들에게만 전문 평론가의 비평을 읽고 영화를 이해한다는 문화가 겨우 남아 있는 듯하다. 옛날에야 하스미 시게히코 선생님 같은 분이 어떤 영화를 칭찬하면 그 작품이 흥행할 정도의 힘이 있었으나, 지금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영화 관객들의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키네마 준보>를 탐방한 이후 방문한 도쿄 시부야의 미니시어터 ‘시네마 베라’에도 대부분 중년 남성 관객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다른 영화잡지들은 어떤 상황일까. “<영화예술>처럼 비평을 싣는 종이 잡지가 간간이 있다. <영화비보> <스크린> <플릭스> 같은 잡지는 영화를 다루지만 비평을 게재하진 않는다. 영화 전문지가 아니어도 이라든지 <긴자> 매거진이라든지 <유니카> <매거진 하우스> 등 각종 문화 매거진에도 영화 코너나 기획이 종종 실린다. 잡지가 아니더라도 온라인에서 비평을 공유하는 곳도 15군데 정도 있는 것 같다.” 즉 ‘영화잡지’의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며 여타 종합 매체와 경쟁하는 것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당연히 흔한 일은 아니었다.

비슷한 걱정과 비슷한 동력

미우라 현 편집장과 마에다 편집인. 마에다 편집인은 대학에서 영화를 만들다가 <하비 재팬>이라는 잡지사에서 일하던 중 영화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에 <키네마 준보>에 들어왔다. 미우라 편집장도 도쿄영화미학교를 나와 잡지 <영화예술>과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다 <키네마 준보>에 안착했다.

또 다른 공감대가 있었다. 종이 잡지의 가장 큰 난제, ‘표지’ 문제였다.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굉장히 엄숙해졌다. “아무래도 판매를 위해선 인기 있는 젊은 배우가 꼭 필요하다. 최근엔 배우 메구로 렌, 요시자와 료, 마쓰무라 호쿠토 등이 표지를 장식한 호의 판매 부수가 평소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표지의 배우들이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에서 개인상을 받을 분들이라는 최소한의 고집”은 지키고 있다. 또한 “꼭 인기 배우가 표지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2024년 7월호의 앨프리드 히치콕 표지와 작가주의 특집, 2025년 3월호의 데이비드 린치 표지와 추모 특집, 2025년 7월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표지와 신작 <메갈로폴리스>특집도 예상보다 높은 판매율을 보였다. 예전 같으면 무척 저조했을 텐데,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가졌다.” <키네마 준보>는 제작비 10억엔 이상의 대형 영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고질라>시리즈를 특집으로 다룬 적도 있다. 다만 대형 영화 중에선 비평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작품이 더 많기에 결과적으로는 잘 다루지 않게 되고 있다. 표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고난이 잡지의 전통을 넘어서진 않는 것이다.

이외에도 아주 많은 공감대가 오고 갔다. 잡지 수익률의 감소, 영화산업의 축소, 영화제의 위상 변화, 미디어 환경의 급변, 비평과 사회윤리의 관계 등 종이 잡지와 영화비평의 고민은 이웃 나라도 비슷했다. 신기할 정도로 서로를 부러워하는 측면도 있었다. 필자는 계속하여 등장하는 일본의 유망 감독들을 부러워했고, <키네마 준보>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은 정부 지원책의 존재를 부러워했다(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필자보다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려움이 비슷하듯이 잡지를 만드는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잡지의 촉감이나 향기, 페이지마다의 레이아웃 등 단순히 글을 읽는다는 것을 넘어 오감을 경험하는 것. 종이는 이를 가능하게 만든다. 한권을 통째로 넘기다 뜻밖의 기사를 마주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잡지가 종이여야 하는 이유’를 우리쪽에서 명확히 제시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잡지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늘 경계하는 중이다.”

긴 대화가 끝나니 어느새 도쿄의 밤하늘은 짙은 블루로 변해 있었다. 편집국 출구에서 편집부의 배웅을 받던 중, <키네마 준보>의 젊은 직원 한분이 <씨네21>의 팬이라며 명함을 건넸다. 속으로 ‘친절한 인사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한국말로 어떤 배우의 팬이라며 <씨네21>잡지를 인증했다.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편집국 안쪽의 회의실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테이블 위가 다소 난삽하지만, <키네마 준보> <씨네21> 잡지나 관련 자료를 늘어놓은 것이다. 왼쪽부터 당시 아케치 게이코 편집장, 미우라 미치타카, 마에다 다케오 편집인. 맞은편의 사토 유 영화평론가가 대화에 함께했다. 2026년 3월호를 마지막으로 아케치 게이코 편집장이 은퇴하고, 4월호부터 미우라 미치타카가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