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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영화잡지라는 다중우주 - 단행본, 팟캐스트, 뉴스레터, 영화잡지들의 생존법

<뉴요커> 1994년 3월호.

오늘날 영화잡지에 대한 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과거와 같이 표지 이미지만으로 독자의 머릿속에 남는 건 아닌 듯하다. 영화잡지들이 독자와 접촉하는 방식은 이제 하나의 길이 아닌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영화잡지는 일종의 다중우주가 됐다. 매주 1~2회씩 업데이트되는 <엠파이어>의 팟캐스트 속 기자들의 유쾌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1시간 수다를 듣고 종이 한장 손에 쥐지 않고도 해당 잡지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을 수 있다. 팟캐스트에서 호감을 느껴 역으로 잡지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이다.

영화잡지를 향해 열린 다양한 출입구는 이제 매체의 생존력과 직결된다. 영미권 영화 주간지 <버라이어티>는 사전 대본 없이 두 배우가 터놓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액터 온 액터>란 동영상 콘텐츠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해왔다. 2025년 시즌23에 이르러 <CNN>과 공동제작하고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최근 티모테 샬라메가 발레와 오페라를 두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라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던 발언은 <버라이어티>의 <액터 온 액터>에서 매슈 매코너헤이와 나눈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다음 페이지부터 소개될 촬영 중심 영화잡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는 수익을 다각화한 성공적인 사례다.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는 기성 촬영감독과 촬영감독을 꿈꾸는 지망생들을 연결하는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으며, 영화 촬영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한 단행본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 매뉴얼>을 출간해 홈페이지를 통해 독점 판매하고 있다. 렌즈에만 집중한 서적 <시네 렌즈 매뉴얼>, 마틴 스코세이지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학을 다룬 단행본도 출간했다.

팟캐스트는 활자 비평뿐 아니라 말로 하는 비평, 이른바 ‘구두 영화비평’ 시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엠파이어 팟캐스트>는 유료 결제를 해야만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제작하고 있으며, 영화가 아닌 TV프로그램에 집중하는 <파일럿 TV 팟캐스트>도 론칭해 꾸준히 송출하고 있다. <엠파이어>는 매년 진행해오던 시상식을 없애고 팟캐스트를 통해 활력을 얻은 사례다. 팟캐스트는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영상 촬영에 비해 장비가 단출하며 비교적 쉽게 녹음과 편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성비가 높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팟캐스트의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필름 코멘트>의 전 편집장 니컬러스 라폴트 평론가도 홀로 팟캐스트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The Last Thing I Saw)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올리베르 락세 감독을 초대해 <시라트>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여러 변화 속에서 뉴스레터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고전적인 행위를 붙잡으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미국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잡지 발행을 멈추면서 뉴스레터 발행을 차선책으로 삼았다. 영국 영화잡지 <토털 필름>이 2024년 폐간되고 게임 중심 웹사이트에 흡수되자 기자들 몇명은 독립적으로 모여 뉴스레터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 영화잡지들이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영화잡지란 본래, 영화라는 너르고 헐거운 정체성 아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모여드는 군집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를테면 <씨네21>만 보더라도 진지한 비평 앞장에 말랑한 톤의 에세이가 실려 있고, 몇장을 넘기면 극장의 소식이 펼쳐진다. 영화잡지로 향하는 입구는 애초에 하나가 아니었고, 그 어느 길도 정답이라고 정해진 적은 없다. 어쩌면 영화잡지는 태생부터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공존하는 다중우주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변화들 역시 그 다중우주가 스스로를 확장해가는 또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