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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나 - <메가닥> 마이크 피기스 감독

해외에서 발매된 블루레이나 DVD를 구하지 않는 이상 2026년 5월 현재 한국에서 <메갈로폴리스>를 볼 방법은 없다. 고대 로마사를 비틀어 미래 도시의 흥망성쇠를 논한 이 영화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대부> 3부작을 마치기 전부터 구상했다고 알려진 필생의 역작. 이 작품보다 먼저 도착한 건 그 촬영 현장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메가닥>이다. 코폴라가 사비를 들여 제작했다는 속사정과 그로 인해 통제를 잃은 야심이 호불호를 가른다는 평까지, <메가닥>은 <메갈로폴리스>에 얽힌 무성한 소문의 안쪽을 파고든다. 그 시선의 주인으로서 전주영화제를 방문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코폴라와의 오랜 인연을 회고했다.

“투명 인간 한명 필요하신가요?”

때는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각색상, 남녀주연상까지 총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로 니컬러스 케이지가 남우주연상을 탄 밤이었다. 감독으로서 영광을 나눈 피기스는 시상식이 끝나고 참석한 파티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처음 대면했다. 우연히 그 가족과 한 테이블에 동석하면서부터였다. “환상적인 스토리텔러” 코폴라와의 만남은 피기스에게 “대단히 엔터테이닝한 경험”이었다.“우리는 1년에 한두번 안부를 묻는 사이로 발전했다. 내가 전세계에 걸쳐 수백명으로 이뤄진 코폴라 사단의 일원이 된 것이다. 코폴라가 발행하는 잡지인 <조이트로프>를 편집하기도 하고, 그가 런던에 올 때면 멋진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그러다 3년 전, 다른 지인에게서 코폴라가 드디어 신작 제작이 결정돼 매우 기뻐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바로 축하 메일을 보내며 추신을 더했다. 현장에 투명 인간 한명이 필요하다면 알려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이었는데, 곧장 회신이 왔다. 언제 올 수 있는지, 미국 취업비자가 있는지 묻는 내용이 다였다. 그리고 3주 후, 나는 <메갈로폴리스>로 향했다.”

카메라는 가슴께에, 비밀은 붉은 방에서

피기스는 춤과 음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몇편 연출한 적이 있다. “타인의 창작 과정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영화는 만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런 계획도, 계약도 없이 미국에 간 건 그래서다.” 처음 제안한 대로 “완벽한 투명 인간”으로서 현장을 누빌 기회를 얻은 피기스는 <메갈로폴리스>의 첫 리허설부터 카메라에 담았다. 안 그래도 경직된 자리에서 초를 치지 않기 위해, 피기스는 몸집을 줄였다. 팀원을 넷으로, 그중에서도 카메라를 든 인원을 둘로 제한한 피기스는 가능한 한 작은 장비를 안고 닷새를 버텼다. 그러자 <메갈로폴리스>의 스태프와 배우들도 다큐멘터리팀의 존재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피기스는 카메라를 가슴께에 뒀다. 찍는 사람이 렌즈로 얼굴을 가리면 찍히는 상대에게 호전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서란다. 찍히고 싶지 않을 때는 엄지손가락으로 목 긋는 제스처를 취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반대로 그들이 코폴라와의 불협화음을 터놓기를 원한다면 붉은 실크로 덮인 방으로 이동했다. 피기스는 로케이션마다 이런 교감을 위해 “레드 룸”을 마련했다. 덕분에 샤이아 러버프, 오브리 플라자, 더스틴 호프먼 등 <메갈로폴리스>의 시민들은 무방비한 상태가 노출되고 있다는 걱정 대신 현장을 이해한 외부인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기분으로 <메가닥>에 스며들었다. 다큐멘터리 출연을 거부한 애덤 드라이버를 제외하고.

대작의 장부를 들춰라

<메갈로폴리스>에는 약 1780억원에 달하는 1억2천만달러가 투입되었고, <메가닥>은 주요 스태프의 발언과 자막을 통해 각 파트의 지출을 상세히 밝힌다. 미술에 2700만달러, VFX에 1880만달러, 의상에 700만달러, 분장에 300만달러, 케이터링에 116만달러…. “자비로 그 정도 예산을 들여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충격적”이라 고백한 피기스는 “누구도 코폴라에게 ‘안돼’라고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코폴라부터가 자기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투명하게 알고 싶어 했다”고 돌이켰다. 하다못해 미국에서 계란값이 두배 가까이 오르자 식비가 치솟았다. 기름값이 뛰면 운송 문제가 생겼다. 제작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악몽 같은 상황에 카메라를 자주 들이대다 보니 어느 순간 피기스는 자문해야 했다. “이 다큐멘터리가 무엇에 관한 거지?” 선택과 집중으로 지금의 <메가닥>을 매듭지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4부작 TV시리즈로 방영될 뻔한 적도 있었다고. 1부가 <메갈로폴리스> 프로젝트를 개괄한다면 2부는 배우, 3부는 예산을 다루는 식으로 말이다.

감독으로서의 내 친구

피기스에게 이 작업은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엿보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과 우정을 키워온 이가 일터에서 좌절하고 폭발하면서 주변을 긴장시키는 걸 지켜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프랜시스의 아내 엘리너 코폴라도 내게 주의를 줬다. 그는 언제나 즉흥적으로 마음을 바꾼다고.” 그럼에도 피기스는 “모두가 코폴라를 돕고 싶어 하는 동시에 코폴라와 소통하며 무력해지기도 하는” 찰나를 소중히 여겼다. “이런 게 바로 영화니까!” 다만 코폴라는 완성된 다큐멘터리의 모든 장면을 기꺼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메가닥>의 편집을 두고 의견 차이를 확인했다. 계속되는 논쟁에 지친 피기스는 이렇게 코폴라를 달랬다. “하지만 프랜시스, 당신은 위대한 영화감독이잖아요. 때로는 맘에 들지 않는 것도 넘길 줄 알아야 해요. 너무 화내지 말아요.”

우리는 다른 꿈을 꾼다

30년을 사귀어온 친구가 40년간 꾼 꿈을 <메갈로폴리스>로 실현했다. 그 여정에 동행한 피기스에게도 죽기 전 이루고 싶은 영화가 있을까. 피기스는 “갈수록 더 작게, 더 작게 꿈꿀 뿐”이라 일축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스탠리 큐브릭, 조지 루커스…. 이런 거물들에게는 거대한 규모가 곧 영화의 일부다. 할리우드에서 15년 남짓 활동해본 내 경우 그와 상반된 관점을 가졌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작은 카메라들이 좋다. 사운드도 내가 직접 만진다. 적은 수의 스태프, 배우들과 움직이면서 훨씬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발견을 지속하고 있다. AI와 같은 신기술이 이 방식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창작자로서라기보다 작품의 편집자로서 임할 때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