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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동으로서의 연기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켄트 존스 감독, 배우 그레타 리

평범한 직장인으로 37년을 보낸 에드(윌럼 더포)에게 예술가로서의 희망을 불태울 기회가 찾아온다. 젊은 예술가 집단의 리더인 마이어스(에드먼드 도노반)가 오래전 에드가 쓴 시집 ‘Way Past GO’를 감명깊게 읽었다며 그를 찾아온다. 젊은 예술가들의 찬사에 힘을 얻은 에드는 새로 발표할 시를 준비하고, 그룹의 뮤즈인 글로리아(그레타 리)와 남다른 관계로 이어진다. <히치콕 트뤼포> <다이앤>을 연출하고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한 켄트 존스 감독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전주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1980년대의 정취와 이를 향한 향수, 뉴욕 예술계의 중심에 서길 꿈꾸는 여러 세대의 열망이 담겼다. 이번 개막작 초청을 기념해 첫 내한한 켄트 존스 감독과 글로리아라는 드라마틱한 인물을 재현한 배우 그레타 리가 자신들의 신작에 관한 애정을 들려주었다.

켄트 존스, 그레타 리(왼쪽부터).

-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올해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기자회견과 GV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난 소감은.

켄트 존스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신났다. 그간 초청은 많이 받았지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해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이번에 개막작으로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게다가 그레타 리 배우와 함께라는 사실이 너무나 든든했다.

그레타 리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큰 영광이다. 영화제에 오는 길이 무척 설렜고 꿈을 꾸는 듯했다. 한국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에서 제작한 영화와 함께 전주에 오게 되다니! (웃음) 기분이 무척 좋았고 한편으로는 전주영화제에서의 상황이 어떨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한글 버전 포스터가 궁금했는데 실제로 보니 무척 멋있었고 극장에 상영될 때 스크린 하단에 뜨는 한글 자막도 좋았다. 이후로 <나의 사적인 예술가>를 본 관객들이 만날 때마다 영화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줘서 영화제에 머무는 이 시간이 더없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9세기에 집필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새미 버치가 각본을 썼다. 두 글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켄트 존스 소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시나리오가 더 마음에 들었다. 소설에는 아주 날카로운 아이러니가 담겨 있었는데 시나리오에선 그런 부분들이 다듬어진 채 좀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인공인 에드 색스버거의 과거가 1960년대에서 70~80년대로,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서 소호로 배경이 바뀌면서 뉴욕다운 면모가 더 살아나지 않았나 싶다. 뉴욕에 관한 나의 개인적인 기억도 작품에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다.

그레타 리 각본을 쓴 새미 버치와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게다가 <패스트 라이브즈>의 PD들이 <나의 사적인 예술가>에도 참여해서 이 프로젝트가 내겐 궁금하고 보고 싶은 영화 그 자체였다. 내게 대화를 걸어오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최근엔 그런 작품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정확히 그런 유형의 작품이었다. 시나리오에서 글로리아가 나오는 순간 직감했다. 그녀는 진짜 뉴욕 디바라고. (웃음) 레퍼런스로는 <상하이 익스프레스>와 같은 영화들의 스틸을 받았다. 한동안 현실성에 기반한 연기를 주로 했던 터라 글로리아라는 극적인 캐릭터를 만나 근육을 전부 사용하는 연기를 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았다. 어려웠지만 여러 시대의 아이콘을 공부하며 재밌게 작업했다.

- 에드와 젊은 예술가 집단의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으며 추구하는 바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켄트 존스 이 영화의 핵심은 여러 꿈과 허상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젊은 예술가 집단과 에드, 글로리아의 목표와 망상이 서로 마주치다가도 엇갈리는 상황이 그려진다. 극 중 에드의 감정을 곡선으로 표현한다면 계속 우상향하다 글로리아가 에드에게 “젊었을 때 굉장히 멋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끝내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한때 서로 맞닿는 듯했던 에드와 글로리아도 실제론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에드는 다시 시를 집필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괜찮다며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글로리아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자신의 꿈의 도시와 다름없었던 뉴욕을 결국 떠나야 하는 슬픈 결말을 맞이한다.

- 글로리아는 영화에서 두번 무대에 오른다. 처음엔 무대에 올라 를 부르고 두 번째로는 시를 낭독한다. 두 무대에서의 글로리아의 톤 앤드 매너를 어떤 과정을 거쳐 설정했나.

그레타 리 첫 무대에서 글로리아가 부르는 는 무척 아이코닉하고 드라마틱하다. 이 노래가 글로리아의 레퍼토리 중 하나라는 것 자체가 글로리아의 정체성과 꿈에 대한 열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마약에 취해 들뜬 상태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윌럼 더포의 얼굴에 대고 그러한 방식으로 노래를 할 수 있어 즐거웠다. 그 장면의 미스터리를 지키고 싶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는 설명하지 않겠다. (웃음) 후반부의 독백은 의외성을 띤다. 그 퍼포먼스를 보노라면 글로리아가 스스로 생각하는 한계치보다 훨씬 큰 재능을 지닌 연기자이며 나중에 무언가를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예술가의 재능이라는 건 글로리아의 무대처럼 순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잠깐 반짝였다 사라진다. 그럼에도 그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다는 게 정말 대단하지 않나. 우리의 인생이 결국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기자회견 때 감독님이 “이 영화에서 시를 인형극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녹여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연기는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말 노동으로서의 연기, 땅에 발붙인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