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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창작자의 존중을 받는다는 것 -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 편집장 스티븐 피젤로의 에세이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다. 다행하게도 난 1991년 편집 보조로 일을 시작한 뒤 부편집장을 거쳐 편집장까지 맡게 되었다. 1995년, 3년 반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겨우 28살에 편집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다. 내가 편집장 후보로 거론됐을 당시 미국영화촬영감독협회(ASC)의 원로 의원들은 나를 거의 초등학생처럼 여겼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난 보스턴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영화를 전공했다는 학문적 배경, 당신들의 영화를 모두 보았고 프레임 단위로 꿸 정도의 강박적 시네아스트라는 점으로 그들을 설득했다. “나를 믿어준다면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를 업계 최고의 기준점으로 끌어올리겠다!”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촬영 분야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었다.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하고 만난 영화인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창작자들이었고, 몇년 동안 나는 그들이 설명하는 내용의 절반도 이해하질 못했다.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 하나는 경청하는 법, 또 하나는 바보처럼 보일 정도의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용기였다. 이를 통해 점차 식견을 넓힐 수 있었고, 독자들이 촬영 현장에 함께 있는 것처럼 생생한 흥분을 느낄 수 있게끔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시민 케인>의 그레그 톨런드 촬영감독의 제작기가 실린 1941년 2월호. <시민 케인> 개봉 50주년을 맞아 1991년 8월호에 기사가 재게재됐다.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 웹사이트에서도 이 기사를 읽을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지셨군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낀다.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에서 일하는 동안 전 세계의 스튜디오와 촬영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드라큐라> 촬영 현장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 시간을 보냈고, <순수의 시대>와 <디파티드>를 찍고 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마이클 볼하우스 촬영감독을 따라다닐 수 있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 러셀 카펜터 촬영감독과 <타이타닉>의 갑판 위를 거닐기도 했다. 새무얼 L. 잭슨이 <펄프 픽션>과 <헤이트풀8>에서 그 상징적인 독백을 내뱉었을 때 불과 3m 앞에 있었고, 데이비드 린치의 자택에서 그와 인터뷰했으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리 피스터 촬영감독과는 고담시와 배트 케이브를 함께 둘러봤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촬영장에서는 밀레니엄 팔콘을 직접 조종하기까지 했다. 내겐 영웅과도 같던 필름 메이커들을 거의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은 영화 촬영의 중요성을 알리고, 종사자들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늘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홍보 담당자, 에이전트, 여러 분야의 영화인 등이 보내는 수백통의 이메일을 검토하고 그들의 프로젝트를 잡지에서 다룰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 매달 발행되는 잡지의 기획은 ASC 편집위원회와 주간 회의를 통해 철저하게 논의되어야 하며, 이 과정엔 동료 편집자들뿐 아니라 외부 필자들, 여러 ASC 회원의 의견이 반영된다. 종이 잡지 출판 외에 디지털판, 웹사이트, 각종 소셜미디어의 관리도 해야 한다.

마감 일정을 관리하고 원고를 청탁하면서, 콧대 높은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자존심까지 어르고 달래야 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또한 우리 필진과 편집자, 홍보 담당자들끼리 합의한 방향성이 영화사의 홍보 전략과 다를 때도 고역이다. 특히 내가 편집장을 맡은 후로는 프로덕션 자료, 기사에 필수적인 스틸컷이나 비하인드 컷에 대한 승인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지고 있다. 요즘엔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실무자가 이미지에 대한 승인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를 모으는 일이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을 다룬 2025년 4월호 표지.

우리처럼 특정한 분야만을 다루는 잡지라면, 비슷한 디자인이 반복되어 자칫 지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깊이 있는 내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지면에 생동감을 더하는 노력도 놓치지 않으려는 중이다. 우리의 노력을 알아준 것인지,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많은 에디터 상과 함께 “촬영 예술에 탁월하게 기여”했다며 국제촬영감독연맹(IMAGO)의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점은 우리 글의 대상이 되는 촬영 전문가들로부터 받는 존중이다. 지금 ASC 회장직을 맡고 있는 맨디 워커 촬영감독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를 두고 “촬영감독들이 골몰하는 예술과 기술적 혁신, 특히 연출자와의 협업에 관한 연구와 기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출판물”이라고 평가해주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영화인 대부분도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를 존중하고 인터뷰 요청에도 기꺼이 응해준다. 촬영 기술의 단순한 참고서를 넘어서 많은 촬영감독과 필름 메이커들에게 일종의 영화학교 역할을 해줬다는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 폴 토머스 앤더슨, 알폰소 쿠아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등은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가 배움의 원천이었다고 언급한 적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역시 학생 시절부터 이 잡지를 읽었고, 래리 스미스 촬영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도 항상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를 참고했다고 회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내 초기작이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의 표지를 장식했을 때가 인생의 가장 큰 영광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촬영장에서 작중 전투기인 ‘밀레니엄 팔콘’에 탑승한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의 스티븐 피젤로 편집장과 버추얼 프로덕션 에디터 노아 캐드너(왼쪽부터). 창문 너머의 하이퍼 스페이스 효과는 노아 캐드너가 이후에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와 위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촬영 초심자부터 오스카 수상자까지 모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내놓으려 애쓰고 있다. 물론 도전 과제는 산적해 있다. 출판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종이 잡지는 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퍼>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며 ASC의 모토인 “신의, 진전, 예술성”(Loyalty, Progress, Artistry)을 실현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대화 중인 스티브 피젤로 편집장(왼쪽부터).

사진제공 스티븐 피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